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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Jun 18. 2020

제임스 설터의 빛나는 문장들

제임스 설터의 <소설을 쓰고 싶다면>을 읽고

본 독후감에는 책의 내용 일부와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글로 쓴 것들은 우리와 함께 늙어가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시간 바깥으로 나가서 존재하거나 아니면 소멸됩니다. 


제임스 설터의 산문집 <소설을 쓰고 싶다면(마음산책, 2018)>은 설터가 2014년 버지니아 대학에서 했던 세 번의 ‘글쓰기’ 강연과 그의 인터뷰 기사를 모아 편집한 책이다.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글쓰기에 관한 제임스 설터의 솔직한 생각이 생생한 목소리로 담겨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게다가 작가 존 케이시의 말처럼 설터 특유의 리듬, 더없이 시의적절하게 뚝 끓음으로써 기분 좋은 놀라움을 자아내는 리듬이 살아있는 빛나는 문장들을 만날 수 있다.      


“평범한 모든 것, 놀라운 모든 것, 삶을 충만하게 만들거나 쓰라리게 만드는 모든 것은 (...)결국 기차에서 보이는 것들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아요. (...)어떤 영속적인 순간들, 어떤 사람들, 어떤 날들을 제외하곤 기록되지 않은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p.74)     


<소설을 쓰고 싶다면>은 소설을 쓰는 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이론서는 아니다. 오히려 제임스 설터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애정 어린 조언들이 곳곳에 있는 작가 노트에 가깝다. 그래서 베일에 싸여 있는 소설가의 집필 과정을 살짝 들여다보는 것만 같은 재미가 있다. 이 책에 실린 그의 강연 내용은 재능있는 작가의 허세가 아닌 치열하게 노력하는 작가의 진솔함이 묻어난다.     


“소설 속의 많은 인물들, 혹은 대부분의 인물들은 당연히 현실에서 가져온 인물들입니다. (...)작가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때로는 필요로 하는 것 이상을 현실에서 취해왔습니다.” (p.49-50)
“나는 내가 쓴 글에 실망할 게 틀림없다는 생각을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때도 글을 씁니다. 그러나 글이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쓰지 않습니다.” (p.90-91)     
“그 작품이 작가의 동반자인 것입니다. 작가는 마음속에 항상 그것을 담아두고 수시로 살펴보며, 잘 연결한 방안을 찾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답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작가에게 최고의 동반자가 됩니다.” (p.92)     

  

제임스 설터는 문장이 윤이 나고 빛을 발하고 절대 허물어지지 않을 때까지’ 고치고 또 고쳐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글쓰기의 온전한 기쁨은 ‘글을 다시 점검하여 어떻게든 좋게 만들어보는 기회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설터조차도 자신의 글에 실망할 게 틀림없다는 생각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꾸준히 글을 쓰는데, 나는 얼마나 자주 내가 쓴 글에 낙담하고 글쓰기를 포기하는지 반성하게 된다.     


설터는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글을 쓰고자 하는 궁극적인 충동에 관한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궁극적인 충동이요? 이 모든 게 다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에요. 남아 있는 거라곤 산문과 시, 책, 그리고 글로 기록된 것들뿐이겠죠.


기록되지 않은 모든 것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명쾌한가. 글 쓰는 열망에 대한 의구심을 한 번에 떨쳐버리는 너무나 멋진 방어다. 


<소설을 쓰고 싶다면> _ 제임스 설터



*표지 - James Salter, 1989. Photo by Sally Gall.

제임스 설터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독후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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