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내민 손이 민망해

by 털찐 냥이

일본 속담에'인정을 베푸는 것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다'란 말이 있다. 남에게 인정을 베풀면 돌고 돌아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뜻이다. 사회심리학에서는'호의의 반보성'이라소 하는데 사람은 호의적으로 대해 주는 사람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는 경향을 두고 하는 말이다.

|홋타슈고_나는 왜 생각이 많을까?_윤지나 옮김_서사원 2021


'과연 그럴까?'

요즘 들어 점점 더 사람에 대해,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정말 그럴까?


서글프게도 나의 따뜻한 마음이 손으로 전달될 때 당황스러움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느 해 겨울, 연락이 뜸했던 지인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우편으로 보낸 적이 있었다 왠지 그 해에는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차가운 우편함에 꽂힌 온갖 명세서 대신 편지를 꺼내는 색다른 느낌을 주고 싶었다. 코로나가 시작됐을 때 지인들에게 면 마스크 만들어 보내주었다. 몇몇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했지만 이상하게도 남는 것은 뿌듯함이 아니었다.


복잡한 서울에서 아침 출퇴근 시간의 승차 경쟁, 신체적 부딪힘, 물건을 사진 않는다고 대놓고 비아냥거리는 상인 등 불친절과 비매너는 지뢰처럼 느닷없었지만 다행히 휘리릭 잊어버리기도 쉬웠다. 그래도 어떤 때에는 느닷없이 내동댕이쳐진 순간의 감정을 다시 주워서 털어내는 일은 나의 몫이라서 인구밀도만큼 치밀어 오르는 감정밀도도 높아지는 것 같았다.


도심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다행히 몇 년 전부터 자연스럽게 거리 두기가 가능해진 곳에서 살고 있다. 평생 살아온 서울보다 복잡하지 않은 도시라서 심심하고 활기가 넘치는 곳은 아니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에서는 당황스러운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사를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데 80대로 보이는 할머니가 버스 노선과 요금을 물어보셨다. 다행히 나와 같은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라 설명하고 안심시켜 드렸다. 다행히 곧 버스가 왔고 먼저 타시라고 손을 차량 입구 쪽을 향해 내밀었다.


"여기 타시면 돼요"


그런데 그 할머니가 갑자기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탁 잡고 오르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휘청거릴 뻔했다. 그분은 나보다 훨씬 키가 크고 매우 곧은 허리를 갖고 계셨다. 준비되지 않은 외부의 힘이 손에 실리는 순간 본능적으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힘을 주었다.


'아! 이게 아닌데...'


어릴 때부터 노인에게는 자연스럽게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내가 타인에 대한 친절의 강도가 가장 높아지는 순간이 노인을 대할 때이다. 그런데 점점 친절과 배려가 튕겨지는 경험들이 점점 많이 진다. 그나마 나의 손을 잡고 승차하신 할머니는 가벼운 웃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해프닝이다. 슬프게도 점점 더 그렇지 않은 일들이 쌓여간다. 외모의 나이테가 쌓인다고 마음도 같이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물론,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이 흑색만 있지는 않다. 다른 색들도 있다. 소에 림책을 수집하다 보니 가끔 책 정리를 할 때 당근에 안 보는 책들을 내놓곤 한다. 몇 권의 책을 저렴하게 당근 중고거래에 내놓았을 때였다. 가 사러 올까 궁금했다. 구매자는 어느 아주머니였다. 손녀에게 주신다고 책을 구매한 그분은 뜻밖에 작은 케이크를 들고 오셨다.


"책을 너무 저렴하게 사는 거 같아서 사 왔어요~."


이 팔린 것만으로도 '드디어 팔렸다'라는 안도감을 느꼈는데 뜻밖에 고마움까지 덤으로 받았다. 작고 하얀 생크림 케이크를 먹으면서 달달하고 부드럽게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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