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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버섯에서 발견하는
협력적 생존의 가능성

애나 로웬하웁트 칭의 <세계 끝의 버섯>(현실문화연구, 2023)을 읽고

by 이연미


예전에 어느 책에선가 ‘언더스토리(Understorey)’라는 생태학적 용어를 접했다. 하층식생을 가리키는 말로 독립된 개체들처럼 보이는 식물들이 곰팡이(균사체)를 매개로 소통하며 공존한다는 ‘상리공생’이 설명되어 있었다. 이 같은 균근 네트워크는 숲에서 생물종 간 상호 연결의 인프라를 형성한다.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이 있다. 인간이 아는 지식이라는 게 얼마나 빈약한지, 반대로 세상은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놀라울 따름이다.




애나 로웬하웁트 칭의 저서 <세계 끝의 버섯>(현실문화연구, 2023)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비슷한 생태학적 이론을 상상했다. 하지만 ‘옮긴이 해제’를 보니, 이 책은 문화인류학(현대를 살아가는 인류와 그들이 구성하는 사회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분류되며 그중에서도 이름조차 생소한 ‘다종민족지 이론’에 해당한다고 소개되어 있었다. 무언가 나의 배경지식으론 소화하기 힘든 거시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아 책을 펼치기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애나 칭은 아주 작고 구체적인 ‘송이버섯’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왜 하필 송이버섯일까?’ 1945년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이후, 그 폐허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생물이 송이버섯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세계 곳곳에서 송이버섯을 추적하며 불확정성과 불안정성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책의 부제) 연구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과정에서 ‘협력적 생존’의 한 가지 방식을 발견한다. 바로 소나무와 송이버섯이라는 이종 간의 얽힘이다.


땅속 곰팡이의 자실체인 송이버섯은 숙주 나무인 소나무와 ‘상리공생’ 관계를 맺으며 자란다. 그 과정에서 갈퀴질과 같이 인간이 행하는 소규모의 ‘교란’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침식을 통해 무기질 토양이 밖으로 드러나면 소나무 생장에 유리한 환경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애나 칭은 ‘송이버섯-소나무-인간’, 그리고 다양한 생물들이 함께 ‘다종의 세계 만들기’에 참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얽힘’의 ‘패치’는 자연에 무수히 많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하와이밥테일오징어가 발광성 박테리아와 공생하며 빛이 나는 기관을 발달시켜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일일 것이다. 인간 또한 태어날 때 산도를 통과하며 마주친 젖산균 박테리아가 소화 작용을 돕는 등 다양한 미생물과 공생한다. 신유물론자인 도나 해러웨이는 인간이 개,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과 서로 얽히며 공진화해왔음을 주목해 <반려종 선언>을 썼다. 애나 칭의 송이버섯도 이처럼 인간-비인간 존재의 우연적 마주침, 불확정적인 얽힘을 설명하는 하나의 좋은 예이다.




애나 칭에 따르면, 송이버섯 연구는 하나의 산업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도 독특한 위상을 차지한다. 주로 일본에서 비싼 가격으로 소비되는 송이버섯은 인위적인 재배가 되지 않기에 채집에 의존한다. 송이버섯은 채집인의 트로피에서 선물로 소비되기까지 글로벌 공급 사슬에서 자본주의적 영역과 비자본주의적 영역을 넘나들며 ‘구제’와 ‘번역’의 과정을 거친다. 구제와 번역은 ‘주변자본주의적 장소에서 토착 지식과 기술로 모은 가치가 자본주의적 이윤으로 전환되는 양상’(p.523)을 말한다. 이는 자본주의가 예상하지 못한 다양성, 삶의 가능성이다.


따라서 애나 칭이 주장하는 건, 송이버섯으로부터 밝혀낸 다종의 공유지처럼 ‘잠복해 있는 공유지’(p.497), 즉 다종의 관계 맺음에서 상호적이고 비대립적인 얽힘의 공간을 알아차리려 노력해보자는 것이다. 기후 위기를 비롯한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문제들이 세계를 점점 폐허로 만들어가고 있다. 자본주의와 인간 중심의 진보 서사가 무너지고 있는 이 시점에 다종의 세계, 공존의 세계는 어쩌면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발견할 단초가 되어줄지 모른다. <세계 끝의 버섯>은 우리의 좁은 시야를 단번에 확장해주는 책이다. 처음엔 생소한 용어로 인해 다소 어렵게 느껴지지만, 서서히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열리는 경이를 경험하게 된다. <세계 끝의 버섯>을 통해 ‘알아차림의 기술’(p.45)을 터득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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