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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Jun 18. 2020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에 담긴
가장 넓은 마음

[시 읽기]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



돌아눕고 싶으니

자리 좀 비켜 줘

귀뚜라미   

  

- 잇사 -

 



[단상]

하이쿠 시인, 고바야시 잇사의 시다. 


하이쿠는 단 열일곱 자로 된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다. 이 시는 류시화 시인의 하이쿠 모음집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연금술사, 2014)에 소개된 잇사의 하이쿠 중 한 편이다.     


풀밭에서 노숙하는 잇사가 돌아누우며 이미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귀뚜라미에게 말을 건넨다. 돌아눕고 싶으니 자리를 비켜달라고. 그 모습을 상상하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모든 시인은 근본적으로 생태주의자라더니 시인의 순수한 마음이 잘 표현된 시다.     


류시화 시인은 잇사의 하이쿠가 가진 강점을 파리벼룩개구리처럼 약하고 천대받는 존재를 향한 동정심과 연대감(p.23)’이라고 말한다. 꽃이나 새도 아니고 파리, 벼룩이라니…. 실제로 잇사가 벼룩을 대상으로 쓴 하이쿠도 유명하다.     


좁긴 하지만

뛰는 연습이라도

내 집의 벼룩     


이 시에서 시인은 심지어 자신의 좁은 집을 벼룩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시인의 관심과 연민은 세상의 모든 존재, 온갖 미물에게까지 뻗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에 가장 넓은 마음이 담겨 있다.     


나태주 시인은 말했다. 잇사의 시에 오면 세상의 모든 천대받는 것들구박받는 것들버림받은 것들이 제대로 대접받고 서로 모여 정답게 대화를 하며 평등하게 어울린다참 별난 세계꽃 장엄 세상(화엄세상), 또 하나의 열린 아름다운 세상이다.”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_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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