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할 수 있는 일

by 털찐 냥이

'문제를 해결한 뒤엔 해결하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일이 있는 주변은 늘 새로운 것 투성이었다. 새로운 것을 알고 익숙해지도록 연습하는 것을 학습이라고 한다. 일을 통해 많은 학습을 미뤘다. 알게 된 것에 익숙해지도록 연습하니 능력이 생겼다. 할 줄 아는 게 생기는 내가 좋았다. 내 일은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늘고, 늙어서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료되었다. '

-매뉴팩트 커피, 커피 하는 마음 중에서-


문장들이 마음에 쓱 다가와 툭 스치고 간다.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은 참 좋겠다. '하면 할수록 늘고 계속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그런 일을 천직으로 삼았다는 것. 억지로 하는, 마지못해 하는 일이 아니다. 부럽다. 일을 통해 성장하고 그것이 삶이 되어간다. 멋지다. 더구나 그런 생각들을 글로 표현도 잘한다. 겠다.


매뉴팩트 커피는 2014년도 즈음 처음 가본 것 같다. 우연히 연희동을 갔다가 발견했다. 외국인 커플이 커피를 마시면서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왠지 외국인들이 찾아가서 마시는 커피라면 더 맛있을 것 같았다. 급하게 검색을 해봤다. 어라? 작은 골목, 허름한 건물, 가파른 계단 2층. 카페위치가 특이했다. 들어가 보고는 더 놀랐다. 수도승 같이 경건하게 커피를 만들고 있는 직원들,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손님들. 여기는 수도원인가? 카페인가? 사무실과 커피를 내리는 공간이 손님공간보다 더 넓어 보였다. 마치 직원들은 성스러운 의식을 하듯이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무언의 규칙이 손님이 지켜야 할 예절처럼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조용히 커피에 집중할 것. 타인의 시간을 방해하지 말 것. 좁은 공간을 같이 즐길 것. 그곳에 커피를 마시러 오는 사람들은 왠지 커피를 좀 아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나도 그런 분위기에 합류할 수 있어서 좋았다.


도산공원 근처에 있던 매뉴팩트는 다른 분위기였다. 높은 층고 넓은 창. 공간을 즐기는 사람들의 자유로움과 어우러진 커피 맛은 여전히 좋았다. 방배동 매장은 특별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우리 입맛이 변했나 싶었다. 카페를 나와 걷다 보니 골목 틈틈이 커피가 좀 특이할 것 같이 생긴 카페들이 더 북적여보였다. '다시 연희동을 가봐야지' 위시리스트에 담아두고 시간이 흘렀다. 우연히 책 검색을 하다가 발견한 매뉴팩트라는 이름에 너무도 반가웠다. 드디어 그 공간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겠구나.

회사 근처에는 골목이 여러 개 있었다. 걷다 보면 또 다른 길로 연결돼서 생각하지 못한 곳에 다다르는 골목들이었다. 미로처럼 얼기설기 얽혀있는 골목을 걷다 보면 개인 상점들이 숨은 그림 찾듯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었다. 상점들을 기억하며 걷는 골목길은 재미가 있었다. 하루는 점심을 먹다가 재킷에 진한 음식 양념이 튀고 말았다. 당장 가까운 골목에 있던 세탁소가 생각이 나서 옷과 지갑을 챙겼다. 그리고 나가는 길에 넥타이도 하나 집어 들었다. 직원들이 평소 캐주얼 복장으로 출퇴근을 하던 회사였는데 외부 회의용으로 간혹 쓰이던 것이었다. 넥타이 주인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기에 사무실 여기저기 굴러다녔다.

탁소 내부는 옷들로 가득했고 특유의 스팀 가득한 냄새가 났다. 들고 간 옷을 살펴보는 세탁소 아저씨의 눈매는 날카롭고 설명은 길지 않았으며 말투는 투박했다. 며칠 후 옷을 찾았는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재킷에 코르사주가 생긴 것이다. 엥? 감쪽같이 옷과 동일한 재질의 코르사주가 재킷 상단 주머니에 곱게 꽂혀있었다. '아니 이게 뭐지?' 처음에는 아저씨가 만들어서 달아준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재킷 상단 주머니 안에 빈 공간이 있었고 거기에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었다. 너무 얇아서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처음 구매할 때부터 이미 주머니 안에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옷을 처음 세탁한 것도 아닌데 왜 몰랐지?


