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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Jul 10. 2023

한 사람이 평생을 바쳐 이룬 꿈의 ‘처음’을 보다

영화 <파벨만스>(스티븐 스필버그, 2023) 리뷰

본 리뷰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 영화 <파벨만스>는 <뮌헨>(2005) 촬영 당시 공동 각본가 토니 커시너가 스필버그에게 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한 순간을 질문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둘의 대화는 인생에서 처음 영화에 매료되었던 순간, 영화라는 꿈이 처음으로 흔들렸던 순간, 그리고 영화가 평생의 업임을 깨달은 최초의 순간 등으로 뻗어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스필버그는 언젠가 이 이야기를 영화로 하고야 말겠다고 다짐한 듯하다.      


   영화가 관객을 만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는, 감독이 필연적으로 영화 속 캐릭터가 되어야 하는 가족을 배려해서였다고 한다. 2017년에 어머니, 2020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여동생들의 동의까지 얻은 후에야 이 이야기는 영화화될 수 있었다. 영화의 제목이 극 중 가족의 성, ‘파벨만스(The Fabelmans)’인 이유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영화에 관한 영화’이자 ‘한 소년의 성장 드라마’인 동시에 ‘사랑과 상처가 공존하는 가족영화’다.    



     

   영화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 처음 극장에 들어서는 6살 새미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지상 최대의 쇼>라는 영화 속 열차 충돌 장면은 어린 새미를 단박에 사로잡는다. 새미는 선물 받은 장난감 기차로 그 장면을 재연하고자 하는 충동을 느끼고, ‘자신만의 세상을 통제해보고 싶은’ 아들의 마음을 이해한 엄마 미치는 그에게 8mm 카메라를 건넨다. 그렇게 필름에 담긴 장면은 묘하게 <지상 최대의 쇼>와 닮아서, ‘모방은 창조의 첫걸음’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그날 이후로 “영화는 꿈이야, 잊히지 않는 꿈”이라는 엄마의 말처럼 영화는 새미의 꿈이 된다.      


   하지만 예술가인 엄마와 달리 공학도인 아빠 버트는 새미에게 영화는 ‘실재하지 않는 환상’이라며 ‘취미’일 뿐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새미 자신도 촬영된 장면을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가짜’라는 말을 내뱉는다. 새미는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여러 특수효과를 시도하며 영화 연출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러나 “예술과 가족, 그게 너를 둘로 찢어놓을 거란다.”라는 보리스 삼촌의 경고처럼, 가족의 비밀(엄마의 외도)을 편집으로 덜어낸 영화를 가족 앞에서 상영하며 새미는 다시 한번 영화는 ‘거짓’인가를 놓고 고민한다. 새미의 삶이 한창 어둠에 잠겨 있을 때 스크린에는 빛으로 일렁이는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투사되고 있었다. 삶의 진실과 영화 속 허상 사이의 간극에서 그는 아마도 영화에 처음 회의를 느꼈던 것 같다.     

  

   한동안 카메라를 손에서 놓았던 새미는 해변에서의 학교 행사를 찍으며 다시금 영화의 꿈에 다가간다. 새미는 인물 연출(영웅과 악당)과 편집 기술(하늘을 나는 갈매기와 아이스크림을 얼굴에 떨어뜨리는 장면을 교차 편집), 과장과 유머까지 구사하며 관객의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낸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새미는 이 일을 계기로 친구들의 인정을 받는다. 그에게 시련을 안겨주었던 영화가 이번엔 삶을 지탱할 힘이 되어 준 것이다. 이 시기를 거치며 그는 ‘영화가 가진 힘’을 다시금 깨달았을 것이며, 사자의 입에 머리를 넣으면서도 살아남는 방법(즉, 삶과 예술 사이의 균형)을 미약하게나마 알게 된 듯하다.   

  

   “네 가슴이 뛰는 일을 하렴.” 엄마의 충고에 따라 새미는 결국 영화계에 입문한다. 그리고 과거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존 포드 감독을 만난다. 감독은 사진 속 인물과 스토리에만 집중하는 새미에게 미학적인 부분, 즉 구도의 중요성을 가르쳐준다. 지평선에 관한 그의 말은 카메라의 위치는 사건을 바라보는 감독의 관점이며,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영화의 흥미도가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뜻이 담겨있었을 테다. 지금까지 인물과 장면 연출, 특수효과, 편집 등을 스스로 터득하며 성장한 새미에게 연륜 있는 감독의 짧은 조언은 화룡점정과도 같지 않았을까. 영화는 “지평선이 가운데 있으면 더럽게 지루하다”는 존 포드의 가르침대로 카메라 앵글을 재치 있게 조정하며 끝이 난다.   





   어느 인터뷰에서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번 영화는 나의 기억 그 자체”이며 “<파벨만스>를 제작하는 건 분명 내게 치유가 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감독이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 했던 이유가 가족의 불행에 있어 자신이 했던 역할(엄마의 진실을 촬영한 것, 그리고 그것을 비밀에 부친 것)로 인한 마음의 짐을 덜고, 영화의 꿈을 지지하고 동참해 준 가족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것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이 영화엔 감독의 개인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영화와 꿈에 관한 더 큰 이야기도 담겨있다. 무엇보다 한 사람이 평생을 바쳐 이룬 꿈의 ‘처음’을 보는 귀한 기회를 관객에게 선사하고 있으며, 지금 꿈의 출발선에 서 있는 관객에게는 용기를, 그 시절을 지나온 이에게는 아스라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였다.                 


    

<파벨만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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