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내기 연습
회사에서는 진행상황 보고부터 기획 발표까지 다양한 발표를 할 기회가 많이 생긴다.
예쁘게 음식을 담고 꾸미는 것이 음식을 더 맛있게 하듯이 열심히 매달린 일을 잘 발표하는 것은 일과 자신을 더 돋보이게 만든다.
학위 때부터 수많은 발표를 해왔고 좋은 피드백도 받았기에 스스로 어느 정도 잘 한 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통하는 좋은 발표는 연구 기관에서 하는 발표랑은 결이 조금 다르다는 걸 깨닫고 있다. 즉, 연구자에게 요구되는 프레젠테이션 스킬과 직장인에게 요구되는 것이 다르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직장에서 좋은 발표란 무엇일까?
배경지식의 교집합의 크기
연구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데이터와 설명을 제공한다. 질 좋은 데이터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청중들은 주장에 대한 확신을 더욱 갖게 되고 좋은 연구 좋은 발표라 평가한다. 이렇게 될 수 있는 이유는 청중과 발표자의 배경 지식의 교집합이 크기 때문이다. 바이오 연구도 깊게 들어갈수록 세부적으로 많은 영역으로 나누어지지만 바이오 연구를 이해하는 큰 틀에서는 공통된 지식과 상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자세하고 복잡한 데이터를 처음 보더라도 곧잘 따라갈 수 있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배경지식의 접점을 적은 사람들이 더 많고 이들과 함께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서로의 진행 상황을 공유해야 할 때가 많다. 다양한 사람들 앞에서는 데이터의 양이 복잡하고 많아질수록 내용을 따라가기 어렵기 마련이다. 또 각자의 배경지식으로 이해하다 보면 잘못된 방향으로 이해하기 쉽다. 좋은 발표란 발표자의 의도를 쉽게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청중의 배경지식을 배려하지 못하는 발표는 나쁜 발표가 된다.
지식의 저주
'지식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곧 한 분야의 전문가일수록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배경지식을 다른 사람들도 가질것이란 착각 하기에 효과적인 발표를 할 수 없다는 말로 풀어 볼수 있다. 예를 들면 한 광고에서 차범근 감독이 다른 선수들 앞에서 멋진 개인기를 쉽게 구사하면서 정확히 골을 넣으며 ‘참 쉽죠’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차범근 감독은 그런 현란한 개인기가 몸에 배어 물 흐르듯 쉬운 일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한 동작, 한 포인트를 상세히 설명해 주어야 하는 일이다. 자신에게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지식도 남들에게도 있다고 생각하면 듣는 이에겐 불친절한 설명이 될 수 있다.
쉽고 간결함이 답이다.
어느 미팅을 위해 공을 들여서 자료를 준비하고 미팅 자리에서 프로젝트의 진행을 위해 좋은 제안을 하였었는데 반응이 시큰둥하게 느껴졌다. 내 제안이 별로였나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발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질문을 하자니 너무 초보적인 질문이 되고 미팅이 늘어질까 염려하여 묻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이처럼 내가 아무리 공을 들여 준비하더라도 청중이 이해하지 못하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발표가 된다. 이럴 땐 이 분야의 문외한이 듣더라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간결하고 쉽게 설명해야 한다. 자세한 데이터와 복잡한 설명은 백업 슬라이드에 준비하면 충분하다.
어느 날은 회사에서 화학 전공자가 바이오 분야의 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발표가 피상적으로 느껴졌고 새로운 정보나 통찰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어려운 내용을 쉽게 잘 설명해 줘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는 내용이 많았고 그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화학 전공자가 많았다. 비전공자가 새로운 내용을 공부해서 발표하다 보니 다소 피상적인 내용이 될 수 있었겠지만 그 내용을 듣는 또 다른 비 전공자들에게는 충분히 자세하고 방대한 내용인 것이다. 전달하는 내용의 범위와 깊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청중이 얼마나 소화를 시킬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1. 청중의 범위는 다양하고 내 분야밖에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수 있다.
2. 내용과 데이터의 상세함이나 깊이보다 청중이 얼마나 소화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3. 덜어내는 것이 더 많이 넣는 것보다 좋은 발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