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 개구리도 우물 안 개구리다

나에게 말하는 하루 한 장

by M ent

우물 밖의 세상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개구리에게 우물 안의 삶은 답답함 그 자체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자신이 경험한 좁은 세계를 세상의 전부이자 유일한 진리인 양 말하는 모습을 보면


우물 밖의 개구리는 안타까움을 넘어 답답함에 가슴이 터질 것 같다.


드넓게 펼쳐진 하늘과 초원, 우물과는 비교가 안 되는 광활한 연못, 풍요로운 먹거리, 매력적인 동료 개구리들

우물 안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 외부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고작 좁은 우물 안이 최고라고 고집하는 모습에 차라리 벽과 대화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물 밖 개구리는 우물 안 개구리의 더 나은 삶을 진심으로 바란다.


밖의 세상을 이야기하며 우물 밖으로 가자는 제안의 끝은 거절이다.


참을성의 끝에 나온 분노의 말이 창이 되어 날아간다.


"그러니 너의 수준이 그거지!"


이에 우물 안 개구리 역시 지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그리 대단하고 좋은 건데! 지금도 부족함 없이 충분히 좋은데!"


양보 없는 두 개구리의 대립은 끝내 등을 돌린 채 영원히 만나지 않았다는 어디선가 들어봤던 이야기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속한 환경과 긍정적인 경험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자연히 그 외의 가치들은 상대적으로 열등하고 하찮은 것으로 치부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좁은 세계를 전부라고 주장하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가볍게 여기는 오만에 빠진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그 '작고 하찮아 보이는' 세상을 진정으로 경험해 보았을까? 그리고 그 상대의 입장에 서서 세상을 바라본 적이 있을까?


우물 밖 개구리는 우물 안을 경험하지 못해 봤거나 경험한 지 오래됐을 수 있다. 또한, 우물 안 개구리의 사정을 깊이 알지 못한다.


우물 안 개구리의 상황과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조언이라고 생각한 말을 한 것이다.


어쩌면 우물 안 개구리는 밖의 생활이 너무 힘들어 좌절하고 돌아왔을 수도 있고, 신체적 제약 때문에 나갈 수 없거나, 돌봐야 할 어린 가족들 때문에 발이 묶여 있을 수도 있다.


아무리 선의에서 비롯된 훌륭한 조언이라 할지라도, 듣는 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일방적인 주장이나 상대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말의 설득력은 0에 수렴한다.


우물 밖 개구리가 아는 것은 오직 우물 밖의 세상이다. 그들이 우물 밖의 세상을 진리이자 더 나은 가치인 양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을 최고라고 맹신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독선일 뿐이다.




현실 속에서도 이러한 '시야의 경계'에서 비롯된 갈등이 만연합니다.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갈등

기성세대와 MZ세대의 갈등

관리자와 직원의 갈등

계층 및 이념 간의 갈등

정치적, 종교적 신념의 충돌


이 모든 갈등은 '나'의 경험과 '나'의 세상이 곧 진실이라고 굳게 믿는 데서 시작된다. 같은 시야를 공유하는 이들과만 교류하다 보면, 그 시야는 어느덧 절대적인 진리가 되어버린다.

이 때문에 자신과 반대되는 이야기에 귀를 닫고, 상대방의 주장을 한심하다고 쉽게 단정 짓는다. 그리고는 무심하게 말한다.


'정말 꽉 막힌 사람이군.'


아이러니하게도 상대방 역시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마찰을 끝내는 방법은 결국 둘 중 하나가 포기하는 것밖에 없다.

그게 가능했다면 우리는 포기가 만든 갈등 없는 세상에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겠지만..


진정으로 상대를 설득하고 관계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상대의 입장을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부재한다면, 결국 두 개구리처럼 서로를 마주하지 못하고 영원히 평행선만을 달리게 될 것이다.


함께 살아가야 할 이 세상에서, 서로가 우물 안팎으로 손을 내미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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