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커: 폴리 아 되>(토드 필립스, 2024) 리뷰
본 리뷰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어디선가 읽었다. 어린 시절의 불우한 환경이 범행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는 없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이가 모두 비슷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며, 필자는 그런 이들을 마치 잠재적 범죄자처럼 취급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본인이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며 그 같은 편견과 싸워왔음을 역설해 더욱 설득력이 있었다.
‘왜 범죄를 저질렀을까’에 대한 의문을 좇아 범죄자의 과거를 파헤치다 보면, 자칫 ‘그래서 그랬구나’ 식의 인과관계, 혹은 개연성을 부여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해당 범죄자를 향한 연민이나 심정적 이해, 심하게는 공감까지 이를 수 있어 위험하다. 알고 보니 피해자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둥, 가해자를 자극했다는 둥 하는 언설은 2차 가해나 다름없기도 하다.
2019년에 개봉한 <조커>가 대중적인 흥행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인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피할 수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빌런의 탄생을 서사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감독은 은둔형 외톨이였던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이 악당 조커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환경과 비극적 사건들을 세세하게 그려냈다. 이는 관객들에게 조커를 향한 이해와 연민의 감정을 일깨웠고, 범죄를 미화하는 듯한 오해도 불러일으켰다. 영화의 폭발적인 인기는 뉴욕 브롱크스의 촬영지 ‘조커 계단’이 영화 팬들의 성지로 거듭나고 인터넷 밈으로까지 퍼지면서 증명되었다.
5년 만에 돌아온 후속편 <조커: 폴리 아 되>(2024)를 향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것도 비슷한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빌런 탄생 이후의 활약상을 기대했던 관객 대부분은 실망감을 표했고, 일부 평론가와 관객만이 감독의 강단 있는 연출 의도를 옹호했다. 한동안 ‘희대의 속편’이라며 5점 만점에서 4점을 준 이동진 평론가의 평점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1편이 빌런의 탄생이었으니 속편이 빌런의 쇠락이나 죽음이어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배트맨 시리즈와의 연결성이 부족하다는 점도 나는 그렇게 문제 삼고 싶지 않다. 애초에 이 영화는 배트맨 시리즈와는 별개로 제작된 독립적인 작품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마치 <로건>(2017)이 마블의 엑스맨 시리즈와는 독립된 ‘울버린’의 서사를 그렸던 것처럼 말이다.
내가 실망한 지점은 오히려 다른 부분이다. 제목부터 ‘할리 퀸’의 등장을 예고한 영화가 의외로 할리 퀸의 비중이나 주목도 측면에서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부제인 ‘폴리 아 되(Folie à Deux)’란 두 사람이 공유하는 망상이나 광기로 ‘감응성 정신병’을 의미하는 의학용어다. 조커에게 감응한 ‘리 퀸젤(레이디 가가)’이 할리 퀸이라는 또 다른 빌런이 되어 파괴적인 사랑을 나눈다는 스토리인데, 조커와 비등비등한 존재감을 지닌 그녀를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레이디 가가라면 어쩌면 마고 로비의 할리 퀸을 능가하는 캐릭터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의 논쟁거리는 바로 뮤지컬 영화라는 점이었다. 개봉 전부터 조커와 뮤지컬이 과연 어울릴까 하는 우려가 컸다. 영화를 보고 난 후의 의견을 말하자면, 나는 이 영화가 뮤지컬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뮤지컬은 단지 조커의 망상, 특히 할리 퀸과의 환상적인 사랑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나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 영화의 서사에 음악이 접목된 방식과 해석에서 온다고까지 느꼈다. 레이디 가가가 조곤조곤 읊조리는 방식으로 부르는 ‘Close to You’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익숙한 노래였지만 이렇게 가사에 주의를 기울여 들은 게 처음이었는데, 낭만적인 곡이 한편으론 스산하게도 느껴지며 ‘폴리 아 되’라는 부제와 무척 잘 어울렸다.
어쨌든 이번 영화는 논쟁거리가 많은 문제작임은 틀림없다. 제작자도 이를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전편의 성공 뒤에 ‘폴리 아 되(감응성 정신병)’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진 채 속편을 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1편에 쌓인 기대를 철저히 허무는 것이 이번 편의 목적이었다고 이해하면, 할리 퀸에게 걸었던 나의 기대도 일종의 ‘폴리 아 되’였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 대한 평가를 떠나 대중의 열광과 기대를 배반하면서까지 과감한 시도를 한 감독의 용기엔 박수를 보낸다. 어쩌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당신도 조커에게 감응하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