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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Jul 19. 2019

생(生)을 향한 냉소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본 서평에는 책의 내용 일부와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성숙한 인간, 사회 부적응자, 고독하고 우울한 청춘, 사춘기 반항아…. 


J.D.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민음사, 2001)>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를 두고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는 홀든을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솔직히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주인공에게 공감을 하기가 힘들었다. 홀든이 '미국의 50년대를 살고 있는 10대 상류층 남자아이'라는 것도 분명 이해의 장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가 보여주는 모순적인 태도와 불안정한 심리상태 때문에 그를 어떤 하나의 인격체로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소설 속 그는 부조리함에 대한 반발심은 크지만, 그렇다고 저항 정신이라고 하기에는 특별히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없었다. 사람들의 위선과 가식에 진저리를 치지만, 본인은 거짓말을 일삼는다. 어떤 한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듯하다 가도, 이내 집중하지 못하고 (구두 표현 시험처럼) ‘탈선’한다. 어린아이들의 동심을 동경하지만, 그렇다고 순수한 영혼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힘들다.



그를 파헤쳐보고자 나는 그가 외부로 뱉은 소리와 내면의 소리를 구별해서 다시 읽어 보았다. 그러자 그의 모순과 혼돈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근원은 바로 ‘생을 향한 냉소’였다. 홀든 콜필드는 세상을 향해 '차가운 비웃음'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빨간 사냥 모자를 쓴 홀든 콜필드 *출처_Google


홀든과 같이 아직 채 여물지 않은 청춘의 냉소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대면하는 것이 두려워 무조건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 엔톨리니 선생도 (그가 홀든을 제자로서 아낀다는 전제 하에) 홀든을 안타까워하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준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인생의 어느 순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환경이 줄 수 없는 어떤 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네가 그런 경우에 속하는 거지.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찾을 수 없다고 그냥 생각해 버리는 거야. 그러고는 단념하지. 실제로 찾으려는 노력도 해보지 않고, 그냥 단념해 버리는 거야. (p.247)” 


그러고는 단념의 결과가 자칫 자기 파괴로 치닫게 될 수 있음을 정신분석 학자 빌헬름 스테켈의 말을 통해 엄중하게 충고한다.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p.248)” 


상황은 홀든에게나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세상은 어쩌면 그가 찾는 이상향처럼 ‘아늑하고 평화로운 장소(p.267)’라기보다는 ‘얼음이 언 겨울’ 일 수 있다. 그래도 그 세상에 냉소를 보내며 단념하기보다는 묵묵히 살아가는 태도가 낫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얼음이 녹기도 하니까 말이다. 홀든이 그렇게 궁금해했던 센트럴 파크 남쪽 연못의 오리도 겨울철 호수가 얼어붙었다고 생을 단념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가 택시 기사를 통해 홀든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이것이 아니었을까?


“물고기들은 얼음 속에서 그냥 사는 거요. 그게 물고기들의 법칙이오. 얼음이 얼어도, 겨울 내내 그 자리에서 그냥 지낸다는 거지. (p.114)”


소설의 결말에서 홀든은 사랑하는 여동생 피비의 영향으로 치기 어린 도피를 중단하고 다시 한번 세상을 묵묵히 살아보기로 결정한다. 병원에서의 치료를 마치고 조금 더 성숙한 사회 구성원으로 돌아와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을 지켜주는 의식 있는 어른으로 성장했기를 기대해본다. 그가 그렇게 바랐던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말이다.



표지 디자인을 원치 않은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 민음사의 책 표지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중략)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커버 이미지_영화 <호밀밭의 반항아(2018)>의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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