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은 싹을 낸다.
얼마 전에 개인 이메일 계정을 열었다가 한 과학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에게서 온 이메일을 받고 놀랐었다.
사정은 이러했다.
과고를 나오지는 못했지만 과고 학생의 질문은 받을 수 있다.
내가 예전에 생명과학 최대 커뮤니티인 브릭(bric)에 질병 치료제 전략 중 한 가지 방법(Antisense oligonucleotid, 이하 ASO)에 대한 동향 글을 기고한 적이 있는데 그 글을 보고 궁금증이 생긴 학생이 나에게 하고 싶은 질문을 이메일로 보내온 것이었다. 그 학생은 아직 고등학생 신분임에도 ASO를 주제로 발표를 준비 중이었고 내가 기고한 글도 참고했던 모양인데 그 글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점이 생겨 나에게 질문을 한 터이었다. 내가 쓴 글에 대한 반응이 이런 식으로 오는 것도 신기했고 고등학생이 관심을 갖는 것도 대단해 보여서 최선을 다해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주었고 그 이후에도 한 두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질문과 답을 했었었다.
내가 그 글을 썼던 이유는, 아직 국내에 ASO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했었고 지금 회사에서 ASO에 대해 기술 발표했던 내용을 단발성으로 끝내기에는 준비한 노력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브릭에 기고했을 때 소정의 기고료를 받는 건 덤이었다. 여하튼 새벽마다 일어나서 몇 주간 글을 준비했었었다. 최선을 다해 자료를 조사하고 내 개인적인 경험을 덧발라 쓴 글이어서 누군가가 그 글을 읽고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씨앗을 뿌리면 언젠간 싹이 튼다
그 글을 전공자나 현직 종사자만 볼 줄 알았는데 과학고 학생이 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도 학창 시절 과학서적을 읽고 호기롭게 저자에게 이메일을 몇 번 보낸 기억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친절히 답을 받았던 기억도 떠올랐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내가 학생의 이메일을 받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하였었다. 결국 나는 어떤 열매가 열릴지 모르는 작은 씨앗을 뿌렸고 그 씨앗은 예상하지 못한 소중하고 귀여운 싹을 내었다. 여러 글을 쓰면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데 그래도 글이라는 씨앗이 작은 싹을 내서 흐뭇하였다.
세상을 바꾸려면 먼저 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쳐야 한다.
현재 내 개인적으로 큰 일을 준비하고 있다. 그 일의 시작 동기는 지극히 개인적이 지만 궁극적으로는 타인을 향하고 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것도, 브릭과 같은 커뮤니티에 글을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좋은 의도와 약간의 노력이 만나면 세상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일론 머스크나 혈액형을 발견한 카를 란트슈타이너와 같이 세상을 바꾸진 못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시작은 누군가에게 작은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까?
참고로 내가 썼던 동향 글은 아래와 같다.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report&id=3998&Page=2&PARA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