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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Aug 01. 2019

과학서의 '떨림'을 인문학적 '울림'으로 전달하다

김상욱의 <떨림과 울림>을 읽고

*본 서평에는 책의 내용 일부와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학서는 나와 같이 관련 지식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늘 어려운 주제이고, 시도를 했다가도 번번이 좌절로 끝이 나곤 해서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책 분야다. 그러던 중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사이언스북스, 2006)> 함께 읽기(혼자서 읽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두께의 책이었기 때문)에 도전하면서 과학서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이는 <코스모스>가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잘 쓰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계기로 과학서에 접근하는 나의 태도 내지는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도 있다. 지식 습득을 목적으로 어려운 내용을 애써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단 인문학적 사유를 확장하는 방편으로 가볍게 읽어나가는 방식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관점을 바꾸니 천문학, 물리학, 생태학 등 과학 전반의 책들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읽혔다. (물론 내용을 충분히 이해해서 지식의 깊이까지 더할 수 있다면 더욱 바람직한 책 읽기이겠지만 말이다.)





최근에 읽은 <떨림과 울림>(동아시아, 2018)은 다양한 물리학의 개념을 쉽고 흥미롭게 설명하며 생각의 폭을 넓혀준 책이다. 알쓸신잡 3(tvN)에 출연해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가 펴낸 과학서로,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을 “물리학이 인간적으로 보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의 바람이 통한 사람이 비단 나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책의 첫 장을 펼칠 때는 난해한 과학과 물리에 대한 ‘떨림’이 컸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면 인문학적 성찰의 ‘울림’이 오래 지속되는 책이다. 


우주는 떨림이다. 정지한 것들은 모두 떨고 있다. 소리는 떨림이다. (…) 빛은 떨림이다. (…) 세상은 볼 수 없는 떨림으로 가득하다. (…) 인간은 울림이다. 우리는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한다. (p.6)


칼 세이건이 명명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 보이저 2호가 태양계 외곽인 해왕성 궤도 밖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이다. *출처_Google


우리의 생각이 우주적인 차원으로 확장되면, 드넓은 우주에서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지금 내가 고뇌하고 있는 이 일들이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우주의 작은 먼지 같은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의 지구에서, 더 작은 존재인 ‘나’를 둘러싼 사건, 상황, 사람들. 정호승 시인은 산문집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에서 매일 전쟁 같은 하루를 아옹다옹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끔 우주의 크기를 생각해보세요”라고 조언한다. <떨림과 울림>을 읽어나가다 보면 사고의 폭이 우주에서부터 원자, 전자까지 무한대/무한소의 영역을 넘나들게 된다. 


우주는 시공간과 물질이라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시공간은 무대, 물질은 배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주는 시공간이라는 무대 위에서 자연법칙이라는 대본에 따라 물질이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연극이다. (p.37)


죽으면 육체는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하지만 원자론의 입장에서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흩어지는 일이다. 원자는 불멸하니까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p.48)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 (p.252)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과학이 우리의 일상에서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사유의 주제가 될 수 있음을 전달한다. 독자에게 이 책이 ‘울림’으로 기억되는 이유다.


물리학자의 눈에 <그래비티>가 재난영화였다면, <인터스텔라>는 상대성이론의 탈을 쓴 SF다. (…) <인터스텔라>의 과학적 진위를 두고 말들이 많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시지는 다른 데 있는 게 아닐까? 지구는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며,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 영화는 우리가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 세입자라는 것을 일깨워둔다. (p.146)


평형 길이보다 용수철이 늘어나면 평형으로 돌아가려는 힘이 작용한다. 힘을 받은 물체는 가속한다. 그래서 물체는 평형 위치를 지나쳐 계속 진행한다. (…)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중심에 이르고자 하지만 항상 지나쳐 다른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단번에 원하는 중심에 도달하기는 힘들다. 결국 진동이 잦아들며 조금씩 목표에 접근하는 것이다. (p.239)


그러나 이 책도 이야기가 진전되다 양자역학에 이르게 되면, 역시나 일반인의 이해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독자의 의식이 점점 안드로메다로 멀어지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저자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파인먼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위로한다. '이 세상에 양자역학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김상욱 교수는 이와 같이 무지를 기꺼이 인정하는 것이 과학이며, 과학자들은 뒷받침할 물질적 증거가 있을 때만이 ‘안다’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학은 지식의 집합체가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자 사고방식(p.269)이라고 강조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지식이 아닌 태도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과학은 인간적이고 따뜻하다. 과학에 관심은 있으나 나처럼 망설였던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입문서로 추천한다.


우주는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은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아니다. 아무 의미 없이 법칙에 따라 그냥 도는 것뿐이다. 의미나 가치는 인간이 만든 상상의 산물이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 (p.252)



<떨림과 울림>_김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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