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현재 33.8도. 한 주 내 내 33도 위로 가뿐히 기온이 오르고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에는 날씨도 스트레스가 된다. 요번 주는 서울 최고기온 38도 예정이고 내가 사는 동네는 36도를 예보하고 있다. 길고양이들도 한 여름은 힘들어한다. 도심보다는 위험한 상황들이 적지만 지열의 위험만큼은 피할 수 없다. 더구나 털 코트를 입고 있으니 안 더울 수가 없다. 요즘 챙기고 있는 녀석은 너무도 더웠는지 정자 앞 돌바닥에 기절해 있다. 가까이 가도 몸뚱이를 바닥에 축 늘어뜨린 채 고개만 빼꼼히들고 쳐다본다. "이제 왔냥? 덥다~" 온몸으로 표현한다. 한쪽 귀는 모기에 물렸는지 하도 긁어서 피딱지가 앉았다.
간혹 모르는 길고양이들이 동네에 나타날 때가 있다. 윗동네 애들이 종종 내려오기 때문에 대충 얼굴은 아는데 아주 간혹 새끼 고양이들이 차 본네뜨 안에 들어갔다가 엉뚱한 곳에서 하차할 때가 있다. 한 번은 베란다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아저씨가 차에 달린 문을 모두 열고 여기저기 살펴보느라 난리가 났다. 작은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1층 아주머니도 달려 나와서 애타게 고양이를 부른다. 아주머니는 매일 아침마다 화단을 정원처럼 가꾸면서 작은 발의 동물손님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던 분이었다. 두 사람은 도대체 어디에서 소리가 나는 것인지 찾아야 한다고 야단 법석이었다.
"참~나, 나 등산하러 가야 하는데 이 녀석이 도대체 어디에 숨었지?" 아저씨가 정말 등산이 가고 싶은지 의심이 들었다. 웃음이 얼굴 여기저기에 붙어서 안 떨어진다. 몸은 분주한데 주름진 눈웃음은 여유가 있다. 분명 난감해하면서도 호기심이 가득하다. 불교 신자라서 살생을 할 수는 없다며 혹여나 차 안에서 잘못된 채로 발견될까 봐 걱정을 하셨다.
결국 그날이 지나고 얼마 후, 어린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깜깜한 저녁이라 얼굴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처음 보는 녀석이었다. 낯선 동네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나한테 발각됐다. '꼼짝 마!' 그러나 경계심이 대단하다. 결국 녀석은 집을 찾아서 다시 탐험을 나선 것인지 그 후로 보이지 않았다. 다시 그 차를 타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나는 종종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쫀득한 캐러멜이 밀크아이스크림과 골고루 섞여있고 초콜릿과 마시멜로우가 슬쩍 존재감을 드러내는 구구 크러스트도 맛있고 폴바셋의 상하목장에서 나온 아이스크림도 좋다. 그러나 최근에 먹어본 것 중에는 연세대 학생회관 카페에서 먹은 아이스크림이 최고였다. 꾸덕하고 진한 맛이었다. 옛날 서주우유 아이스크림 맛이랄까? 여기에 진한 카페 라테를 컵 아래에 깔아주면 최고의 조합이 된다. 씁쓸한 에스프레소 투샷에 부드러운 우유가 차갑게 얼음과 섞이고 한 스쿱의 꾸덕한 아이스크림이 얼음 위에 넉넉하게 얹어져 있으면 보는 것만으로도 입꼬리가 활짝 올라간다. 그 어떤 스트레스도 혀 끝에 닿는 차가운 달콤함과 빨대로 끌려 올라오는 바닥에 깔린 쓴 커피의 조합으로 스르르 녹여버릴 수 있다.
하루는 기분이 너무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아이스크림 라테 한잔을 사들고 걷다가 벤치에 앉았다. 잠시 후 어떤 아주머니가 강아지와 함께 옆으로 왔다. 그런데 강아지가 나에게 자꾸 아는 척을 한다, "야~ 우리 오늘 처음 봤잖아. 나한테 너무 안기는 거 아니니?" 내 무릎 위로 올라오더니 자리를 잡는다. 내려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계속 만지라면서 내 손을 독려한다. 아주머니는 어린 유기견을 집으로 데려와서 키우는데 5살이 되었다고 한다. 잘 정리된 부들하고 복실 한 털을 보니 아주머니가 왜 목욕시키기 힘들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꽤나 이쁨 받는구나?'
처음 보는 강아지를 무릎에 앉혀놓고 처음 뵙는 아주머니에게 속상한 일을 풀어놓았다. 이런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냐 물어봤다. 진지하게 나의 고민에 이런저런 본인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한참 대화를 나누다가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서 크림 라테가 되었을 즈음 "젊은 사람이 대화를 참 편하게 잘하네~" 한마디를 남기고 강아지와 먼저 일어나셨다.
어른들과의 대화는 대체로 즐겁다. 종종 어른들로부터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대화하기 편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나에게 이런 장점이 있구나' 나이가 들어도 나에 대한 발견은 계속된다.
오늘, 오랜만에 기대를 안고 아이스크림 라테를 주문했다. 그런데 두 달 만에 방문했더니 가격은 그대로인데 컵이 작아졌다. 기존에는 대략 스타벅스 톨 tall 사이즈였는데 오늘 보니 숏 shot이 됐다. 작은 컵에 얼음이 한가득인데 한 모금 쭉 마시면 바닥이 보일 것 같았다. 너무한다. '제 아무리 위세 높은 스타벅스여도 아이스음료는 숏이 없는데 너무하네...' 컵을 받자마자 심술이 나버렸다. '이게 뭐람!'
스트레스 혹을 떼려다 오히려 작은 혹이 더 붙어버렸다. 나의 사소한 기쁨이 또 사라지는구나. 요즘 들어 자주 느낀다. 돈의 가치가 현저하게 떨어지는구나. 롤러코스터를 타버린 것 마냥 멈추지 않는다. 계속 돈의 가치가 녹아버린다. 그걸 보고 있으려니 씁쓸한 위액이 올라오는 것 같다. 자꾸 내가 좋아하는 빵과 커피의 양이 적어진다. 나는 많이 먹고 싶은데 속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