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가를 주고받을 준비가 되어 있나?
연말 평가 시즌이 끝나고 평가가 나오거나 예정이 되어있는 요즘이다. 우리 회사도 자기 평가서를 제출을 하였고 윗선의 검토와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연말 평가를 몇 번 겪다 보니 자기 평가서가 형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깨달아 초년생 시절 자기 평가서 가지고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적었던 때가 떠올라 조금은 부끄럽다.
자기 평가서 기간을 한 이주쯤 앞둔 어느 날, 다른 팀 담당 임원으로부터 이메일을 하나 받았다. 내용은 자기 팀 소속 팀원 A에 대한 피어 리뷰(peer review), 즉 동료 평가를 연말까지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다른 팀이긴 하지만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누구보다도 많은 시간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눈 A이었기에 피어 리뷰란 걸 하게 된다면 적절한 대상이었지만 몇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1. 리뷰를 제출해야 하는 임원은 다른 팀이긴 하지만
벤처라는 특성상 나에 대한 평가와 인사권도 가지고 있다. 내가 그 임원의 팀원에 대해 솔직한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칭찬만 할게 아니라면 괜히 자기 팀원에
대한 불만이 있다는 부정적인 인식만 줄 터이었다. 안 그래도 마찰이 몇 번 있던 터이라 내가 어떻게 리뷰를 해야 할지 몰랐다.
2. 동료 평가는 회사차원에서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임원의 재량으로 수행되는 것이었다. 의무가 아니다 보니 동료평가를 수행하는 다른 팀은 보이지 않았다.
동료평가가 대상 직원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는
모르겠다. 동료평가의 본래 취지는 아주 좋다고 생각하지만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채 겉모양만 흉내 내면 부작용만 생길 수 있다. 실제 카카오 등 IT기업 등이 동료평가를 실시했지만 평가의 근거도, 성장을 위한 피드백도 없이 단순 점수만 낙인찍듯 줘버려서 오히려 직원들의 자존감만 떨어졌다는 기사를 보았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그러했다. 평가의 시스템도 없고 평가가 어떤 식으로 당사자에게 전달될지, 그리고 나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른 체 상대방을 평가하라는 것은 무게감이 너무 컸다. 그냥 형식적으로 좋은 말만 쓸까도 싶었다. 그러자니 그렇게 좋은 평가만 받을 사람도 아닌 것 같아서 선뜻 내키지도 않았다. 내 담당 임원에게도 상의하고 인터넷에서 동료평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찾아보며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몇 줄 적어내는 게 그 어떤 문장들을 적은 것 보다도 부담이 됐다.
지웠다 썼다를 반복, 결국 한 글자 한 글자 힘줘서 쓴 서너 줄을 2021년 마지막 날 하루 전에 보냈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본래의 목적에 맞게 작성하자는 것이었다. 본인의 성장을 위해 어떠한 점이 필요한지, 또한 그것이 내가 아니라 팀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점임을 강조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날것 그대로 적을 수는 없었지만 적절한 명분을 가지고 완곡하게 표현하였다. 이 피드백이 제대로 반영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아마 큰 영향이 없을지도 모른다.
변화는 피드백을 받는 사람의 몫이지만 나는 피드백을 주는 사람이니 내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한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