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찰떡이라고만 말했지만 넌 콩떡임을 알아라.
새로 옮긴 직장의 특이점이자 장점은 임원급 상사가 상당히 수평적이어서 팀원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처우를 최대한 좋게 배려해주려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인 법이라 상사는 아랫 직원에게 작고 크건 바라는 게 있기 마련인데 수평적인 상사가 오히려 상대하기 어려운 지점이 거기서 발생했다.
실험할 때 가운을 입으시나요 안 입으시나요?
세포실험을 하는 도중에 임원급 상사에게 들은 질문이었다.
그에 대한 답은 잘 안 입는다였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될 때였는데, 실험가운은 원칙적으로 실험실에서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하지만 번거롭기도 하고 더운 여름이는 길고 긴 옷을 겹쳐 입는 게 고역이라 안 입을 때가 많았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 안 입는 보다 안 입는 사람이 많은 게 현실이다.
그러고 며칠 지났는데 그 임원은 실험을 하는 나에게 다시 그런 질문을 했고 실험 시 혹시 필요하다면 누구에게 부탁하면 있을 거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처음에는 친절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임원이 실험실을 나간 후 한참이 지나서 동료 연구원에게 물었다. "XX 임원(직책을 붙였지만 생략했다.)님은 실험 가운을 안 입는걸 혹시 싫어하시나요?" 돌아온 답은 나의 불길한 느낌이 단순히 느낌이 아님을 알게 했다. 그 임원은 아니나 다를까 실험실에서 실험가운을 안 입는 걸 싫어한다는 거다.
나도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라도 알아챈 게 천만다행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임원의 말을 넘겨들었다면 난 그 임원에게 안전에 불감한 사람으로 낙인찍혔을지도 모른다.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언제나 이렇게 말해주는 직속 상사 임원이 있었다. 항상 친절하게 배려해주시고 위의 말도 여러 차례 해주셨기 때문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던 분이다.
한참이 지난 후 그 의미에 숨겨져 있는 작은 속 뜻을 파악하게 되었는데 그 역시 직장 생활의 어려움을 느끼게 하는 점이었다.
그 말의 뜻의 90프로 이상은 말 자체 그대로 나의 어려움을 언제든 말하라는 것이었지만 그 일부분은 자신의 직속 부하의 사정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듣기보다는 직접 듣기를 원하는 성향을 강력히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나도 한 동안 그 분과 여러 말을 나누고 여러 상황을 겪으면서 성향을 파악하게 되니 깨닫게 된 말이었다.
차라리 직접적으로 원하는 바를 말하는 게 나을 때도 많다. 위의 두 경우에 곧이곧대로 말의 표면만 이해하다가 나중에 상사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고 제멋대로인 직원일 수도 있다.
맡은 바 일만 하면 되지 그런 점까지 파악해야 하느냐고 불평을 가질 수도 있다. 한국 직장문화의 안 좋은 관습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회사라는 조직도 결국 사람이 모여 같이 일을 하기 때문에 서로의 성향을 잘 파악하는 것이 업무를 향상하는 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직원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특히 나와 내 업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의 말뜻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성향을 아는 것은 중요할 것이다.
다만 직원을 배려하느라 돌려 말하는 것이 오히려 나로서는 작은 말들도 흘려듣지 말아야 하는 또 다른 노력이 든다는 점에서 오히려 부가적 업무가 되는 것 같다.
이렇게 하루하루 지나가며 '연구원'에서 '직장인 연구원'이 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