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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Jun 02. 2020

노란 밀밭을 달리는 화가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2018)> 리뷰

*본 리뷰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고흐영원의 문에서> (줄리안 슈나벨, 2018)의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어지럼증을 유발하던 노란 밀밭의 롱 테이크 장면이라고 답하겠다. 영화관을 나와서도, 심지어 글을 쓰는 지금도, 눈앞에 이 장면이 계속해서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그의 남프랑스 그림은 나의 숨을 멎게 하곤 했다. 그 많은 물감, 그 많은 색깔, 그 많은 태양이라니. _ 프레드릭 파작  


빛이 일렁이는 노란 밀밭과 을씨년스럽게 불어대는 남프랑스의 미스트랄그리고 그 속에서 미친 듯이 내달리고 있는 고흐이 장면은 카메라가 고흐의 시선에 맞춰져 있어 그가 뛸 때마다 상하좌우로 쉴 새 없이 흔들린다. 온갖 빛에 싸인 채 초점이 흔들리는 장면이 고흐의 성격처럼 고집스럽게 이어진다. 풀밭을 헤치고 달리는 소리가 장면을 가득 채우고, 고흐의 거친 숨소리가 관객의 숨까지 옥죄어온다. 이 장면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신이 혼미해지다가 자칫 실신이라도 할 것만 같다. 고흐의 광기가 관객에게로 옮겨오는 듯한 순간이다.   


  

내가 보는 것을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극 중 고흐의 대사다. 감독이 이 장면에서 노린 게 바로 이것이었을까? 남프랑스의 강렬한 태양과 성가실 정도로 맹렬한 바람, 그리고 시야를 가득 채운 ‘완전한 노란색’. 고흐가 화폭에 옮긴 그대로다. 나는 그의 그림에 한 번쯤 매료되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도 비슷한 강도의 강렬한 인상을 받으리라 믿는다.     


나는 침울하고 나태하게 절망만 곱씹는 우울보다는, 희망을 갖고, 노력하고, 뭔가를 추구하는 우울을 더 좋아했다.
_ 고흐의 편지 중에서    

이 영화를 말할 때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고흐를 연기한 윌렘 대포. 그는 우리 시대에 영적인 예술가로 상찬되고 있는 반 고흐에게 물성적인 신체와 얼굴을 부여했다. 그의 연기 덕분에 관객은 땅에 발을 딛고 생생한 눈빛을 발산하는 살아있는 고흐를 만나는 벅찬 경험을 하게 된다.      


<고흐, 영원의 문에서> 포스터




“그의 전 작품을 특징짓는 것, 그것은 과잉이다. 힘의 과잉, 신경 흥분의 과잉, 표현의 격렬함이다. 사물들의 특성에 대한 그의 단호한 긍정과, 종종 무모하기까지 한 형태들의 그 단순화와,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 보는 그 오만과, 데생 및 색깔의 그 격렬한 푸가와, 심지어 그의 기법의 지극히 사소한 특성들에서도, 대개는 난폭하고 또 어떤 때는 진솔하리만치 섬세한 어떤 강력한 존재, 어떤 수컷, 어떤 대담한 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_ <메르퀴르 드 프랑스>에 실린 미술평론가
가브리엘 알베르 오리에의 열광적인 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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