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기 앉아있니? 집에 안 들어간 거야?"
새벽 3시쯤이었을까. 나는 IT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귀가가 늦었다. 피곤은 뾰족구두를 타고 발바닥을 짓누르고 회의를 가기 위해 차려입은 불편한 옷은 하루 종일 몸을 조이고 있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아파트단지 정문 앞, 택시에서 내렸다. 택시기사들은 이상하게도 아파트 단지 안을 들어오기를 싫어했다. 아파트단지 구조가 조금 특이하긴 했다. 꽃잎모양이랬나. 큰 종합상가를 가운데 두고 겹겹이 꽃잎이 쌓인 모양으로 있었다. 걷다 보면 몇 동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 온 사람들에게는 한번 들어오면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쉽지 않았다.
터벅터벅 걸어서 집을 찾아가는데 교복을 입은 작은 체구의 남자아이가 벤치에 앉아있었다. 낡고 어두컴컴한 그 밤, 주차된 차들과 수풀사이로 몸을 숨긴 것 같은 아이가 순간 눈에 들어왔다. 흐리멍덩한 가로등이 낡은 벤치에 몸을 축 늘이고 앉아있는 한 녀석을 어둡게 비췄다.
교복을 보니 윗동네에 있는 남자 중고등학교인 것 같았다.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초입으로 향했고 밤은 살짝 한기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긴팔 카디건을 입고도 몸에 온기가 부족했는데 그 녀석은 아직 하절기 교복이라서 반팔사이로 보이는 가는 팔이 시려 보였다.
"언제부터 앉아있었어?"
나는 그 녀석 옆에 앉으며 물었다. 하교하고 낮부터 앉아있었다고 했다. 다행히 나를 경계하지 않고 곁을 내어 주었다.
"왜 여기 있어? 집에 왜 안 들어갔어?"
"...... "
대답을 못한다. 답을 할 수 없어한다. 한숨으로 나온 음이 목구멍에서 서럽게 떨렸다. 뱉어진 한숨은 작은 체구보다 크고 무거웠다. 새벽 3시쯤. 아직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의 한숨은 어떤 노인의 한스러운 일생보다도 서럽고 아프게 전해졌다. 땅만 보고 있던 아이의 시선은 세상 그 어느 것에도 관심을 둘 여력이 없어 보였다. 옆에 놓인 책가방은 고개를 푹 숙인 아이의 등보다도 컸다. 저 안에 수많은 책들이 들어있겠지. 나도 그랬듯이 어깨를 누르다 못해 아파서 손으로 받쳐 들어야 할 정도로 많은 짐들이 있겠지. 다 소용없는 것들. 수능이 끝나니 기억도 나지 않고 당장 밥벌이 하는데 써먹지도 못하는 저 징그러운 것들.
그 녀석의 한숨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왜 집에 안 들어갔는지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밥은 먹었어?" 학교에서 점심 먹고 저녁으로 뭘 먹었다는 것 같았는데 하루 종일 밖에 앉아있느라 배가 많이 고플 것 같았다.
대략 12시간 정도 밖에서 방황하다가 여기에 자리 잡고 앉아있었으니까 많이 힘들겠지.
"가자. 김밥 사줄게."
아파트단지 후문에 밤새 문을 열어놓는 김밥집이 생각났다.
"내일 학교 갈 거야?"
"네..."
"그럼 지금은 어디 가고 싶어? 계속 밖에 있을 수는 없잖아"
아까 우리를 못 보고 지나간 순찰차를 불러 세울 걸 그랬나... 난감해진다.
근처에 있는 성당을 얘기했더니 어렸을 때 엄마랑 가본 적 있다고 말한다. 엄마가 지금은 안 계신 걸까?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컴컴한 길 끝에 깜깜한 건물들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는 고마운 김밥집을 들어갔다. 아주머니 두 분이 쳐다본다. "치즈김밥 주세요."
"참치김밥이요!"
녀석이 힘 있게 말했다. 다행이다. 자기주장이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피시방에 있다가 내일 학교 갈게요."
요즘처럼 청소년들을 보호해 주는 시스템이 사회에 잘 갖춰져있지 않았던 때였다. 그전에도 가출한 초등학생 형제를 경찰에 신고했다가 오히려 죄책감을 느낀 적이 있던 터라 당장 그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피시방에 데려가서 보호자로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었다. 그리고 지갑에 있던 몇천 원을 쥐어주면서 내일 학교에 꼭 가기를 당부했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그 녀석을 학교에 보내려고 했던 걸까... 학교에 간다고 해결되지 않을 텐데. 다만, 잘못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너무도 피곤했다.다음날도 출근을 해야해서 빨리 쉬어야만 했다.
오래전 일이지만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이 무겁다. 간혹 그 녀석이 생각나면 그 한숨이 떠오른다. 잘 자랐을까? 그 뒤로 어떻게 됐을까 궁금하다. 비록 내 도움은 짧았고 어리석었지만 낯설고 어설픈 어른이 도와주고 싶어 했던 마음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워낙 어른스러움이 몸집보다 컸던 아이라서 이겨내고 잘 자랐을 거라고 믿고 싶다.
오늘도 길고양이들 도시락을 들고 밖을 나섰다. 요즘은 하늘의 깡패인 물까치들이 기세가 등등하다. 산란기에는 사람도 공격하는터라 고양이들이 밖을 돌아다니지 못한다. 몇 일째 숨어있느라 밥을 잘 못 먹는다. 해가지면 조용해지던 새들이 요즘은 태어난 새끼들을 보호하느라 밤까지 난리이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시끄럽다. 쉬지않고 시끄럽다.소음 데시벨은 매미한테 지지 않는다.
한때 싸워보겠다고 우산을 들고 하늘을 휘저으면서 미친년 코스프레도 해보았다. 그러나 하늘을 날고 나무 사이를 골목길로 여기는 녀석들과 나는 싸움의 체급이 달랐다. 졌다. 쪼이고 말았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또 생겼다.
까마귀가 와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까마귀 한 마리가 등장하면 수십 마리의 물까치들이 달려들어 싸움이 난다. 가관이다. 그래도 한바탕 까마귀가 휘젓고 가면 녀석들은 잠시나마 조용해진다. 까마귀가 나에게는 절대 불길한 녀석이 아니다. 반갑다.
나에게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앞으로도 많다.많지 않으면 좋겠는데.
사람과 길고양이를 같이 얘기해서 미안하지만 집 밖에 나와 있는 녀석들에게 내가 먼저 다가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알아주면 좋겠다. 한겨울 한파가 몸을 때리듯 거칠고 냉정한 세상이지만 미약할지라도 따뜻한 존재가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도 그런 따뜻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