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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May 24. 2021

시대의 거친 바람에
쓰러져 간 금빛 보리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켄 로치, 2006) 리뷰

본 리뷰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20년 아일랜드, 한 무리의 남성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헐링 경기를 하고 있다. 친목을 다지는 스포츠지만 팀의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 이내 싸움처럼 격해진다. “테디 오도노반, 계속 이러면 퇴장이야. 여기 싸우러 왔나?” 심판에게 경고를 받은 테디에게 동생 데미언이 상대팀을 대표해 악수를 청한다. 흥분한 테디는 데미언이 내민 손을 잡지 않는다. 시합이 끝나고 이들은 본래의 화합하는 모습으로 돌아가지만, 훗날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편이 갈린 형제의 반목과 대립은 끝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켄 로치, 2006)은 영국 제국주의에 맞선 아일랜드의 독립 전쟁과 영국-아일랜드 조약 이후의 아일랜드 내전을 그리고 있다. 테디와 데미언 형제는 처음엔 공공의 적 영국을 아일랜드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함께 싸웠다. 영국군으로부터 핍박받는 아일랜드인들의 자유를 위한 투쟁이었다. 기습 공격과 그보다 몇 배 잔인한 보복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밀고자와 배신자는 같은 민족이라도 심지어 어릴 적 친구라도 죽여야 했다. 데미언은 친동생 같던 크리스를 처형하고 “난 마지막 선을 넘어버렸어”라며 괴로워한다. 그 뒤로도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얻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한 투쟁이 이어진다. ‘자유’라는 단어 뒤엔 왜 반드시 ‘투쟁’이 따라오는지, ‘자유’와 ‘평화’가 공존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그 냉혹한 현실과 처절한 역사를 영화는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밀고자 크리스를 처형하는 데미언


형제는 이념의 차이로 서로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영국이 아일랜드를 자치령으로 인정하되 국왕의 통치 아래에 두는 조약을 제안했을 때, 아일랜드 독립군은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린다. 테디는 자치령을 거쳐 점진적인 독립을 추구하자는 온건파를 지지하는 반면, 데미언은 반쪽짜리 독립은 인정할 수 없다는 강경파 편에 선다. 온건한 의학도였던 데미언을 설득해 IRA(아일랜드공화국군)에 끌어들인 사람이 실천주의자 테디였는데, 이제는 입장이 뒤바뀐 것이다. 두 사람 사이의 균열은 이미 법정 다툼에서 예견되었던 일이다. 테디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무기 구입 비용을 지원할 수 있는 지주의 편에 섰지만 데미언은 노동자를 대변하려 했었다. 아일랜드 내 이런 분열은 곧 내전이 되어 형제는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된다.    

  

무엇에 반대하는지 아는 건 쉽지만,
뭘 원하는지 아는 건 어렵다.


명백한 하나의 적이 있었을 때 이들의 저항은 목표가 뚜렷해 보였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 걸까.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된 상황은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조국과 이념, 그리고 이상과 신념, 그 어떤 것을 앞세워도 이것은 비극이다. 데미언은 결국 투옥되고 테디는 그에게 IRA를 배신하고 목숨을 건지라고 설득한다. 그곳이 하필 예전에 테디가 손톱을 뽑히는 고문을 당하면서까지도 조국과 IRA에 충심을 지켰던 장소라는 게 아이러니다. 데미언은 끝까지 테디의 손을 잡기를 거부하고 결국 테디에 의해 총살된다. 

 

테디는 데미언에게 배신을 종용하지만, 데미언은 변절자가 되느니 죽음을 택한다

   

테디는 데미언의 유서를 들고 그의 연인 시네드를 찾아간다. 시네드는 “다신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라며 울부짖는다. 데미언이 크리스를 처형하고 크리스 어머니를 찾아갔을 때 들었던 바로 그 말이다. "다시는 너를 보고 싶지 않구나." 상실의 아픔이 똑같이 반복되는 것에 가슴이 먹먹하다. 동족 간의 죽고 죽임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다.  


데미언의 유서를 들고 시네드를 찾아 간 테디

   



켄 로치 감독은 아일랜드 역사의 격변기를 영화화했지만, 그렇다고 독립 전쟁을 미화하거나 영웅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거친 시대의 흐름에 휘말려 이리저리 흔들리고 쓰러지는 미약한 존재인 ‘사람’에 집중한다. 앞길이 창창했던 금빛 보리 같은 청년들이 숱하게 쓰러졌다. 아일랜드 민족시인 로버트 조이스의 시에서 따온 제목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이들에 대한 연민을 내포하고 있다. 이들의 핏빛 희생이 분명 헛되지는 않겠지만, “조국이란 게 이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는 거겠죠?”라는 데미언의 질문은 영화가 끝나고도 머릿속에 맴돈다. 이념과 신념을 고집스럽게 앞세우다가 어쩌면 보다 중요하고 근본적인 무언가를 놓친 것은 아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한다.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포스터




*사진 출처: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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