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커피가 맛있었던 이유

by 털찐 냥이

나는 라테가 좋다. 한여름, 진하게 내린 에스프레소를 차고 하얀 얼음 우유 위에 부어주면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수채화 붓에 뭍은 짙은 고동색 물감이 물에 풀어지는것 같다. 컵 아래로 흘러 내려가는 모습만으로도 내 스트레스도 같이 씻겨져 연해지는 것 같다.


커피를 좋아하다 보니 집에서도 원두를 항상 구비해놓고 있다. 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면 온 집안에 커피 향이 가득 차오른다. 유통기한이 지난 원두는 잘 갈아서 집안 구석 여기저기 놓는다. 화분의 거름으로 쓰기도 한다. 원두는 주로 드립 커피로 내려먹는다. 라테를 만들어 먹기에는 다소 연하지만 분리수거하기에 손이 많이 가는 캡슐커피보다 손이 자주 간다. 그리고 드립커피의 깔끔한 맛이 좋다.


6월 일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이유 없이 갑자기 눈이 떠졌다. 햇볕이 시원한 바람을 누그러뜨리지 않아 신선한 공기가 맴도는 날이었다. 베란다 창문을 열자 밤새 갇혀있던 집안의 공기가 밖에서 들어오는 나무 냄새로 시원하게 섞여 방안에 흩어져 나갔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운동화에 모자를 눌러쓰고 동네 산책을 나섰다. 아직 일찍 문을 연 상점들이 없었다. 새벽부터 분주한 떡집도 휴일이라 문을 닫았다. 간혹 오가는 사람들과 새들만 분주하게 나무를 오가느라 시끌벅적 날이 밝아 또 다른 하루가 깨어나서 움직이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썰렁한 동네를 걷다 보니 앞동네 아파트단지에서 아픈 몰골의 길고양이를 발견했다. "안녕?" 말을 걸어보니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본다. 털이 엉켜있고 힘이 없는 것을 보니 구내염이 걸린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됐다. 다행히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왜 불렀는데?' 하는 표정으로 조심스러운 발길을 이쪽으로 향했다. "밥 먹었어? 밥 줄까?" 항상 들고 다니는 도시락 가방을 열었다. 평평하고 큰 돌 위에 먼지를 털어내고 한 줌 사료를 내려놓았다. 다행히 입을 오물 조물 거리면 잘 먹는다.


아직은 살아낼 힘이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다시 길을 걸었다. 나도 입이 심심해진다. 편의점이 보였다. 커피 한잔을 사들고 집에 돌아가야겠다. 우유가 있으니 에스프레소를 뽑아가야지.

편의점 문을 여니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인사를 한다. 얼마 전에 주인이 새로 바뀌었다.

"어서 오세요~"

"에스프레소 두 잔 주세요."

카드를 내밀며 아주머니에게 인사했다.

"우리 가게에는 없는데요?"

"네? 여기 있어요. 에스프레소 핫"

나는 커피 기계 앞에서 메뉴를 확인하고 아주머니에게 대답했다.

"지금 뭐 드시고 계신데요?" 계산대 위에 놓인 종이컵을 보면서 물어보았다.

"아메리카노 먹어요."

"아~ 여기 아메리카노 위에 에스프레소 버튼 있어요"


우리는 아직 잠이 덜 깬 대화를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주머니는 나의 옆에 섰다. 에스프레소 버튼을 두 번을 눌렀지만 종이컵 바닥을 찰랑거리는 가소로운 양의 커피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컵 라면용 온수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조금 나오냐... 그거 써서 어떻게 먹어요? 저기서 뜨거운 물 담아가요."

나와 아주머니는 동시에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도대체 저 새까맣고 한 모금 꿀꺽하면 없어질 것 같은 것을 무슨 맛이라도 느끼겠냐는 뜻 같았다. 어떻게 저것을 아침부터 위장에 털어 넣을 것이냐는 아주머니의 걱정 어린 마음이 목소리에 묻어났다.

나는 아주머니의 반응이 너무도 신선해서 웃음이 나왔다. 에스프레소와 초면이 당황스럽지 않은 한국인이 어디에 있을까?

나는 아주머니와 같이 웃다가 "집에 가져가서 우유 부어서 먹을 거예요"며 아주머니를 안심시켜 주었다.


뚜껑을 힘주어 닫으며 인사를 하고 편의점을 나왔다. 뜻밖에 아침에 낯선 대화로 웃고 나니 발걸음이 경쾌해졌다. 빨리 집에 가서 빵이랑 같이 먹어야지. 그날 커피는 진짜 맛있었다. 물론 우유와 적당히 잘 섞였을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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