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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Jun 19. 2020

인생에 관한 물음에
차근차근, 천천히 답하다

영화 <인생 후르츠(2017)> 리뷰

본 리뷰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인생 후르츠(후시하라 켄시, 2017)의 포스터에는 벚꽃 아래 노부부의 소박한 모습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적힌 카피 한 줄,

차근차근, 천천히
인생이 맛있게 영글었다.


<인생 후르츠> 포스터


노년의 소소한 일상을 잔잔하게 담은 영화? 포스터만 보고 나는 이 영화를 이렇게 추측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훨씬 심오하고 본질적이다. 인간은 어디서 살아야 하나?(삶의 공간=집)인간적인 삶이란 무엇인가?(삶의 방식과 태도)하는 질문부터 인생의 마지막에 세상을 위해(후대를 위해)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영화를 보다 보면 서서히 관객의 머릿속에도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삶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게 하는 영화, <인생 후르츠>는 잔잔하지만 힘이 있는 영화다.    




 

<인생 후르츠>의 주인공 슈이치 할아버지와 히데코 할머니의 나이는 둘이 합쳐 177세다. 건축가였던 슈이치 할아버지는 귀여운 부부의 일러스트에 ‘87+90=177’이라고 나이를 적어놓았다. 이 일러스트는 부부의 집 현판에도, 주변에 고마움을 전하는 엽서에도 그려져 있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장면이다. 


부부는 자신의 집에 정원을 가꿔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살아간다온갖 작물과 꽃, 과일이 자라는 정원은 집은 삶의 보석 상자여야 한다라는 르 꼬르뷔지에의 말처럼 그야말로 보석 상자다.      



부부가 자연을 집안에 들이게 된 이유가 있다. 슈이치 할아버지가 참여했던 프로젝트 중에는 고조지 뉴타운 건설이 있었다. 그는 자연을 부분적으로 남겨놓고 도시를 설계하자고 제안했지만, 결국엔 경제성과 효율을 이유로 도시에는 건물만 빽빽이 들어찼다. 그의 동료는 인터뷰에서 아마도 그가 여기에 회의를 느껴 슬로우 라이프를 실천하게 되지 않았나 추측한다. 슈이치 할아버지는 자신의 집 마당에라도 자연을 되살려 자신의 이상적인 삶을 증명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에는 여러 차례 반복되는 시가 있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열린다.     
차근차근, 천천히      


처음엔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했던 이 시가 영화가 끝나갈 때쯤이면 마음에 깊이 스며든다. 순환하는 자연과 시간의 힘차분하게 읊조리는 배우 키키 키린의 나레이션이 감동을 더한다. 


노부부는 세상과 후대를 위해 ‘비옥한 흙’을 남기고 가고 싶다고 말한다. 생명이 자랄 수 있는 흙을 말이다. 그들은 다음 세대가 풍요로울 수 있도록 이어가 주세요라고 당부한다. 




영화에는 슈이치 할아버지의 마지막 건축 프로젝트가 나온다. 다른 프로젝트 의뢰는 “저도 이제 아흔이라, 가능한 저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싶습니다.”라며 거절했던 그였다. 그런 그가 남은 시간을 기꺼이 투입하기로 한 일은 바로 정신병동 설계다. 그는 도시의 삶에 지쳐 정신의 병을 얻은 사람들을 위한 자연 친화적인 건물을 설계한다. 그 설계도에는 자연 치유의 힘을 믿는 그의 마음이 곳곳에 메모로 남겨져 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차근차근시간을 모아 천천히          


슈이치 할아버지가 설계도에 남긴 메모들


이 영화가 던진 질문에 대한 이들 부부의 답은 안토니오 가우디의 모든 해답은 위대한 자연 속에 있다로 수렴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정답을 제시하기보단 각자의 답을 찾기를 요구한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답해보자. ‘인간은 어디서 살아야 하나?’, ‘인간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인생의 마지막에 세상을 위해 무엇을 남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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