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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기 발랄, 씁쓸 통쾌한 소설

김지연의 단편 <반려빚>(2024 젊은작가상 수상작, 문학동네)을 읽고

by 이연미


‘반려빚’이라니, 이토록 애잔한 신조어가 있을까? 처음 <<2024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펼쳐 들었을 때, 나는 반려‘빚’을 반려‘빛’으로 읽었다. 신비롭고 따뜻한 인상을 주는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빛’이 아니라 ‘빚’이었고 소설은 따뜻하기는커녕 서늘하고 처절한 현실을 그리고 있었다. 빚에 허덕이는 청년의 각박한 삶. 반려의 사전적 의미는 ‘짝이 되는 동무’인데 하필이면 빚이 인생의 짝이라니.


그런데 소설은 마냥 비관적이고 슬프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재기 넘치고 유쾌하다. 서사가 전개되는 방식의 그 어둡지 않음(‘밝음’이 아니다), 무겁지 않음(‘가벼움’이 아니다)이 좋았다. 빚을 ‘반려’처럼 여기며 살아야 하는 이 시대 우리의 삶에 작은 위안처럼도 느껴졌다.




주인공 정현은 ‘거의 매 순간 돈에 대해 생각’(p.204)한다. 그녀가 돈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 이유는 빚 때문이다. 긴 연애 끝에 남은 게 일억 육천의 빚이다. 연인 서일(이들은 동성커플이다)과 동거할 집을 구하며 받은 전세자금 대출과 그녀에게 빌려준 돈을 합한 금액이다. 서일은 헤어진 후에도 돈을 갚겠다고 했지만 언제부턴가 연락 두절이다. 그 후로 정현의 세계는 변해버렸다. ’도통 못 믿을 사람들로 가득‘(p.220)한 세상으로.


그런데도 정현은 빚만 남기고 떠난 연인을 원망하기보다 그녀도 ‘전세 사기의 피해자’(p.209)였다며 변명을 해준다. 이런 모습이 답답한 친구 선주가 “넌 왜 서일이를 못 잊어? 너 이렇게 망하게 한 사람인데.”라고 다그치자 “나 망했어?”(p.212)라고 되묻는 정현. 이건 뭐 사람이 해맑다고 해야 하나, 웃음이 나온다.


선주가 반려동물이라도 키워보라고 제안하자 정현은 ‘내 한몸 건사하기도 힘든데’(p.203) 돈까지 드는 동물을 키울 순 없다고 생각하다가 반려빚을 떠올린다. 빚이야말로 자신이 ‘잘 돌보고 보살펴 임종에 이르는 순간까지 지켜봐야 할 그 무엇’(p.206)이라며. 정현이 얼마나 빚에 시달렸는지 하루는 꿈에서 반려빚과 산책도 한다. 문제는 ‘목줄을 한 쪽이 정현이고 목줄을 쥔 쪽이 반려빚이었다는 점’(p.207)이다. 아이스커피 한 잔이 하고 싶었지만 반려빚에게 단호하게 거절당한 정현은 개 마냥 낑낑대다 잠에서 깬다.


결국엔 정현이 빚을 다 갚는 날이 오긴 온다. 시간이 한참 흐르긴 했으나 서일이 빌린 돈을 갚은 것이다. 물론 중간에 서일이 다시 얹혀살겠다고 돌아왔다가 정현의 마음이 흔들리기 직전에 선주에게 머리채가 잡히는 등 별별 에피소드를 겪고 나서다. 그 와중에 반려빚은 또 정현의 꿈에 나와 ‘헤어지자’(p.228)고 말하고 정현은 짐을 싸서 떠나는 반려빚에게 소금을 뿌린다. 적재적소에 빵 터지는 웃음 포인트가 숨어 있다.


대출을 상환하고 정현은 오랜만에 홀가분한 기분을 느낀다. ‘마침내 0이 된 기분. 정현은 그 이상을 바라는 것도 이상하게 무섭기만 해서 그저 0인 채로 오래 있고 싶었다.'(p.229) 플러스는 바라지도 않으니 마이너스만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제로인 상태를 되도록 오래 유지하고 싶은 마음. 빚을 평생의 짝처럼 곁에 끼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시대라고 한다. 정현의 말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결말까지 어째 씁쓸 통쾌하다.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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