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 광역버스,빈 좌석 1개

by 털찐 냥이

"남은 자리 없어요. 타면 안 돼요!"

광역버스 기사 아저씨가 버스 문을 열더니 발을 올리려던 나에게 말했다. 분명 좌석이 하나 남았다는 표시가 있었는데 달려가니 없다고 한다. 내 뒤에 있던 여자는 버스기사와 한참 실랑이를 벌이더니 기어코 탔다. '앗! 아저씨'


나는 현재 경기도민이다. 평생 서울시민으로 살면서 복잡함과 소음 등 불편함이 많았는데 막상 경기도에서 살다 보니 전에는 지 못했던 새로운 불편함이 생겼다. 이동의 불편함. 서울에서는 지하철과 시내버스를 이용하 가고 싶은 곳을 무리 없이 다닐 수 있었는데, 경기도민이 되니 당장 자동차 없이 어디를 가는 것이 불편했다. 도보로 쉽게 이동하던 뚜벅이에게 이제는 목적지로 가는데 필수적인 환승이 만만하지가 않다. 서울처럼 매끄럽지 않다. 교통비도 더 든다. 울 지하철 노선을 매일 외우면서 머리에 지도를 그리고 다니던 즐거운 뚜벅이였는데 우울하게도 이동의 장벽이 생겨버렸다.

집에서 서울은 그리 멀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심리적인 거리감으로 아주 먼 곳이 되어버렸다. 예전에는 진심으로 서울을 탈출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절교한 친구 마냥 그립다. 종로, 안국동 골목을 걸으면서 구석구석 탐색하던 그 느낌이 그립다. 아주 오랜만에 신촌과 종로로 나가보았다. 도시가 많이 변했다. 오랫동안 못 보던 친구와 다시 만난 느낌이다.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홍대역 근처 주택들이 빼곡히 오로지 주거지였을 때의 기억,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던 수풀가득했던 철길, 공원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공사를 하던 먼지 날리던 모습 그리고 지금. 그 순간들이 각각 새롭다.


토요일 오전 9시, 광역버스를 타고 신촌을 가기 위해 카카오 맵을 열었다. 도보로 5분 거리의 정류장까지 살짝 가파른 오르막길을 신나게 걸었다. 신이 났다. 기분이 살짝 구름 위를 걷듯이 가벼운 느낌. 여름 오전의 햇살이 뜨겁지 않게 구름이 짠 나타나서 하늘 가렸다. 덕분에 거추장스러운 모자와 선글라스를 챙기지 않았도 됐다. 바람이 살짝 불어온다. 짐을 최대한 줄인 가방을 깨에 메고 신호등을 마구 달려서 정류장가까이 멈췄다. 버스가 멀리 섰다.

기사 아저씨?

왜 정류장으로 안 오지?

달려갔다. 아저씨가 문을 열면서 손을 내어 젓는다. '자리 없어요! 못 타요.'

나는 뒷걸음질 치며 정류장으로 가서 앉았다. '다음 버스 타면 되지 뭐...'

다음 버스는 27분 후 도착.

"27분 뒤에 온다고?"

'아.. 너무한다.'

하필 타야 하는 버스 노선이 문제다. 종점을 출발해서 거쳐오는 동네가 워낙 다른 광역버스가 많지 않보니 여기서 기다린다고 해도 좌석이 남아있을지 불분명했다.

'어떻게 하지?' 혼자 이리저리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옆에서 나를 쭉 지켜보던 아주머니가 을 걸어왔다.

"내가 길 알려줄게요. 나랑 저기 오는 버스 같이 타요."

"네?"

"우리 딸도 저거 타고 학교 다니는데 똑같은 고민 해서 내가 가는 방법 알아요. 일단 나랑 같은 버스 타고, 가는 방법 알려줄게요."

"아! 네. 네."

아주머니는 다가오는 광역버스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나의 걸음을 재촉했다.

'네가 목적지에 늦지 않게 갈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알아. 일단 믿고 따라와!'라는 확신의 느낌이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묻어났다. 급히 정신을 붙들고 아주머니 뒤를 따라서 버스를 탔다. '근데 내가 지금 몇 번 버스를 탄 거지?' 모르겠다. 일단 탔더니 앞자리에 통로를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자리가 비워져 있다.

"여기 앉아요. 자, 어디를 가죠? 그 버스를 타면 OO병원 앞으로 가는데 거기 가서 환승할 거예요?"

"저, 신촌역까지 가면 되거든요."

"아, 내 딸도 그 버스 항상 놓쳐서 이렇게 타고 가요. 앞으로 두 정거장 뒤에 내려서 환승을 하면 돼요. 그리고 명동에서 내려서 지하철을 타서 가면 되겠네요. 여기 요렇게."

아주머니는 난감해하는 나를 안타깝게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서울을 간다. 길을 잘 모르겠다.'고 하니 어떻게 하냐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신다.

최종 목적지가 책방이었는데, 아주머니의 웃음소리가 흐뭇하게 들려왔다. '상에 요즘에 책방이라니... 하하 책방.' 왜 그런것인지 그 단어에 즐운 표정을 지으셨다.


아주머니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감사하다고 꾸벅 인사를 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알려주신 다른 버스로 환승을 했다. "어? 이상한데?"

'띡'

환승인데? 왜 띡 소리가 나지?

앗! 버스에서 내릴 때 카드를 단말기에 안 찍었다. 음이 너무 분주했다.

다른 버스를 타려는 기쁨에 그만 걸음을 가볍게 내렸다. 찍을 생각을 못했구나. 서울에 가는 게 이렇게 허둥 댈 일인가!


세상에... 나의 변화, 퇴화가 놀라웠다.'내가 왜 이렇게 둔해졌지?'원래 둔한 구석이 없었는데...

요즘 들어 문득 깨닫는다. 무엇이든 어느 시점에 멈춰버리면 자연스럽게 화한다. 가 알던 나는 더이상 그 자리에 없다.


우연히 같은 시간에 정류장에 있던 아주머니 덕분에 나는 목적지에 잘 도착했다. 그날의 여정은 괜시리 즐거웠다. 아주머니의 미소와 차분하고도 사려심 넘치는 목소리가 종일 계속 맴돌았다. '그래, 누군가를 도와줄 때에는 확실하게 도와줘야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대략 '이렇게 저렇게 가면 된다'는 말을 툭 던질 수도 있는데, 그렇게만 알려줘도 도움이 됐을 텐데 아주머니는 진심이었다. 이렇게 또 사소함에서 따뜻함을 찾을 수 있는 하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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