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wi 아저씨의 마음,

낯선 길에서 스스로를 잃지 않기를

by 털찐 냥이

가끔 내가 나태해져 있거나 생동감을 잃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이럴 때 마음에 에너지가 있다면 쓰는 방법이 있다. '낯선 곳에 나를 데려다 놓기'이다. 어쩌면 여행이라는 것도 이와 비슷한 범주안에 들어갈 텐데 그것보다는 작은 움직임이다. 멀지 않은 곳에 나를 데려다 놓는 것이다. 똑같아서 지겨워진 상의 발걸음을 익숙한 땅에서 떼어내서 낯선 곳으로 보낸다. 새로운 곳에서 몸을 움직이면 잠자고 있던 지각이 눈을 뜬다.


내가 길을 비교적 잘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는 아주 어릴 때의 일이다. 너무 어려서 나이도 기억이 나지 않았던 때였다. 부모님이 생업으로 장사를 시작하기 위해 가게를 알아보러 어느 상가에 같이 갔었다. 어른들의 지루하고 심각한 대화가 꼬맹이 여자아이에게는 참을 수가 없었다. 몸부림을 치다가 호기심이 넘치는 성격대로 여기저기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만 직진본능으로 눈에 보이는 대로 곧장 걸어기 시작했다. 제법 큰 상가였는데 계단이 나타나자 올라가 버렸다. 계단을 올라오니 아래층보다 번화한 가게들이 환하게 불빛아래 줄지어 서있었고 복도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신기함에 마구 걸어 다녔을 것이다. 다행히 어느 순간 내가 혼자라는 것과 눈앞에는 처음 보는 것들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울먹이면서 겁을 먹었고 두리번거리다가 왔던 길에서 뒤를 돌아서 걸었다. 걷다 보니 띄엄띄엄 왔던 길이 보였다. 본능적으로 왔던 길로 다시 걸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처음 출발한 자리로 돌아왔다. 어른들은 믿지 못하겠지만 혼자 낯선 곳에서 멀리 갔다가 길을 다시 찾아서 돌아왔었다. 천만다행으로 미아가 되지 않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때 '본능적으로 길을 잘 찾 수 있다'는 을 나의 타고난 재능으로 귀하게 여겼다면 지금보다는 삶이 더 풍요로워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뉴질랜드의 한 가정집에서 한 달 정도 머무를 기회가 있었다. Kiwi, 즉 백인 노부부가 집주인이었는데 한국 같았으면 은퇴할 나이가 지났지만 아침마다 출근을 하는 분들이었다. 내가 갔을 때의 뉴질랜드는 우리보다 훨씬 고령화가 일찍 온 사회였는데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많은 다른 나라로 나가고 주로 부모세대들과 이민자들, 외국인들이 지역 경제를 이끌고 있었다. 노부부의 아들과 딸도 영어권의 다른 나라로 나가서 두 분만 살고 있었다. 나는 영어가 미숙했기에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지만 이민회사에서 일을 하시는 아저씨가 동양인에 대한 이해가 있으셨다. 내가 Model을 정직하게 모델로 발음해도 알아들으셨다!


