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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군의 탐구생활 Dec 16. 2021

직장 생활에 회의감이 오는 때

직장이 나를 정의하지는 않는다.

얼마 전 아이 없이 맞은 아내와 나의 둘만의 귀한 2시간을 한적한 카페에서 보내는데 썼었다. 처음엔 거기에 비치된 책을 따로 보다가 곧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내의 부서는 최근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25년 한 회사에서 일하고 아내의 팀장으로 8년이나 같이 일했던 분이 50의  나이에 갑자기 퇴직을 했다. 퇴직은 자기의 의지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동창이자 자신의 상사로 새롭게 부임한 사람, 그리고 그 사람에게 부합하는 충성된 직원이 되고자 하는 또 다른 신무리들이 작당하여 분위기를 만들고 압박을 가했다.

그렇게 한 직장밖에 모르던 그분은 명예가 아닌 자괴감만 안고 불명예 퇴진을 하였다. 한 사람의 퇴진은 새로운 조직 개편을 불렀고 위계질서의 사다리에는 칸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퇴직을 주도했던 이들은 새로 생긴 칸으로 한 단계 올라가거나 연말 평가에서 S를 받았다.  

그리고 이 일은 구멍가게가 아니라 우리나라 5대 그룹의 한 계열사에서 일어난 일이다.

아내는 이일로 8년이나 일한 첫 직장에 회의를 느꼈고 이직 결심을 내렸다. 그리고 직장과 자신을 동일시했던 마음도 내려놓았다. 나야 예전에 직장과 내가 다름을 반 강제로 알게 되었지만 한 직장만 다녔던 아내로서는 충격이 컸던 것 같다.


누가 잘못된 걸까?


거대한 조직사회에서 그 흔한 정치도 없이 묵묵히 맡은 일만 했던 그분이 잘 못된 건가? 임원 승진에 만족을 하지 못하고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조직을 크게 만들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 박힌 돌을 빼내고 굴러온 돌로 채우는 그 임원이 틀린 걸까?

아니면 성취의 보상으로 주어지는 승진과 평가가 주객이 전도되어 쉬운 지름길을 만들어 버린, 어쩔 수 없이 생긴 부작용 일지도 모른다.


예전에 학위를 하던 실험실에서 기숙사로 가던 길 옆에 작은 나무 숲이 있었는데 거기에도 길이 하나가 있었다. 잘 포장된 인도가 바로 옆에 있었지만 숲을 가로지르면 30초라도 더 빨리 갈 수 있었기에 사람들이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길이 만들어졌다. 비나 눈이 와서 흙이 질퍽해지지 않는 이상 많은 사람들은 원래의 길이 아니라 지름길로 다녔다.

사람들은 빠르고 편한 방법을 선호한다. 조직에서 자리를 지키기 위해선 맡은 바 일만 충실히 하는 건 잘 포장된, 그러나 오래 걸리는 길일지도 모른다. 지름길이 생기는 건 필수 불가견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름길을 잘 막으면 원래 길로 사람들을 유도할 수 있겠지만 잘 막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은 새로운 빠른 길을 찾아낼 것이다.

원래 길로 가는 게 더 좋다는 걸 꾸준히 보여주어야 한다. 교육도 시키고 유인책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쉽겠는가? 조직이 커질수록 오히려 더 어려울 것이다.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는 30명 남짓인데 1년 전 내가 20 번째 입사자였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직원수가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나는 몇 번인가 동료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 회사만큼 직원들이 인성이 좋고 자기 일에 알아서 열심힌 사람들로만 있는 조직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지 잘 모르겠다. 조직이 이렇게 갑작스레 커가면 좋은 사람도 오겠지만 미꾸라지도 오게 될 것이다. 갈등도 생기고 분위기가 안좋아 지는 일도 많이 생길 수 있다.'

 우리 회사도 수면 밑에 혹은 수면 위로 살짝 올라왔던 여러 가지 문제들이 조직이 커 감에 따라서 더 높고 더 크게 올라올 것이다.


직장인이 아니라 직업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 더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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