더욱 놀라운 것은 꼬질한 넥타이였다. 넥타이 주인은 부장님이었는데 며칠이 지난 후 나에게 혹시 그 넥타이를 꿰매었냐고 물어봤다.

'설마요. 그렇게까지 수고를 했을리가요. 너무 굴러다니길래 넥타이가 불쌍해서 구조해 준 건데...'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그 불쌍한 넥타이는 뒷면 바느질이 다 터져서 버리려고 그냥 뒀던 거라고 했다.

'아! 그런데 왜 세탁소 아저씨는 말을 안 했지?'

세탁소 아저씨가 다시 방문했을 때에도 수선비용을 말하지 않았기에 넥타이 뒷면이 터져있었는지도 몰랐었다. 부장님은 바느질이 너무 꼼꼼해서 감쪽같이 고쳐졌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계속 매고 다녀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 세탁소 아저씨는 바느질도 탁월한 분이었다. 나는 그 이후로 계속 그 아저씨네 세탁소에 옷을 맡겼다. 출퇴근길에 짐이 늘어나긴 했지만 좋은 옷은 꼭 아저씨한테 맡겼다.


사실 동네 상가에는 꽤 여러 개의 세탁소가 있었다. 워낙 아파트 단지가 크기도 하고 오래된 종합상가였기 때문에 오래된 세탁소들이 있었다. 겉에는 다들 '명품세탁'을 주력으로 써서 붙여놨었다. 그런데 동네 세탁소에는 안 좋은 경험이 있었다.


하루는 새하얀 모직 스커트를 결혼식장에 입고 갔다가 음식물이 떨어졌다. 딱 한번 입은 옷이었다. 부모님이 아는 가게를 찾아갔다. 세탁소 아저씨는 를 알아봤다. 어릴 때부터 봤다고 했다. 어색하게 웃으며 옷을 보여줬다. 단독세탁을 해야 해서 좀 비싸다고 했다. 잘 부탁한다는 말과 염려를 두고 자리를 떴는데 며칠 후 나는 몇 배의 염려를 배달받았다.

옷이 노랗게 물이 들어서 왔다. 베이지 색도 아니고 기름색으로 물들어서 도저히 입을 수가 없었다. 부모님과 같은 상가에 있고 아는 분이라서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평생 세탁일을 하신 분이 설마 옷이 변색된 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한참을 헤매다가 백화점에서 마지막 남은 그 스커트를 샀을 때 너무 기뻤는데... 그 기쁨은 일회용이 되어버렸다. 속상했다.


회사 근처 세탁소는 달랐다. 남들이 보면 굳이 옷을 여기까지 들고 와서 맡기는 내가 이상했겠지만, 나는 번거로움이 수고스럽지 않았다. 그 아저씨에게 맡긴 옷은 반드시 새 옷이 되어 돌아왔다. 찌든 때가 사라진 건지 옷감의 채도가 달라져서 오기도 했다. '이 옷이 이렇게 밝은 톤이었나?' 만족스러웠다. 내가 보기에 아저씨는 숨은 고수였다. 골목에 숨겨진 고수.


고수의 손에 들어간 옷은 본인의 눈에 만족스러운 상태가 되어야 손님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 추가 세탁을 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옷이 깨끗해져서 올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정성 들여 다림질한 깨끗한 옷을 받아 들 때의 기분은 내 몸의 묵은 때를 다 밀어버린 후 목욕탕을 나설 때의 기분과 비슷했다. 아저씨는 종종 세탁소 문 앞에 놓인 평상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얼굴에는 구수한 눈주름이 지곤 했다. 아이들과 사이가 좋아 보였다. 아이들은 평상에 엎드려 숙제를 하거나 뒹굴거렸다. '평화로운 오후'라는 단어가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나는 오랫동안 정말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헤맸다. 그러나 찾지 못했다. 그것은 누구나 찾고 싶지만 찾을 수 없는, 소수만이 찾을 수 있는 보물찾기 같다.


평생 하고 싶은 있는 일이 있고 그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것. 본인들이 하는 일로 타인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


내가 경험한 카페와 골목세탁소에 있는 분들은 그것을 찾은 것 같다. 나는 라테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매일 커피를 마시지만 여전히 나에게 최고의 라테는 연희동에서 맛본 그 커피이다. 이사를 다니며 여러 세탁소를 이용했지만 여전히 최고의 세탁소는 그 골목길에 있으니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