외국인과 길게 대화해 본 경험이 없으니 말을 내뱉는 게 어색다. 동네 지도를 봐도 감이 안 잡혔다. 런데 왜 집 근처에 편의점이 없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상 밖이라 당황스러웠다. 당장 버스를 타는 것도 어색했다. 버스노선을 확인하고 정차예정시간에 나갔다. 버스 노선마다 타임테이블이 있었는데 어느 정류장에 몇 시, 몇 분에 도착할지 첫차부터 막차까지 전체 시간이 적혀있었다. 트래픽 잼이 없나? 이게 가능하구나. 신기했다. 몇 번 이용하다 보니 버스를 놓친 사람을 길거리에 버려두고 가는 일도 없었다. 달려오는 아이를 발견한 버스 기사가 멈춰 서서 인내심 있게 기다리더니 태우고 가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처음 버스를 타고 주택가에서 번화가로 나가는 날이었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오늘은 약속이 어디에서 있고 몇 번 버스를 타고 갈 예정이다는 말을 남기고 길을 나섰다. 정류장까지 몇 채의 단독주택들을 지나서 총총 신나게 걸어갔다. 왠지 모험심이 솟아났다. 길에는 나 혼자였다. 동네가 심심했다. 걸어도 걸어도 제각각의 집만 보이고 사람이 안보였다. 정류장에도 역시 나 혼자 서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뒤를 돌아보니 완두콩이 열려있었다. '길거리에서 완두콩 나무를 보다니?' 신기해서 사진을 찍고 는데 버스가 왔다. 버스기사와 간단히 인사를 하고 차비를 내고 자리에 앉았다. 처음 보는 길을 가다가 앞사람에게 목적지를 확인하려고 질문을 던졌는데 난감해졌다. 대답을 못 알아듣겠다. '지금 나한테 영어로 말하고 있는 게 맞는 걸까?' 내가 연습하던 영어와 악센트가 너무 달랐다. 악센트가 다르니 단어가 안 들린다. '이상하네... 토익 리스닝과 너무 다른데?' 실전 리스닝 첫날 이렇게 망하는구나. 그러데 시험 같으면 그냥 점수만 망하면 좋으련만 나는 지금 길을 잃게 생겼다. 여기서 내려야 하나 다음에 내려야 하나... 앞사람에게 재차 질문을 하고 있는 나를 버스기사는 흘끗 보면서 정류장에서 멈춘 상태였다. 배려가 넘치는 버스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나를 무시하고 가던 데로 가주면 좋겠는데.. 진땀이 났다. 어찌어찌 정류장에서 내려서 친구와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고 오후에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


그날 저녁식사를 하면서 친구를 만난 얘기를 하는데 집주인아저씨가 놀라운 이야기를 꺼냈다. 본인이 아침에 내가 버스에서 내리는 것을 봤다는 것이다.'어떻게요?' 아저씨는 출근을 했을 텐데, 나랑 방향이 다를 텐데 어떻게 봤다는 거지? 그런데 나는 정말 너무도 뜻밖의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네가 탄 버스 뒤를 쫓아갔어."

"네?"

"난 자동차를 타고 그 버스를 쫓아가다가 네가 내리는 걸 보고 출근을 했어"

"정말요!"


다시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무사히 도착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 본인의 차로 버스뒤를 쫓아왔다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그런 수고를 할 수 있을까?


"어느 날 버스회사에서 전화가 온 적이 있었어. 우리 집에 머물던 손님이 버스에서 못 내리고 종점까지 간 적이 있었거든. 빨리 와서 손님을 데려가라고 하더라고."


나는 그제야 이해할 수가 있었다. 손님은 일본인 여학생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내려야 하는 정류장을 지나쳤 함부로 내리지도 못하고 버스 안에서 노심초사하며 종점까지 갔던 것이다. 본인은 물론이고 운전기사도 놀랐을 것이다. 무엇보다 저녁을 차려놓고 기다리던 집주인들은 더 놀랐을 것이다!


웃음이 나오면서도 감사한 마음과 존경심이 들었다. 아저씨의 출근길을 상상해 보았다. 평소처럼 출근하는 길, 빨간 코트를 입은 까만 머리의 동양인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자동차 안에서 버스가 정류장에 설 때에 같이 서고 출발할 때 같이 출발하면서 버스의 뒷 꽁무니를 보고 있었을 아저씨의 마음은 어땠을까? 내리는 사람 중에 빨간 코트는 없는지 멀리서 계속 눈 여겨봤을 것이고 시내에 진입해서 빨간 코트가 내리는 것을 보고 안심하며 차를 돌렸을 것이다.


나는 주로 빨간 트렌치코트를 입고 다녔는데 머리는 단발에 검은색이라서 눈에 콕 들어왔을 것이다. 아마도 외국인 눈에는 큰 다트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나에게는 평생 살아온 곳이지만 너에게는 처음인 이곳에서 길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비록 긴 인생에서 찰나의 시간에 지나지 않는 손님이었지만 그때 받은 도움은 나에게 계속 따뜻함으로 남아있다. 그분은 지금은 돌아가셔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분이다. 그래서 안부를 물을 수 조차도 없지만 아주 먼 곳에서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좋은 선물을 주고 가셨기에 나는 계속 그분이 살아계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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