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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Oct 14. 2020

이 시대의
흔한 모녀 이야기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호랑이와 소 (2019)> 리뷰

본 리뷰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호랑이와 소>(김승희, 2019)는 상영시간 8분의 짧은 애니메이션이다. 2020 인디다큐 페스티벌의 개막작이었고 지난 8월에 열렸던 EBS 다큐멘터리 영화제 상영작 중 하나였다.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연필 드로잉으로 연출된 이 작품은 ‘호랑이와 소’라는 제목과 썸네일 이미지가 첫눈에 고전적인 인상을 풍겼다. 하지만 영화는 의외로 현대 한국 사회의 모녀 가정에 관한 이야기로 감독의 자전적인 작품이었다. 스타일도 내용도 매우 독특해서 인상적이었다.     





제목 호랑이와 소는 호랑이띠인 엄마와 소띠인 딸을 상징한다일찍이 이혼한 엄마는 사회에 부딪히며 호랑이처럼 거칠게 살아야 했고, 그 밑에서 딸은 엄마의 기대를 쟁기같이 등에 얹고 소처럼 살아야 했다. 강성인 엄마와 그런 엄마가 무섭고 미웠던 어린 딸. 


감독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내 눈에 엄마는 전쟁터에서 꽃무늬 앞치마를 입고 바주카포를 든 사람 같았다라고 말한다. 세상의 삐딱한 시선과 맞서 싸워야 했던 엄마의 무용담이 마치 무협 만화처럼 펼쳐지며 쏠쏠한 재미를 준다. 세상에서는 남자 없는 거를무시해!”, “절대 밖에 나가서 아빠 없다는 말 하지 마. 사람들이 무시한다니까.” 엄마는 특유의 찰진 말투로 딸에게 거듭 강조한다. 

  

거칠게 살아야 했던 '호랑이띠' 엄마와 그 밑에서 순종적으로 자란 '소띠' 딸

   

감독은 엄마의 삶을 영화로 재구성하면서 엄마가 왜 그렇게 ‘호랑이띠’라는 이미지를 자신에게 덧씌운 채 거칠게 살아야만 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도 ‘소띠’의 굴레에 갇혀 살았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질문한다. 만약에 나라면 내 딸에게 모녀가 단둘이 살아간다.”라고 당당히 말하라고 과연 할 수 있을까? 


여전히 마음속에 의문은 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소가죽을 벗고 나와서 자신의 모습 그대로 화면 앞에 선다. 그리고 남겨진 가죽을 불태우면서 변화와 성장이라는 희망을 보여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의 엔딩 장면

  

어쩌면 이 이야기는 편모 가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가부장적인 사회를 살아온 이 시대 보편적인 엄마와 딸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엄마의 이야기, 그리고 딸의 이야기 모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처럼 감독의 솔직 담백한 서사가 이 작품의 강렬한 힘이다. 짤막한 애니메이션이지만 개성적인 작화와 절묘한 오디오 또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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