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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Mar 23. 2021

작가의 탄생에서 침몰까지-

영화 <마틴 에덴>(2019) 리뷰

본 리뷰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마틴 에덴>(피에트로 마르첼로, 2019)의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하면 좋을까? 


어쩐지 나는 마틴이 희망에 가득 찼던 순간에서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번번이 반송되던 마틴의 원고가 처음으로 잡지사에 팔린 날, 선박 노동자 마틴이 작가로 다시 태어난 그 날 말이다. “드디어 길이 뚫렸어요!” 병상에 누워 있던 마틴이 벌떡 일어나며 외친 기쁨의 환호성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날 마틴은 작가라는 꿈에,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 엘레나와 함께 하는 미래에 한 발짝 다가선 것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앞으로의 인생이 제 항로를 찾아 순항할 것만 같은 느낌. 하지만 이상을 향한 열정이 클수록 절망의 나락은 깊은 법이다.      




고통으로 얼룩진 작가의 꿈     


“멀리서 보면 멋진데 가까이서 보니 죄다 얼룩이네요. 그림이 사기 쳐요.”     


마틴은 엘레나와의 첫 만남에서 그녀의 집 거실에 놓인 터너풍의 그림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그림엔 거친 바다를 위태롭게 항해하는 배 한 척이 그려져 있다. 삶이 바다라면 배는 꿈을 상징할 것이다. 마틴은 엘레나를 동경해 ‘그녀처럼 말하고 그녀처럼 생각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작가의 꿈을 키워간다. 


열한 살 때부터 배를 탄 마틴은 상식도 부족하고 문법조차 몰랐지만, 배움에 굶주렸기에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치열하게 글을 쓴다. 그는 그가 목격한 것에 관한 글을 썼고 사회주의 운동이 한창이던 그 시절 노동자들은 그의 글에 열광한다. 마침내 마틴은 큰 돛을 단 멋진 범선, 즉 성공한 작가가 되지만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는 작가의 삶에 환멸만을 느끼고 침몰한다. 


멀리서는 한 폭의 그림처럼 멋져 보였던 꿈은 가까이 다가가니 고통으로 얼룩진 비극으로 탈바꿈한다. 마틴에게는 바다를 그린 저 그림처럼 작가의 인생도, 심지어 자기 자신도 거짓이고 사기 같다. “작가 마틴 에덴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상의 산물일 뿐이죠. 사실 그는 깡패에 선원이며 전설이 아닙니다.”


거대한 범선이 침몰한다 _ 영화에 삽입된 푸티지 영상 


사랑을 잃고 감옥이 된 세상    

  

“도망쳐요. 이 세상은 감옥이에요.” 

“열쇠만 있으면 감옥도 집이 될 수 있어요. 사랑이 열쇠죠.”     


마틴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사랑이 열쇠라고 믿었다. 엘레나와의 계급 차이쯤은 자신이 작가가 된다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엘레나와 한 집에서 행복하게 사는 꿈이 사람들 말처럼 허황된 것만은 아니라고 믿었다. 하지만 엘레나는 마틴이 속한 세상을,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똑바로 응시하길 원치 않았다. 마틴이 작가로 돈을 벌 수 있으리라는 믿음도 그녀에겐 없었다. 그녀는 마틴의 글이 날것 그대로라 부끄러웠고 부르주아에 거칠게 맞서는 태도도 부담스러웠다. 


마틴의 사랑은 이렇게 계급과 이념이라는 거대한 암초에 부딪혀 난파한다. 사랑이라는 열쇠를 잃자 마틴에게 세상은 감옥이 된다. 영화의 마지막에 마틴은 뒤늦게 그에게 돌아오려는 엘레나를 내친다. 그리고 과거 자기 자신의 환영을 뒤쫓다 바다에 당도한다. 마틴이 바다에 뛰어드는 마지막 장면은 감옥 같은 세상에서의 탈출일까? 이 탈주의 끝이 죽음인지, 바닷사람이라는 기원으로의 회귀인지, 아니면 새로운 세계로의 도약인지 영화는 관객의 자유로운 해석에 맡긴다.      


선박 노동자 마틴은 마침내 성공한 작가가 되지만 사랑을 잃고 방황하다 몰락한다


영화에 담긴 두 가지 인상우울과 이상     


마틴의 환상 속에서 과거의 그는 책을 들고 거리를 활보한다. 이날 그의 손에 쥐어진 책은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이었다. 1부의 제목 「우울과 이상」은 이 영화 전반에 흐르는 두 가지 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종종 푸른빛으로 표현된 마틴의 과거와 빈곤층의 현실은 ‘우울’이고, 마틴이 품은 작가로서의 열망과 사랑의 성취는 ‘이상’이다. 영화 속에서 시인 루스 브리센덴이 마틴에게 충고하듯, 이상은 비현실적인 동화(마틴과 엘레나의 경우, ‘공주와 선원’ 동화)이고 결코 가닿을 수 없는 환상이기에 우울하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반대로 가장 희망적인 장면에서 이 글을 시작하고 싶었나 보다. 이상과 우울 사이에서 마틴의 인생은 점차 침몰하지만, 작가가 탄생한 그 순간만큼은 ‘축복’*하고 싶은 마음에서.     


마틴은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 1부. '우울과 이상'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운다 


*'축복'은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에 첫 번째로 수록된 시의 제목이다. 시인의 탄생을 노래한 시다.  


영화 <마틴 에덴>의 포스터




*사진 출처: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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