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신이인, '꿈의 고백'
친언니가 피자를 사와서 내게 한 조각을 먹인 후 말했다 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외계인이었는지도 몰라
담담히 피자를 내려다보았다 아는 맛 좋은 맛
그렇지만 오늘은 안 먹고 싶었던 맛
피자로 말할 것 같으면 내 악독한 선생이 가로수길에서 팔았고 내 최초의 사랑이 익선동에서 팔았던 맛 나는 피자를 처음 먹은 날에 기절할 듯이 놀라 뱉어버리고 집으로 뛰어가 일주일을 숨어서 당황과 분노에 두근거려야 했지 그러나 이제는 그들처럼 그 과거처럼 예삿일처럼 씹고 삼키고 넘겨버리네
흔하디흔한
갈기갈기 찢어진
죽은 동그라미
지구는 재미있구나 가족이 이종족일 수 있다니
외로워도 홀로 이종족인 편이 낫겠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이해를
오해라는 이름의 가장 큰 이해를
우주로 쏘아올리는 얼렁뚱땅함이 우리의 같잖은 지구식 다정이라면
이해를 받고 또 받으면서 억울해할 수도 있겠지
한 번도 내 심장을 맞춘 적 없는 장난감 총알이 팔다리를 멍들게 하듯
이 동그라미는 살아 있구나 어설프게 우주에 붕 떠
과녁...... 죽은 동그라미로서 느끼듯
언니, 인생에 할 고민이 많은데 지금 그런 고민까지 더해야겠어? 생각하지 말고 피자나 먹어 나는 꼭 내가 피자를 사온 것처럼 생색을 냈다
드디어 우리 딸들도 대화란 걸 하는구나 외출에서 돌아온 엄마 아빠가 모자를 벗으며 반가워했다 부모의 뒤통수에 솟은 더듬이들은 그날따라 모른 체하기 어려울 만큼 꿈틀거렸다
그럼에도 그로부터 눈을 돌리는 것은 내 생애의 거의 유일하고 능숙한 요령이었다 유전적으로 타고 났을 수도 있다
- 신이인, '꿈의 고백'
[단상]
'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 /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외계인이었는지도 몰라'. 친언니의 고백으로 시작해 얼렁뚱땅 가족의 외계인 정체성이 탄로 나는 것으로 끝나는 시. 피자를 나눠 먹는 식구도 이종족이라니. 조각조각 나뉜 피자가 하나의 '동그라미'인 것과 비슷한 걸까.
언니의 충격 고백에 '피자나 먹어'라는 화자의 태연한 반응도, '드디어 우리 딸들도 대화란 걸 하는구나'하는 부모의 오해도 재밌다. 이런 게 '오해라는 이름의 가장 큰 이해'인지도.
가족의 외계인 같은 부분에 모른 체 '눈을 돌리는 것'도 요령이라면 요령. 이국적인 피자 맛에 ‘기절할 듯이’ 놀랐던 것도 이젠 ‘아는 맛 좋은 맛’이 되었듯이, 이종족 같은 구성원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족으로 끌어안는 게 또 '우리의 같잖은 지구식 다정'이다.
*이미지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