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 이야기>(슈테판 츠바이크, 문학동네, 2010)를 읽고
나는 본의 아니게 모든 시대의 연대기 중에서 가장 무서우리만치 이성이 패배하고 광포한 야만성이 승리하는 광경을 목도한 증인이 되었다.
(<어제의 세계>, p.15)
<체스 이야기>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자전적 회고록인 <어제의 세계>(지식공작소, 2001) 이후 집필한 마지막 소설이다. <어제의 세계>가 유대인이자 평화주의자로서 양차 대전 시기의 유럽을 조망한 시대의 증언과 같은 위상을 갖는다면, <체스 이야기>는 광포한 시대의 축소판인 체스보드 앞에서 노련한 심리전에 무너지고 마는 희생자의 증언이라고 할 수 있다.
<체스 이야기> 집필 이듬해 츠바이크는 망명지 브라질에서 아내와 동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소설 속 선상에서 벌어지는 체스 챔피언 첸토비치와 B박사의 체스 대결이 단지 허구의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다.
츠바이크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체스의 말처럼 고향에서 뿌리 뽑혀 이국을 떠돌아야 했다. 유럽에서 소문난 장서가이자 수집가였던 그였지만 나치의 탄압을 피해 오스트리아를 떠날 땐 빈손이었다. 활발히 교류했던 유럽의 지식인, 예술가 들과도 더는 관계를 지속할 수 없었다. 망명 생활은 그에게 소설 속 B박사가 처한 ‘무(無)의 상황’(p.45)과 비슷했을 것이다. B박사가 갇힌 방에서 블라인드 체스를 두었듯, 츠바이크도 머릿속으로 소장했던 책들의 문장을 곱씹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느 순간 정신 분열을 경험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둔하지만 교활하다고 묘사되는 체스 챔피언 첸토비치는 히틀러를 연상케 한다. 그가 상대방을 제압하는 방식은 게슈타포가 B박사를 심문할 때 쓰던 심리전과 비슷하다. 고립시킨 채 천천히 상대를 압박하는 것은 강제수용소의 노역과 고문만큼이나 인간 정신을 파괴한다. 첸토비치의 전략에 말려든 B박사는 광기에 휩싸이기 직전, 다행히 이성적인 제삼자의 도움으로 그 격자무늬에 갇힌 세계를 빠져나온다.
하지만 이는 폭력의 희생자가 언제든 과거의 지옥에 다시 끌려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쩌면 미국의 참전으로 세계대전이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을 때 츠바이크가 느낀 절망감도 이와 비슷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소설처럼 츠바이크에게도 “기억하세요”(p.83)라며 이성을 환기해 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츠바이크(B박사)가 싸워야 했던 대상은 비단 히틀러(첸토비치)만은 아니었다. 촌구석에서 일약 스타가 된 그에게 ‘민족적 자긍심’(p.15)을 느끼며 지지한 이들, 그의 지적 능력을 얕잡아보고 수를 전혀 읽지 못했던 이들, ‘공명심’(p.25)에 사로잡혀 전쟁(체스 대결)을 부추기고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이들, 상대를 압살하는 그의 냉혹함을 그저 관망하던 무지한 다수까지.
지성과 이성을 신뢰하고 인간성을 지지했던 ‘진정한 딜레탕트’(p.75) 츠바이크는 시대의 횡포에 스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유서를 보면 ‘길고 어두운 밤 뒤에 마침내 아침 노을이 떠오르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다만 그는 ‘확고한 자세’로 죽음을 택함으로써 다시는 체스보드 위의 말이 되지 않겠다는 마지막 의지를 세상에 내보인 것이 아닐까.
*이미지 출처:Pex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