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일리 블루스>(비간, 2015) 리뷰
본 리뷰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카일리 블루스(路邊野餐)>의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카일리의 의사 겸 시인인 천성이 인근 도시 전위안으로 팔려 간 조카를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 이렇게 말하면 흔한 로드무비 같지만, 사실 이 영화는 줄거리 이면에 어딘가 매우 낯설고 복잡한 서사가 독특한 방식으로 펼쳐지는 문제작이다. 쉽게 손에 잡히진 않지만 그럼에도 이야기 속에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영화를 여러 차례 돌려보며 어떻게든 언어로 포착해 보려 노력했다.
먼저 내게 <카일리 블루스>는 '3악장으로 이뤄진 애가(블루스, 哀歌)'처럼 다가왔다. 이 영화의 구조는 타이틀이 뜨기 전의 프롤로그 격인 초반 30분을 제외하고 ‘카일리 - 당마이 - 전위안’이 대략 30분씩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을 다소 거칠게 요약하면 ‘현실 - 환상(꿈) - 현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위안으로 가는 도중에 머문 기착지 당마이는 현실적인 공간으로 묘사되지만 깊이 들여다볼수록 비현실적이다. 기이하게 중첩되는 인물과 사물 들 때문에 현실의 변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시간의 연속성이 깨진 상상 세계 같기도 하다(조카 웨이웨이와 같은 이름의 청년, 천성의 아내와 비슷한 외모의 미용사, 두 명의 주정뱅이, 원시인에 관한 이야기 등). 반복과 변주는 관객에게 꿈처럼 묘한 기시감을 주는 동시에 영화에 독특한 리듬감을 부여한다. 그뿐만 아니라 시를 낭독하는 목소리와 삽입된 노래, 먀오인 전통악기 루성의 소리, 자연적인 음향과 일상의 소음에서도 음악성이 느껴졌다.
3악장을 다르게 해석하면 ‘출발 - 길 잃기 - 귀환’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 영화의 끝에 천성은 카일리로 돌아가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창밖엔 청년 웨이웨이가 그린 거꾸로 가는 시계가 보인다. 과거인지 미래인지 알 수 없는 시간대에서 길을 잃었던 그가 현실로 돌아가는 길이다. 혹은 관점을 달리해 이렇게도 볼 수 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천성은 기침을 하며 “죽어야 안 아프겠죠.”라는 대사를 했다. 영화의 끝에 그는 같이 일하던 여의사의 옛 애인(이름도 ‘애인’)이 숙환으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전위안에 간 김에 그에게 옷과 노래 테이프를 전해달라는 그녀의 부탁을 받았던 천성이었다. 옷은 당마이에서 그가 입었고 테이프는 미용사에게 주었기에, 천성과 애인은 어쩐지 하나의 인물처럼 겹쳐진다. 이렇게 보면 ‘죽음’으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나는 수미상관의 구도인데, 중간의 ‘길 잃기’에 ‘삶’을 대입하면 하나의 커다란 은유로도 다가온다.
삶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선형적으로 흐르는 듯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느끼기엔 그렇지 않다. 파편화된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예감 같은 것들이 끼어들어 현재와 혼재한다. 게다가 ‘마음’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영화에서 인용한 금강경의 ‘과거심 불가득 현재심 불가득 미래심 불가득(수보리야, 과거의 마음도 현재의 마음도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은 이런 의미를 내포한 게 아닐까. 때론 환상이나 망상으로 때론 꿈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 일으킨 순간들. 그런 의미에서 천성의 ‘꿈꾸는 것 같네’라는 혼잣말은 의미심장하다. 우리의 삶은 종종, 시동이 걸리지 않는 오토바이나 차량처럼 혹은 고장 난 선풍기나 녹음기처럼 어딘가 길을 잃은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론 물건을 고쳐 쓰듯이 애써 길을 찾아 긴 터널을 빠져나오기도 한다.
이제 영화에 거듭 등장하는 ‘원시인 이야기'를 살펴보자.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원시인은 동굴에서 걸어 나와 현실의 누군가를 뒤에서 끌어안아 잡아간다고 한다. 어쩌면 원시인이란 과거(‘뒤’)에 사로잡힌 존재를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어두운 터널에서 걸어 나오는 천성의 장면이 유독 많다. 9년의 감옥생활 동안 어머니와 아내를 차례로 잃은 그는 회한과 그리움이 가득하다. 현실을 살아가지만 과거의 기억에 침잠해 있는 천성은 원시인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팔꿈치에 막대기를 매달아 원시인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혀서 도망가라는 이야기는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켜 과거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라는 조언처럼 들린다.
기이하게 뒤섞인 시공간과 수수께끼 같은 오브제들이 이 영화를 흥미롭게 하는 게 사실이지만, 결국 이 영화의 잔상을 한마디로 옮긴다면 ‘낯선 방식으로 직조된 사랑 이야기(愛歌)’라고 하고 싶다. 천성의 어머니를 향한 죄책감, 아내 장시(당마이의 미용사와 겹쳐지는)를 향한 그리움, 조카 웨이웨이(청년 웨이웨이와 겹쳐지는)를 향한 책임감은 모두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거기에 청년 웨이웨이와 양양의 풋풋한 사랑, 천성의 동료 의사와 그녀의 옛 애인의 세월을 뛰어넘은 사랑도 있다. 천성은 아내를 닮은 미용사에게 친구에 빗대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훔친다. “예전에 알던 친구는 아내를 무인도장에서 알게 되었어요. 둘이 결혼해서는 작은 집에 살았어요. 집 옆에 폭포가 있었는데 폭포 소리가 너무 커서 둘이서 집에서 춤만 췄대요. 말도 없이요. 말을 해도 안 들리니까.” 현실의 삶도 사랑이 더해지면 충분히 환상적일 수 있구나, 하고 마음을 울린 장면이다.
자신의 시집 <노변야찬>에서 천성이 마지막으로 읊는 시는 “좋은 꿈을 그리워하면 볼 수 있게 된다. 뒤바뀐 순간을 더듬어 찾으면 모든 그리움은 비슷한 나날에 숨겨져 있다.”이다. 어쩌면 당마이에서의 환상은 그가 그리워하던 ‘좋은 꿈’이고 지극한 사랑의 발현이었는지 모른다. <카일리 블루스>는 뒤바뀐 순간을 더듬어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는 관객의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 총체적으로 완성되기에 더욱 짙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꿈꾸듯 아득하고 신비롭게 연출된 비간 감독 특유의 롱테이크 장면도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
사진이 영혼을 훔쳐간다는 시절로 돌아간 듯, 당신은 내 영혼을 훔쳐갔다.
(...) 심장이 없이 9년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