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는 동네에는 감사하게도 나무가 많다. 때로는 소인국 사람마냥 나무를 올려다보다가 아파트의 몇 층까지 자랐는지 나무들의 키를 재어본다. 여기저기 눈을 돌리면 나무들이 풍성한 머리숱을 뽐내며 찰랑거린다. 여름과 가을의 풍성한 숱은 늦가을과 겨울을 맞으면서 숭숭 떨어져 쌓인다. 머리카락이 떨어지듯 바닥에 쌓여가는 낙엽을 보면 덩달아 슬퍼진다. 드디어 쌀쌀맞은 겨울이 되면 결국 앙상하고 뻣뻣한 가지들로 볼품없는 모습을 드러낸다. 숱이 적은 내 머리카락이 저렇게 낙엽이 되어 뒹군다고 생각이 들어서 괜히 섬뜩하다.
흔히 연상되는 나무는 건강하고 가지가 많건 적건 위를 향해 뻗어있다. 그림에서 주로 보는 나무들은 가까이서 껍질의 거친 결들을 잘 살려서 그려내기도 하고 멀리서 '저건 나무입니다'라고 알려주듯이 느낌을 표현하기도 한다. 어느 경우든 일단 단단히 땅에 뿌리를 박고 있다. 물론 땅따먹기에 이겨서 넓게 가지를 휘두르거나 다소 얌전하게 소박한 영역을 차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예 다른 나무도 있다.
"내가 왜 이 나무를 제일 좋아하는지 알아?"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에는 동네를 디즈니랜드처럼 신나서 뛰는 게 자연스러운 작은 소녀가 나온다. 디즈니랜드 근처의 모텔에서 엄마와 불법으로 장기투숙을 하는 무니는 삶의 풍요로움의 반대편에 방치되어 있다. 얼음같이 차갑고 날카로운 세상이지만 아이만이 살 수 있는 천진난만한 세상을 산다. 사회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엄마로 인해 위험천만한 행동들을 보고 자라며 경제적인 궁핍은 영양가 없는 음식으로 아이를 채운다. 빵을 잔뜩 싣고 동네에 온 구제단체의 트럭 꽁무니에서 무니는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작은 몸집으로는 한 손으로 들기버 겨운 식빵과 쨈을 몸통에 기대어 씩씩하고 당당하게 걸어 나온다. 주는데 받는 것은 떳떳하다. 원하는 빵까지 '이거요! '라고 똑 부러지게 말한다. 동네 친구와 도착한 공터에서 무늬는 마른 빵에 쨈을 두껍게 얹더니 혓바닥을 내밀어 단맛을 흠뻑 흡수하며 말한다.
"계속 자라서"
"쓰러졌는데도"
두 꼬마 아가씨들이 걸터앉은 자리는 충분히 몸을 기대도 자리가 넉넉하다. 쓰러진 나무는 밀림에서나 볼 듯한 수풀을 아래로 떨구어 한껏 머리숱을 치렁인다. 여전히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나무를 힐끗이라도 쳐다보지 않고 무심히 말하는 무니의 말이 맘에 따끔하게 남아있다.
이 나무는 어른에게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 아이의 기댈 곳이다. 그리고 본인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어린 시절 부모님의 가게가 있던 종합시장의 골목을 뛰어놀며 자란 나의 기억이 투영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도 나무를 무척 좋아한다.
어쩌다가 외풍에 쓰러진 나무도 하늘을 향하지 않더라도 쓰러진 자리에서 자란다. 성장하는 에너지는 쓰러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보통의 수준' 범위를 벗어나도 성장할 수 있다. 속도에 맞게 학업과 직업을 단계별로 이어가지 못한다 해도 내일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죽을 때까지 성장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나의 속에는 있으니까.
풍성한 나무들이 금발을 뽑고 따뜻한 햇살이 점점 사라져 가는 늦가을이 다가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겨울을 본격적으로 맞기 전부터 낮에도 찬바람에 손이 시려온다. 계절을 바로 느낄 수 있는 동네에 있다 보니 내게 계절은 사계절이 아니다.
드디어 봄- 모진 여름- 살만한 가을- 드디어 겨울-버티자 겨울-거머리 겨울-올까 말까 봄
계절의 앞에 별것 아닌 단어가 하나씩 붙는다.
올해도 드디어 봄이 왔다. 아카시아 나무들이 귀걸이를 주렁주렁 달고 살아있음을 뽐낸다. 오락가락한 날씨가 봄도 짧고 벌써 우기가 시작된다는 5월이지만 다행히 나무들의 머리카락은 풍성하게 다시 또다시 자라났다. 길고양이 밥을 주느라 한겨울의 매서움을 온몸으로 매일 맞고 있기에 계절의 변화에 민감해진다. 다 죽어 거름이 되어가는 낙엽밖에 없던 땅에 녹색 줄기들이 조용히 올라오는 것을 발견하면 반가움이 시작된다.
호수가 있는 공원 가던 길에서 쓰러진 나무에 잎이 자라는 것을 발견했다. 한 겨울 초봄의 폭설로 나무들이 쓰러지고 가지들이 주저앉아서 아파트에서 고목정리 안내문이 붙었다. 이미 작은 나무들은 밑동이 잘려 나갔다. 겨울이 이겨냈지만 초봄의 폭설에 쓰러져 버린 허리 가는 나무들이었다. 그래도 살아남아서 쓰러져도 누워서 자라는 나무들이 있다. 지독하게 버텨낸 덕분에 잎이 자라고 누워서도 햇빛을 향해 가지를 뻗는다.
다시 못 일어날 것 같은 주저앉음에 마음이 꺾여도 어쩌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누워서 자라는 나무를 발견하니 그래도 희망이 생긴다.
'어쩌면 괜찮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