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게 나다. 사랑하자.
해 질 녘, 잠실 롯데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야경은 경이롭다. 수많은 불빛이 밤하늘의 별빛보다 더욱 밝게 빛나며, 그 빛은 질서 정연하고 고요하다. 마치 아름다운 하나의 작품 같다.
하지만 그 고요한 서울스카이에서 내려와 도심 속 번화가로 발을 딛는 순간, 풍경은 완전히 바뀐다. 사람들의 발걸음, 차량의 경적, 다양한 냄새, 시끌벅적한 활기가 동시에 몰려든다. 같은 서울이지만, 서울 스카이의 '고요한 예술'은 사라지고 '혼란스러운 현실'만이 남는다.
멀리서 보이는 산은 거대한 녹색의 덩어리, 마치 초록색 색종이 같은 단일한 색채로 인식된다. 통일되고 웅장한 하나의 존재다.
그러나 산을 직접 오르기 시작하면, 그 안의 풍경은 수천 가지 색으로 분해된다. 바위의 회색, 이끼의 습한 녹색, 야생화의 노란색, 바닥을 덮은 갈색 낙엽. 멀리 서는 볼 수 없던 생명체와 무생명체의 색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 숨 쉰다.
같은 대상이라도 어떤 거리에서,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본질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 거리가 대상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가 달라짐에 따라 대상의 다양한 측면이 드러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인식하는 '나' 역시 그렇다.
먼 곳의 나는 사회적 역할, 직함, 타인에게 비치는 이미지, 그리고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이 '나'는 항상 차분하고 이성적이며, 성공을 향해 돌진하는 활발한 외향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까운 곳의 나는 어떤가. 그건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영역이다.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넷플릭스를 보는 나,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괴로워하는 나, 어쩌면 타인이 보기엔 비합리적이고 이기적일 수도 있는 내면의 모습이다. 이 '나'는 내향적이며 감정 기복이 심하고, 때론 나약하다.
우리는 종종 '먼 곳의 나'가 진짜 '나'이기를 강요하며, '가까운 곳의 나'가 드러날까 걱정하며 불안해한다. 그리고 두 모습의 '나'에 괴리감을 느낀다.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하지?', '사람들 앞에서 보인 내 모습이 가짜였나?'
하지만 서울 스카이의 고요한 도시와 번화가의 시끄러운 현실이 모두 '서울'이듯, 차갑고 이성적인 모습과 따뜻하고 정 많은 내면의 모습이 모두 '당신'이다.
나의 이 두 가지 모습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이루는 하나의 모습이다.
'먼 곳의 나'가 세상과 상호작용하기 위해 만든 사회의 아바타라면, '가까운 곳의 나'는 나의 진실과 나만의 비밀을 담고 아바타를 움직이는 핵이다. 이 두 가지를 부정하고 한쪽만을 '진짜 나'라고 규정하려는 시도는 좋아하는 것만 먹고 싫어하는 건 먹지 않는 편식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다.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서도 보고, 다양한 각도에서 나를 바라보고 느끼자. 내가 가진 수많은 모습, 심지어 내가 싫어하고 없애고 싶어 하는 그 모습까지도 모두 나임을 인정해야 한다.
결국, '먼 곳의 나'와 '가까운 곳의 나'가 온전히 합쳐진 존재만이 진정한 '나'다. 그 모든 면을 끌어안을 때, 비로소 온전한 존재로서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너무 미워하지도 말고 너무 멀어지려고 하지 말고 너무 밀어내려고 하지 말자.
그 모든 게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
내가 먼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사랑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