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에 책임을 회피하는 인간은 리더의 자격이 없다
12월, 우물을 파던 이들에게 찾아온 추위
2025년 12월. 한 해를 매듭짓고 새해를 그려야 할 시기다. 직장인에게 이달은 설렘보다는 '인사 시즌'이라는 특유의 긴장감이 감도는 달이기도 하다. 내가 속한 조직도 2026년 인사의 기본 틀을 짜야 했다.
하지만 12월이 저물도록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결정권자인 관리자의 마음에 드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미 지원한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나 역시 지원자 중 한 명이었다. 지난 2년간 해온 업무의 연속성을 지키고 싶었고, 이동에 필요한 점수가 필요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말처럼 직접 관리자를 찾아가 의지를 밝혔다. 하기 싫고 명분 없는 일들까지 묵묵히 해내며 나름의 성의를 보였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기다리던 소식 대신 돌아온 건 부관리자를 통한 '잡도리'였다.
"문서의 글자 포인트가 작다." "폰트가 틀렸다." "먼지가 보인다."
실무의 본질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지적들이 쏟아졌다. 관리자는 직접 말하는 대신 부관리자를 요란하게 닦달했고, 중간에서 괴로워하던 부관리자의 신세 한탄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달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실수가 많아서 그렇구나라고 자책했다. 하지만 자간, 여백, 글씨체까지 이어지는 집요한 압박을 보며 깨달았다. 이것은 업무 피드백이 아니라, 나를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려는 잡도리라는 것을. 결국 부관리자의 입을 통해 결정적인 한마디가 전해졌다.
"관리자님이 지원자 말고 다른 사람에게 그 자리를 주려고 하시네."
그 말을 듣자마자 미련 없이 답했다.
"부관리자님, 그냥 저 안 한다고 전달해 주세요."
포기 선언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인사의 기본 틀이 발표되었다. 마치 이미 준비해 둔 명단을 서랍에서 꺼내기만 한 것처럼 말이다. '아, 정말 나에게 그 일을 맡기기 싫었구나.'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다.
퇴근길, 관리자에게 전화가 왔다. "그동안 업무 하느라 고생했어. 마음이 안 좋겠지만 어쩌고저쩌고..." 위선적인 위로에 나는 답을 했다.
"관리자님께서 그리신 그림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관리자의 변명을 뒤로하고, 주말 잘 보내시라는 말과 함께 통화를 끊었다.
인사권은 관리자의 고유 권한이다. 누구를 선택하든 그것은 그의 결정이다. 하지만 진정한 리더에겐 그 결정의 이유를 당사자에게 직접 설명할 책임이 있다.
내가 화가 난 지점은 직책을 얻지 못해서가 아니다. 본인이 악역이 되기 싫어서, 본인의 입으로 거절의 말을 내뱉기 무서워서 아랫사람을 방패막이 삼아 압박을 가한 그 비겁함 때문이다.
자신의 결정을 당당하게 전하지 못하고, 욕먹기 싫어 선한 척 위선을 떠는 사람은 리더가 아니다. 그저 '리더'라 불리고 '비겁자'라 읽히는, 자리만 차지한 겁쟁이일 뿐이다. 구성원들은 그런 사람을 존경하지도, 본받지도, 따르지도 않는다. 그저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이런 비겁한 리더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냥 두어라'이다.
우리의 황금 같은 시간을 저런 사람들을 미워하고 분석하고 자책하는 데 쓰는 것조차 낭비다. 백날 조언하고 화를 내본들, 본인이 바뀔 의지가 없다면 나만 스트레스 받을 뿐이다.
대신 우리는 그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훗날 내가 결정권을 가졌을 때, 나는 결코 저런 비겁한 뒷모습을 보이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는 것이다. 내 결정에 책임을 지고, 불편한 진실도 당당하게 마주할 줄 아는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한 밑거름으로 삼으면 그만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내가 바라는 진짜 리더를 만나게 되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