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토요일 오전 지하철 2호선 문이 열렸다.
새 전동차의 밝고 깨끗한 내부가 보이자마자 시원한 공기가 밀려왔다. 자리는 만석이었지만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였다. 서 있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몇 명보였다. 유난히 피부가 잘 태닝 된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자매들 앞에 섰다. 내가 햇볕을 너무 피했나? 허연 내 피부가 대조적이었다. 요즘 친구들은 태닝을 많이 하는구나. 건강해 보여서 좋네.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앞에 있던 여자가 저기에 자리가 났다고 내 뒷 쪽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
감사합니다.' 눈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앗. 그런데 맞은편에서 작은 외국인 남자아이와 아저씨가 다 함께 웃는다. 다시 보니 그들은 한국인이 아니었다, 가족여행으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것 같았는데 다들 신이 나서 웃는다. 여자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가족들에게 뭐라고 말을 한다. 무척 애정이 넘치는 가족이었다. 분명 나는 그녀에게 한국어를 들었는데 그들이 대화하는 언어는 영어였다. 나에게는 정확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얼핏 외향도 한국인이라고 착각을 했다. 정말 요즘엔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말을 할 때 조심하라고 하더니 국내 여행객들 중에는 한국어를 꽤 능숙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자리에 앉고 보니 바로옆에서 손카드를 쓰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생일 선물인 듯 정성스럽게 작은 카드에 귀여운 글씨로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이 꾹 눌러서 정성스럽게 쓰고 있었다. 친구의 생일이라 만나러 가는 길인가 보다. 선물꾸러미에서 카드를 꺼내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게 인상적이었다.
손글씨. 아는 언니의 상담실 개원을 축하해 주러 간 기억이 떠올랐다. 언니는 자연스럽게 방명록 노트를 꺼내서 내밀었다. 이곳을 방문한 지인들에게 인사말을 받아놓은 노트였다.
"요즘은 손글씨가 귀한 시대잖아. 이렇게 모아놓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손글씨를 모은다? 생각을 못해봤다. 어릴 때 흔하게 주고받던 쪽지와 편지들을 몽땅 버렸는데 어느덧 후회가 됐다. 친구들과 같이 웃고 울었던 작은 사건들을 기억하고 싶은데 기록이 없어서 아쉬웠다. 요즘은 당연히 스마트폰으로 주고받는 메신저가 모든 것을 대신한다고 생각했는데 손글씨가 주는 감성은 남들이 만든 이모티콘으로 주고받는 감성과는 매우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어느 아주머니들의 대화가 생각났다.
"엄마한테 편지를 써?"
"응, 종종 엄마한테 편지를 써서 보내."
대략 나이가 60대 즈음 됐을 것 같은데 아주머니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기위해 요즘도 우체국을 자주 간다고 했다.
그분의 친구도 놀랐지만 나는 더 놀랐다. 어떤 사랑을 받았길래 저런 다정함을 어른이 되어도 갖고 있을 수 있을까?
방명록을 내민 언니는 대학졸업 후 취업을 했지만 그만두었다. 전공을 바꾸고 새롭게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일을하다가 공부를 더 해서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수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도전을 계속하더니 목표를 이루어냈다. 결혼과 육아, 직장생활 그리고 박사과정. 먼 길을 걷고 걸어서 본인의 꿈을 이뤄낸 언니가 자랑스러워다. 더구나 어릴 때부터 괴롭히던 오랜 지병에 굴복하지 않고 코로나 시기에도 매일 새벽출근을 하면서 학업과 일을 병행해 낸 정신력이 대단했다. 언니가 내민 방명록 노트에는 많은 친구들이 남긴 다양한 손글씨가 각 페이지마다 놓여있었다. 재밌게도 같은 필체가 하나도 없었다. 오랜만에 손글씨로만 이루어진 책을 보았다. 나도 노트 한 구석에 글을 채워 넣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제대로 쓰려고 하니 펜이 손에서 어색하게 굴러다녔다. 평소에 긴 문장을 쓰지 않다 보니 글씨체가 많이 변해있었다.
'색연필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최근에 받은 손글씨이다. 빵을받았는데 손글씨가 빵 봉지에 웃는 표정과 함께 귀엽게 놓여있다.
