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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Aug 22. 2019

침묵하며 떠나는 사람들

어슐러 K.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읽고

*본 서평에는 책의 내용 일부와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SF 판타지소설의 거장 어슐러 K. 르 귄의 단편집 <<바람의 열두 방향(시공사, 2004)>>에 실려 있는 단편소설이다. 12페이지의 짤막한 이야기이지만, 소설이 내포한 주제는 무겁고 여운이 오래 남는다.




BTS(방탄소년단)의 팬이라면 ‘오멜라스’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대표곡 ‘봄날’의 뮤직비디오가 영화 ‘설국열차’와 세월호, 그리고 이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오에서 그들이 전달하고자 한 이야기 또한 소설의 중심 주제와 맞닿아 있다.


BTS '봄날' MV에 등장하는 '오멜라스(Omelas)' *출처 _ Google


소설 속 ‘오멜라스(Omelas)’는 모두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도시, 즉 지상 낙원이다. ‘오멜라스’에는 왕도, 성직자도, 군인도 없다. 그 곳 사람들은 멋지고 고상한 삶을 누리며 살아가고, '푸른 들판'에 모여 축제를 즐기며 행복해한다. 오직 한 사람만 제외하고.


어느 공공건물 지하실, 창문도 없는 골방에 한 어린아이가 갇혀 있다. 비참하게 방치된 열 살쯤 되는 정신박약아. 오멜라스의 사람들은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 아이가 ‘희생양’으로 바쳐지는 것이 수천 명의 행복을 위한 계약 조건이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다. 이들은 아이에게 가해지는 죄악을 못 본 척하고 자신의 처지에 안도하며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현실에 쉽게 타협하지 않는다. 그들은 침묵하며 고뇌하다 결국 홀로 도시를 떠난다. 남의 불행을 대가로 얻은 행복을 더 이상 누리지 않기로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그들은
오멜라스를 떠나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 그러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을
알고 있는 듯하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소외된 이웃을 외면하고 얻은 행복이 과연 진짜 행복인 것인가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위선에 반발하고 양심이 이끄는 대로 침묵하며 떠나는 사람들. 그들이 향한 방향에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더 이상 죄책감에 시달리며 침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바로 그 용기있는 선택이 가져올 희망적인 미래가 BTS가 노래한 ‘봄날’일 것이다.


<<바람의 열두 방향>> 어슐러 K. 르귄의 단편집


[어슐러 K. 르 귄이 소설의 영감을 얻은 글]

‘…낙원을 능가하는 낙원이 우리에게 제공된다면, 그리고 어느 외딴 곳에서 길 잃은 한 영혼만 고통을 당하면 그 낙원에 있는 수백만 명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설사 그런 식으로 제공되는 행복을 붙잡고 싶은 충동이 우리 안에 인다 할지라도 그러한 거래의 열매를 자신의 의지로 받아들여 얻은 행복이 얼마나 추잡한가를 스스로가 명확히 느끼는 것 말고 다른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_ 윌리엄 제임스 <도덕적 철학자와 도덕적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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