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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Dec 13. 2020

너와 나의 간극,
그럼에도 우리로 살아간다는 것

김혜진의 소설집 <<너라는 생활>>을 읽고

본 독후감에는 책의 내용 일부와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혜진의 소설집 <<너라는 생활>>(문학동네, 2020)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들 속엔 어느 하나 특별하다고 할 만한 사건이 없다. 재개발을 앞둔 지역에서 길고양이를 구출하다 만난 두 사람의 일화(<3구역, 1구역>), 작은 복지관에 이력서를 제출하려다 퇴짜 맞고 임시직을 하다가 생긴 일(<너라는 생활>), 동네 폐지 줍는 할머니와 얽힌 작은 차 사고(<동네 사람>), 너의 아는 사람을 소개받으며 생기는 갈등(<자정 무렵>, <아는 언니>) 등 일상의 평범하고 소소한 사건이 전부다. 주로 집과 동네라는 작은 범위의 공간에서, 나와 너를 둘러싼 좁은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기에, 이 소설들은 ‘나-너’라는 맞닿아 있는 사이에서 발생하는 작은 균열들에 집중한다.     


소설 속 나와 너는 둘 다 여성으로, 때때로 서로 호감을 느끼는 친구 사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동성의 연인이다. 그러나 작가는 독자들이 그들의 관계를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원치 않는다. 둘 사이는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흔하고 흔해빠진 연인”(<아는 언니>, p.201)으로 그려진다. 그렇기에 그들이 겪는 갈등은 현실 속 나와 너의 관계 전반에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너라는 미지, 우리라는 착각     


너와 내가 삶의 공동체를 이루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서로의 생활은 어쩔 수 없이 겹쳐지게 된다. 우리의 생활은 처음엔 잘 포개지는 것 같더니, 서서히 조금씩 어긋나는 부분들이 포착된다. 그 어긋남은 너라는 미지, 내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는 너의 알 수 없음에서 출발한다.     

 

그러니까 그 밤에 내가 실감한 건 너와의 간극이었고 격차였다.
(<3구역, 1구역>, p.31)   

  

너는 결국 “내가 다 알 수 없는 사람”(<3구역, 1구역>, p.35)이고, 반대로 나도 너에겐 마찬가지 존재다. 그러므로 우리라는 것은 처음부터 착각이고 환상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너에게 투영해 “누구보다 서로가 가장 잘 안다”(<팔복광장>, p.227)고 제멋대로 믿었던 것이다. 결국 “너와 나의 까마득한 입장 차”(<아는 언니>, p.191)는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생활을 위태롭게 만들고, 우리라는 약속이 키웠던 상상과 기대는 “신기루 같은 미래”(<팔복광장>, p.231)였음이 밝혀진다.     


그렇다면 너와의 관계를 계속 이어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너와 선을 긋고 그동안의 생활에서 흐릿해진 경계를 다시 또렷하게 하는 것이 서로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그러나 네가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만하면 나쁘지 않”(<너라는 생활>, p.86)고 “지금의 생활만으로도 충분하다”(<너라는 생활>, p.86)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온통 타자로 둘러싸여 있는 이 세계에서 ‘너와 나, 우리’라는 울타리라도 없으면 홀로 삶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남들의 시선과 호기심은 때때로 폭력적이고 호의나 친절이라는 이름으로 사적인 영역을 지나치게 침범해 나에게 ‘오싹함’(<동네 사람>, p.143)을 안겨준다. 그래서 너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든든하다. 완벽한 타인이 되어 나를 내려다보거나 올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나란히 서 있는 존재는 ‘너’가 유일하다.    

  

그리고 어쩌면 나와 너의 그 다름이 ‘우리’가 되게 한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겐 부족한 자질, 나와는 상반된 성격 등에서 너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자라나고 어떤 마음이 생긴 것이 아닐까? 나라는 사람도 너에겐 마찬가지여서 우리가 서로에게 의지하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네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될 수 있었을까.
(<너라는 생활>, p.78)      


그렇기에 너라는 사람, 나라는 사람이 좀처럼 바뀌지 않더라도 기꺼이 감수하고 지금 우리의 생활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우리는 나란하게 걷다가 어긋나고 비껴나면서 계속 걷는 중”(<동네 사람>, p.130)이다. “한번 뒤섞인 것들은 결코 이전처럼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팔복광장>, p.229)하면서.     


김혜진 소설집 <<너라는 생활>> (문학동네, 2020)


"너라는 2인칭에 대해 쓰고 싶었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소설들은 나로부터 출발하고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오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_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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