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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Aug 30. 2020

학살의 기억과
그보다 긴 속죄의 시간

다큐멘터리 <학살의 기억들(2019)> 리뷰

본 리뷰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학살의 기억들>(장후영, 2019)은 현대 사회에 발생한 세 가지 제노사이드, 즉 인종 학살의 기억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교차 편집하여 보여준다. 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 1975년에서 79년 사이 캄보디아의 킬링 필드 대학살그리고 비교적 최근인 1994년에 발생한 르완다 대학살어쩌면 미디어를 통해 이미 반복적으로 보고 들은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다큐의 시선은 조금 특별하다.     

 

<학살의 기억들>이 강렬한 이유는 세 명의 인터뷰이가 모두 학살에 어느 정도 가담했던 가해자라는 것이다. 피해자 측의 증언을 듣고 같이 슬퍼하고 분노하는데 익숙한 우리에게 가해자의 진술을 듣는 행위는 생소하고 불편하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해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밀려오는 연민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피해자에게 공감하며 치솟았던 분노가 갑자기 그 대상을 잃어버리고조심스럽게 이들도 또 다른 이름의 피해자인가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대중들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쉽게 속는다.
_아돌프 히틀러  



이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의 학살의 시간을 보내고 그보다 훨씬 긴 세월을거의 평생을, ‘속죄의 시간으로 보내고 있었다. 캄보디아에서 크메르 루즈 소년병으로 뚜얼슬랭 집단수용소의 대규모 학살에 가담했던 ‘키우 퍼우’, 독일 나치 정권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히틀러 청소년단으로 활동했던 ‘우르슬라 마틴스’, 르완다에서 투치족을 원시 무기로 학살하는 데 앞장섰던 후투족의 ‘느탐바라 장 끌로드’. 이들은 시대적 흐름에 내몰려서 당대 권력자의 거짓말에 속았고 이용당했지만, 인종 학살이라는 끔찍한 행위에 자신들이 가담했으며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것을 변명하거나 부인하지 않는다.      


좌측부터 캄보디아 대학살 당시 소년병이었던 '키우 퍼우', 독일 히틀러 청소년단으로 활동한 '우르슬라 마틴스', 르완다 대학살에 가담한 '느탐바라 장 끌로드
저도 그들 중 하나예요.
그래서 결코 그 일을 부인하거나
 모른 척할 수 없습니다.
그때 제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없었을지
몰라도, 저는 50년 동안
죄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_ 우르슬라 인터뷰 중에서   

    



다큐 <학살의 기억들>은 속죄를 넘어 용서라는 주제까지 담아낸다평생을 속죄하며 사는 이들의 고통스러운 고백은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는 이야기는 한 차원 높은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학살의 가해자를 용서한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가해자가 용서를 구할 때 피해자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르완다 대학살에 가담했던 느탐바라는 자신이 죽인 줄로만 알았던 피해자 끌로뎃이 살아있음을 뒤늦게 알고 찾아가 용서를 빈다. 일곱 번 문전박대를 당한 그는 여덟 번째 아내와 함께 찾아가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그날 끌로뎃은 그를 용서한다.      


생존자 끌로뎃의 기억은 끔찍하다. 당시 열세 살에 불과했던 그녀는 자신이 숨어 있던 곳의 커튼을 들추고 흉기를 휘둘렀던 느탐바라를 또렷이 기억한다. 그녀는 화장실 시체 더미에 버려진 채 사흘을 버텼고 종족의 시체를 밟고 기어서 올라와 겨우 생존했다. 느탐바라는 그녀가 가장 증오하는 사람이었다. 그를 다시 보았을 때 그녀는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녀는 울부짖으며 말한다. “알다시피 느탐바라는 절 죽였던 사람입니다. (...) 그가 저를 죽였어요. 저를 죽였다고요.” 그를 용서한다는 것이 그녀에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고통을 딛고 그녀는 느탐바라에게 말했다. 저는 당신을 용서하겠어요.”   


  

르완다 대학살의 피해자 끌로뎃과 가해자 느탐바라


용서를 구하는 행위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상대방을 찾아가 용서를 빈다는 것은 용기다. 하지만 용서를 하는 행위도 그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잊고 싶은 기억을 대면할 용기, 미움과 증오의 감정을 이겨내고 상대방을 연민으로 껴안을 용기. 느탐바라와 끌로뎃의 이야기는 역사적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리의 의지와 용기로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그들은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며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누구든 또다시
분단과 분열을 가르치려 들면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우리를 이용하려는 자들이었니까요.
이제 저는 우리에게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_ 느탐바라 인터뷰 중에서     




가해자들의 죄책감으로 얼룩진 눈물과 참회, 가해자와 피해자의 용서와 화해까지 다큐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의 첫 장면에 나왔던 자막이 다시금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오직 악한 일만 저지르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과 우리를 구분하는 건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선과 악을 나누는 경계는
사람들의 마음속을 가로지르고 있다.
_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중에서 


십 대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히틀러를 존경하고 사랑했다는 우르슬라는 우리에게 경고하듯 말한다. “당신 이웃은 그런 일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런 일은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참혹한 학살의 가담자들은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이웃우리와 똑같은 평균적인 인간들이었다. 그러므로 비극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이웃을 서로의 ‘적’으로 규정하는 말들, 폭력성을 감추고 사람들을 현혹하는 아름다운 약속들에 항상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본 다큐멘터리는 EBS 국제 다큐영화제 'EIDF' 홈페이지에서 2020년 8월 31일까지 로그인 없이 무료로 볼 수 있다. (이후엔 유료 서비스로 전환)

<학살의 기억들>(장후영,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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