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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Jul 15. 2020

과학자와 디자이너는
인문학에서 만난다

김상욱, 유지원의 <뉴턴의 아틀리에>를 읽고

본 독후감에는 책의 내용 일부와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뉴턴의 아틀리에>(민음사, 2020)는 물리학자인 김상욱 교수와 타이포그래퍼 유지원 작가가 공저한 책이다.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아 보강해서 책으로 출간했다.) 이 책의 기획은 두 전문가가 소통, 죽음, 언어, 인공지능 등 각각의 주제에 대해 과학자는 예술적으로예술가는 과학자적으로(p.7)’ 써보자는 의기투합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뉴턴의 아틀리에>라는 책 제목에서부터 과학과 예술의 뜻밖의 연결’, ‘교차와 확장이라는 이 책의 매력이 물씬 풍긴다.    

 

과학과 예술의 속성이 서로 스며든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곳, 경계가 무너지고, 다채로운 관계가 생성되어 가는 곳, 그러니까 ‘뉴턴의 아틀리에’적인 순간들이 펼쳐지는 공동 공간이라는 뜻이다. (p.8)  




다음은 를 주제로 물리학자가 쓴 글이다.     


“물리는 시(詩)다. 사물의 이치는 때로 단 한 줄의 수식이나 한마디 문장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우주의 시’라 부른다. 이런 수식은 단 하나의 문자도 더 넣거나 뺄 수 없을 만큼 완벽하며, 극도로 정제된 표현만큼이나 깊고 심오한 의미를 내포한다. 그래서 수식이 가지는 낮은 온도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물리학자는 우주의 시에 반한 사람이자 매혹된 상태다. (p.95)”   

  

물리가 ‘시’라니, ‘F=ma’와 같은 수식이 따뜻하고 심지어 아름답다니.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과학자는 이렇게 예술적인 시선으로 과학을그리고 세상을 본다 

    

같은 주제로 타이포그래퍼는 이상의 <오감도 시제4>의 제작 공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변형이 어려운 금속활자를 사용하던 시절, ‘이상은 대체 숫자들을 어떻게 반전시켰을까?’ 질문을 던지고 마치 과학자처럼 자신의 가설을 실험을 통해 검증해간다.     


“지형을 사진으로 찍어 처리한 단계에서, 숫자판은 텍스트 글줄의 서술적인 흐름이 이제 고체처럼 결정화한 한 판의 그림이 된다. 시는 그래픽적 이미지가 된다. 좌우가 반전됨으로 해서 인간의 음성으로부터 더 멀어지며, 서술적인 텍스트로 읽히기를 거부한다. (p.91)”     


타이포그래퍼는 매체에 개입함으로써 메시지를 전하려는 뜻이 아니었을까, 시인의 마음까지 헤아려 본다.


<오감도 시제4호>_이상

 



하나의 주제에 관해 과학자와 디자이너는 이처럼 서로 다른 글을 내놓는다. 김초엽 소설가가 추천사에 쓴 것처럼 “과학자는 우주에서 시를 발견하고 디자이너는 글자의 아름다움에 관한 법칙을 쓴다.” 놀랍게도 하나의 사물을, 현상을 다른 관점에서 보고 쓴 글이 독자의 머릿속에서 합쳐져 새로운 사유를 낳는다. 낯선 언어는 인식을 확장시킨다는 말처럼 다차원의 무한한 세계가 펼쳐진다. 몇몇 의식을 깨우는 문장들을 발췌해본다.  


“과학의 눈으로 볼 때, 물질로 이루어진 우주에 인간이 말하는 의미나 가치는 없다. 중력에 의한 물체의 낙하 자체는 아름다운 일도 불행한 일도 아니다. 낙하하는 것이 낙엽일 때 아름답고, 유리잔일 때 불행하다. (...)가치는 인간이 임의로 부여하는 것이다. (p.190-191)”     
“하나의 경로만 정상으로 간주하면, 개인의 고유성은 소외된다. (...)모든 개인의 가치를 고루 살피고 구성원의 자존감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가치의 기준들이 다원화되어야 한다. 평균을 산출하는 단편적인 잣대로는 규정되기 어려운 잠재적인 재능들을 돌보아야 한다. 교육은, 특히 교양 미술 교육은 그렇게 가야 한다. (p.258)”   

  

이 책의 의의는 단지 하나의 주제를 놓고 전혀 다른 분야의 두 전문가가 글을 썼다는 데 있지 않다. 과학자와 디자이너가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의미를 찾고 사유를 확장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데 있다그들은 인문학에서 만난다


인문학의 품은 넓다과학과 예술을 모두 끌어안을 정도로     


<뉴턴의 아틀리에> _ 김상욱, 유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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