집중하기 좋아서 자주 가던 카페가 있었다. 손님들은 자리를 대부분 넓게 앉았는데 대부분 한 사람이 두 테이블을 썼다. 테이블이 작다보니 그런 것 같았다. 카공족들부터 모임을 하는 어르신들까지 연령층이 다양했다. 매장이 넓지는 않았지만 다들 조화롭게 자리를 잡고 각자의 시간들을 보냈다. 하루는 등이 벽뒤에 닿는 자리에 앉아있는데 책만 읽을거라 혼자 두 테이블을 차지하기 미안했다. 한쪽을 떼어서 옆으로 밀었다. 옆 테이블과 엉덩이 하나정도의 간격이 벌어졌다. 곧 커플 한 팀이 그 자리에 마주 보고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더니 여학생만 내 옆에 남았다. 여학생은 바시락 거리며 소품들을 꺼냈다. 그리고 귀여운 그림들을 여러 곳에 그리기 시작했다. 재능이 넘치는 그림들을 흘쩍 쳐다보았다. 그런데 색을 칠하지 않았다.
"이거 써볼래요?"
나는 꼼지락 거리는 손길 사이로 귀여운 그림들이 등장하는 손을 보다가 용기를 냈다. 내 색연필 주머니를 내밀었다. 낙서 좀 해보겠다고 들고 나온 색연필 꾸러미가 있었다. 제법 무겁게 가방 한쪽에 차지하고는 뭐라도 끄적여보려고 외출할 때 들고 나왔지만 제대로 써본 적은 정작 없었다. 색상이 다양하지 않지만 혹시 필요하면 써보라고 건넸다. 다행히 여학생은 고맙다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손재주가 상당했다. 가방 안에서 뒹굴기만 한 전문가용 색연필이 이제야 좋은 주인을 만난 것 같았다. 나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었지만 불편할 수 있으니 최대한 모른척하고 책에 집중했다. 한참 책을 보다가 전화를 받았다. 집에 들어갈 때가 됐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다. 자리에 오니 여학생이 보이지 않았다. 먼저 갔구나. 그런데 테이블 위에 색연필 와 함께 처음 보는 빵봉지가 놓여있었다. '색연필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손글씨가 웃고 있었다. 안에는 초코 머핀이 달콤함이 콕콕 박혀서 들어있었다. 아! 이걸 받을 정도로 내가 고마움을 준 것 같지는 않은데... 감동을 받았다. 색연필을 준 것도 아니고 잠시 빌려준 것뿐이었는데 이렇게 맛있는 머핀을 받아도 될까? 고마움을 크게 표현해 준 여학생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진한 달달함이 마음에 퍼졌다.
예전에는 많았던 손글씨 편지들과 쪽지들을 다 버렸다. 귀한 줄을 몰랐다. 이제야 얼마 안 남은 것들을 한 곳에 모아둔다. 나에게는 명화와 같은 가치가 있다. 몇 점 남지 않은 작품들 같다. 두고두고 보면서 기억하고 싶다.
언젠가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모임을 갔었다. 서로 다른 인생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모였다. 연극을 하고 싶어 했지만 다둥이의 육아로 잠시 접어둔 언니가 있었다. 나와는 공통점이 별로 없어서 많이 친해지지 못했지만 모임이 끝나갈 즈음에 작은 쪽지를 받았다.
'정도 많고 배려 많은 oo 씨,
함께 해서 즐거웠어요.
두려워하는 어떤 일들이 시작하면 생각보다 힘들지 않아요.
뭐든 잘 해낼 거예요.'
그냥 말로 전달받았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얼굴과 이름이 가물해지며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선명한 볼펜자국으로 글로 남아있으니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도 말의 힘이 살아서 전달이 된다. 처음 받았을 때에도 힘이 되는 말이었지만 10년이 지나도 글씨체가 주는 느낌이 남아있다. 그때의 어려움과 지금 겪는 문제는 다르지만 이 순간에 힘을 내라는 응원으로 전해진다.
나는 정말 꽤 오랫동안 사람이 싫었다. 평화롭게 살면 좋겠는데 뭐 그리 사소한 것들에 자격지심을 느끼며 시비를 걸고 힘겨루기를 할까? 서로의 밥그릇 싸움이면 그나마 이해하겠지만 겉으로 평온한 얼굴을 한 못난이 마음들이 많다는 것에 놀랐다. 그래서 꺼내본 것이 따뜻한 기억들이었다. 살아오면서 분명 좋은 순간들이 많았는데 나쁜 일들은 악취를 뿜으며 강하게 좋은 향기를 몰아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100세 시대를 살아야 하는데 계속 악취에 시달리며 살 수는 없다. 계속 작은 향기들을 모으며 잘 채워놓아야 불현듯 찾아오는 악취들을 몰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사소해도 따뜻한 순간들을 모으려고 한다. 긴 인생을 살아내는 데에는 연금도 중요하지만 못난이 마음으로 살 수는 없다. 마음의 땔감도 필요하다.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