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거절하자. 거절도 해본 사람이 할 줄 안다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환경에서 성장하며 밥상머리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예의와 더불어 '순종'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사회다.
가정과 학교에서부터 웃어른을 공경하고, 순순히 따르는 자세를 배웠다.
그 결과, 우리는 '싫어요', '아니오'라는 말보다 '알겠어요', '좋아요'라는
긍정의 대답이 훨씬 익숙하고 쉬워졌다.
이 익숙함은 거절을 미루고 마지못해 '수락'하게 만드는 일종의 편안함으로 위장한다.
획일화된 성장의 과정 속에서, 거절하는 행위 자체가 마치 죄악처럼 취급받는 분위기가 형성된 탓이다.
그래서 우리는 거절하지 못할 때 왠지 모를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낀다.
이는 오랜 시간 체득된 습관의 잔재다.
나 또한 여전히 거절이 어렵다.
분명 나에게 부담이 되는 일인데도, 회사에서든, 가정에서든, 친구 사이에서든 명확하게 거절하지 못한다.
거절하지 못해 가장 힘든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다.
아무 감정 없이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거절하지 못해 떠안은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거나 내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진시킬 때,
우리는 "그때 거절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의 자조섞인 마음의 소리가 나온다. 그리고 자신에게 화를 낸다.
나아가 부탁한 당사자에게 원망과 미움의 감정을 느끼며 관계를 해치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신을 탓하고, 자존감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굴레는 우리가 '거절'이라는 기술을 능숙하게 익힐 때까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옛말에 '떡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했다.
거절도 이와 같다. '거절도 해본 사람이 잘 할 줄 안다.'
처음은 낯설고 어색하다. 그렇게 배워왔고, 그게 당연한 것처럼 지금까지 살아왔기 때문이다.
최근 소위 MZ세대가 자신의 의사를 확고히 거절하는 모습은 때로 이기적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이는 자신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건강한 자기애의 발현이다.
그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거절하는 용기를 내는 것이다.
우리도 오늘부터 나를 위해 거절하는 연습을 시작하자.
무언가를 처음 배울 때의 고통을 떠올려보자.
운전을 처음 배울 때, 특히 평행 주차처럼 까다로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머리로는 알지만 몸은 얼어붙는 느낌을 겪는다.
분명, 유튜브를 몇십번, 몇백번 돌려보고 시뮬레이션도 매일 밤마다 했다.
그럼에도 차에만 타면 몸이 다시 얼어붙는다.
옆 친구는 술술 해내는 모습을 보며 질투하거나 불안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반복된 연습 끝에 지금은 어떤가?
복잡하게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주차를 완성한다. 부담스럽거나 고통스럽지 않다.
거절 또한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미안하지만 어려워', '이번엔 안 되겠어'라는 말이 혀끝에서 맴돌다가 목구멍 안쪽으로 다시 삼켜버릴 것이다. 미안함과 함께 불편하고 어색할 것이다.
하지만 평행 주차를 반복 연습했던 그때처럼, 거절도 반복하다 보면 새로운 세상이 보일 것이다.
"거절한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구나." "거절이란 나를 위한 것이구나."
거절은 타인에게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라, 나를 위한 가장 이타적인 자기 보존의 기술이다.
상대를 위해서가 아닌, 오직 나를 사랑하고 지키기 위해, 오늘부터 작은 것부터 연습해보자.
"미안하지만, 이번엔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