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순수한 의식의 바다를
만나는 방법

피크닉 갤러리 <명상(Mindfulness) 展>

by 이연미


모든 인간의 내부에는
순수하고 진동하는 의식의 바다가 있다.
초월 명상을 통해 초월하게 될 때
당신은 순수한 의식의 바다로
잠수해 들어간다.*


아침에 10분 명상을 시도했다. 열린 창문으로 비 온 뒤의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더위가 이어지던 날들과 대비하니 조금은 쌀쌀하게 느껴질 정도. 눈을 감고 호흡하며 에너지를 태우니 몸이 곧 따뜻해졌다. 10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무념무상의 경지에 도달했다… 고 하면 참 좋겠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쉬울 리가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스쳤다. 그래도 스치는 생각을 붙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명상을 마친 후, 세상도 나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눈은 한층 맑아진 느낌이다.


갑자기 ‘나도 한번 명상을 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건, 피크닉 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전시 <명상(Mindfulness)>을 다녀오고부터다. 갤러리는 코로나 확산 방지와 체험형 작품들의 여유로운 감상을 위해 시간 예약제로 입장 인원을 제한하고 있었다. ‘명상, 마음챙김’이라는 전시 기획에 맞게 천천히 돌아보고 충분히 감상할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피크닉_명상_전시.png Mindfulness : 자신의 현재 상태에 대한 판단의 개입 없이 주의를 기울이는 심리적 과정.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첫 번째 주제는 ‘죽음과 함께하는 삶(Being with Dying)’이다. ‘명상’인데 왜 하필 ‘죽음’을 먼저 보여주는 걸까, 하는 의문은 작품을 감상하면서 사라졌다. 대만 작가 차웨이 차이의 작품 <바르도>는 마치 묘실처럼 네모낳고 어두운 공간을 연출하고 바닥의 잿더미 위에 영상을 비춘다. ‘바르도(Bardo)’란 죽음과 환생 사이의 ‘중간계’를 뜻하는 티벳 불교 용어로, 작가는 죽음에 가까이 갔던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들이 보았던 빛의 환상을 영상으로 제작하고 그 위에 ‘티벳 사자의 서’를 낭독하는 차분한 음성을 더했다. 어둠과 고요 속에서 ‘This is what death is. (이것이 죽음이다.)’라는 메시지를 듣는 순간, 내가 마치 죽은 자의 의식이 되어 사후세계를 체험하는 것만 같은 초월적이고 숭고한 느낌을 받았다. 갤러리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 나를 사로잡고 있던 집착과 정념에서 벗어나 정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5428219035ef42f4bd043a.jpg 차웨이 차이, <바르도> *출처: 월간 스페이스


미야지마 타츠오의 <다섯 개의 마주하는 원>은 각기 다른 속도로 카운트되는 숫자들을 보여주며 인간 개개인이 삶에서 느끼는 ‘시간의 상대성’을 표현했다. 모두가 숫자 '99'에서부터 ‘0(죽음)’을 향해 달려가지만, 작가는 죽음도 삶의 순환고리이며 새로운 삶으로 이어짐을 보여주기 위해 숫자 ‘0’은 표시하지 않았다. ‘죽음은 삶의 대척점이 아닌 그 일부이며, 멈추는 상태가 아닌 통과하는 과정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106471509_2612877915635566_7800380056203366917_o.jpg 미야지마 타츠오, <다섯 개의 마주하는 원> *출처: 피크닉 인스타그램




전시는 다음 주제 ‘수행(Practice)’으로 이어진다. 박서보 작가의 묘법은 그 자체로 수행이다. 젖은 종이에 노동에 가까울 만큼 반복적으로 선을 그어 캔버스 위에 요철을 만든다. 마치 잘 경작된 밭고랑을 보는 것 같다. 작가는 캔버스의 한쪽 공간을 일부러 비워두고 ‘숨 쉬는 창문’이라 이름 붙였다. 작품 <원 오브 제로>는 공간과 작품이 어우러져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박서보 작가는 '그림은 수신(修身)의 도구, 즉 자신을 갈고닦는 일'이라고 말한다.


UIT7iX-700x466.jpeg 박서보 & 원오브제로, <원 오브 제로> *출처: 피크닉 홈페이지




마지막 주제는 ‘알아차림(Awareness)’이다. 설치 작품 <숨 쉬는 공간>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와 마르코 바로티의 작품으로 들숨과 날숨이 천천히 반복되는 폐 속을 형상화했다. 한 사람이 겨우 걸을 만한 하얀 복도의 양옆으로 비닐 벽이 세워져 있고, 공기가 차고 빠짐에 따라 천천히 확장됐다 축소됐다 한다. 공간이 축소될 때는 가운데 서 있던 관람객이 그사이에 꽉 끼어 숨이 찼다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5분 이상을 머물라’는 안내를 따르면 생의 리듬인 호흡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명상-Mindfulness-피크닉-piknic-전시05-750x430.jpg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 & 마르코 바로티, <숨 쉬는 공간> *출처: 피크닉 홈페이지


오마 스페이스의 <느리게 걷기>는 나선형의 길을 헤드셋을 쓰고 맨발로 걷는 체험형 설치 작품이다. 바깥에서 안으로, 다시 안에서 바깥으로 걸으면서 관람객은 다양한 질감의 바닥이 발바닥에 닿는 감각에 집중하게 된다. 오롯이 혼자가 되어 ‘의식의 길’을 느리게 걷다 보면, 어느새 ‘지금, 여기, 나’에 몰입하게 된다.


KakaoTalk_20200730_040052706.jpg 오마 스페이스, <느리게 걷기> *출처: 피크닉 인스타그램




글의 첫머리에 인용한 문장(*)은 데이빗 린치 감독의 책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그책, 2008)에서 발췌했다. 이번 전시에 데이빗 린치 감독테트아테트와 함께 작업한 <막이 오르다(curtains up)>라는 작품을 출품했다. 40여 년간 명상을 실천한 데이빗 린치 감독은 창의성과 잠재력을 깨우는 명상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영상에 담았다. 그는 명상을 통해 내면으로 깊이 잠수해 ‘의식의 바다(Sea of Consciousness)’를 경험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작은 물고기는 표면에서 놀지만 큰 물고기는 물속 깊은 곳에서 논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큰 물고기다.


9c8df27bd6f8469e81bc9c3e85b48967.jpg 데이빗 린치 & 테트아테트, <막이 오르다> *출처: 현대카드 포스트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패브리커의 <공간(Space)>이다. 계단을 올라가면 안개가 자욱한 공간이 나온다. 관람객들이 거리를 두고 자리에 앉으면 종소리와 함께 잠시 암전이 된다. 지금까지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간접적으로 경험한 명상을 이곳에선 짧은 시간이지만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훌륭한 마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상-Mindfulness-피크닉-piknic-전시01_1.jpg 패브리커, <공간> *출처: 피크닉 인스타그램




<명상(Mindfulness)>의 긴 여정은 피크닉 갤러리의 예쁜 루프탑에서 끝난다. 한옥같이 편안한 다실이 준비되어 있다. 최근에 자신을 지배했던 감정을 선택하면 그에 맞는 차를 처방해준다. 바쁘고 혼잡한 도심 속에서 진정한 ‘마음챙김’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전시였다.


KakaoTalk_20200730_033458750.jpg 내가 선택한 '무기력할 때'의 처방 차(TEA)



전시: 명상 (Mindfulness)
기간: 2020.04.24. (금) ~ 2020.09.27. (일)
장소: 피크닉 http://pikn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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