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나를 잡아먹지 못하게 하기
연구실에서 실험이란 걸 한지도 15년이 되었다.
손기술이 아주 뛰어나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못하는 실험은 없었고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반복해온 자신감이란 게 있었다.
얼마 전 한 동료가 하던 일을 몇 달 정도 하게 되어 인수인계를 받게 되었다. 실험 종류가 낯선 것도 아니고 포맷도 새로울 게 없었다. 처음 시작을 해보니 나쁘지는 않았지만 완벽하지는 못했고 그다음 날 다시 한번 더하게 되었다. 한 버 정도 더 해보면 잘 되겠다 싶었는데 이게 웬일인지 처음 실험보다 더 엉망인 결과가 나왔다. 샘플 간 오차도 크고 실험 시그널도 낮았다. 절치부심으로 한 번 더 해봤는데 역시나 잘 되지 않았다.
난감한 일이었다. 나 혼자만 하는 실험이면 그나마 나을터인데 두 명이 보조를 맞추어 진행해야 하는 실험이고 매 실험마다 전임자에게 결과를 공유했던 터라 안된 실험을 말하는 게 너무 답답했다.
한편으로 자존심도 너무 상했다. 어렵고 힘든 실험도 아니고 실험 경력도 짧지 않은데 이게 무슨 망신인가 싶었다. 속상한 마음이 계속 커지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감정을 키우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쓰는 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예전에도 무언가 일이 잘 안 풀리고 자존심도 상하는 일이 있을 때 그 감정이 나를 야금야금 먹어서 오랫동안 힘들었던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그랬기에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자존심은 상할 수 있지만 자존감은 떨어지면 안 된다. 그렇게 되려면 내가 항상 마음에 두었던 일과 감정을 분리하는 실천을 해야 한다. 속상하고 부끄럽더라도 어쨌든 해야 하는 일이고 완성해야 하는 실험이다. 이 실험을 잘 수행하게 된다면 이 힘든 감정도 지나간 일이고 결국은 내가 극복했던 하나의 성취가 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힘들 때일수록 성급하게 하지 않고 마음을 차분히 하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 이 실험 말고도 해야 하는 일도 많다. 하나하나 잘 분리하고 정리해서 이 감정이 다른 일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