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중에 수제비 가게 할까?'
가끔 혼자 이런 상상을 한다. 길을 걷다가 눈에 쏙 들어오는 작은 문을 발견한다. 위치는 낮은 층고의 가게들이 모여있는 어디 즈음에 있다. 작은 문을 열면 뜨끈한 멸치육수 냄새가 진동한다. 자리에 앉으면 펄펄 끊는 수제비 그릇이 테이블 앞에 '탁' 놓인다. 적당히 통통한 수제비들이 동동 떠있다. 파, 당근. 감자 등 야채들과 함께 어우러져있는 진한 국물을 한 숟가락 입에 쓱 넣으면 눈이 스르르 풀린다. 맛이 좋다. 수제비 그릇 옆에는 손바닥만한 작은 스테인리스 밥그릇이 있고 뚜껑을 열면 좁쌀이나 강황으로 노랗게 물든 쌀밥이 채워져 있다. 젓가락으로 밥을 뜨면 밥알이 찰지게 붙어서 오물오물 떼어먹는다. 입안에 남아있는 진한 국물 맛과 어우러져서 씹는 맛이 달다. 맛있는 상상을 해본다.
아쉽게도 나는 요리솜씨가 없다. 그러니 요리 비법도 없다. 한때 일부러 찾아갔던 함바집이 있었다. 재건축 건설현장 바로 앞 주택단지 1층에 있었다. 젊은 부부가 운영을 했다. 매우 자신감이 넘치는 젊은 여사장은 주방의 모든 음식을 척척 해냈다. 공사 현장이 크지 않고 코로나 기간이어서 붐비지는 않았다. 제육볶음이 맛있었다. 조금씩 곁들여 나오는 밑반찬은 나름의 비법이 있어 보였다. 단순히 레시피 책에 있는 대로 만들어서는 낼 수 없는 한 끗 차이가 있었다. 도대체 이 한 끗이 무엇일까 너무도 궁금했다. 재료가 뻔한 콩나물국조차도 맛이 있다니. 부러웠다.
동네 상가 뒤편에는 작은 카페거리가 있다. 야외에 화려한 꽃이 가득한 화분들과 소품들, 파라솔, 의자들이 줄지어 있는 예쁜 길이 있어서 좋다. 그러나 부담 없이 요기할만한 곳이 있으면 좋을 텐데 항상 아쉽다. 우연히 카페 거리의 어떤 카페 사장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게 되었다. 평생 전업주부였지만 아이들을 다 키우고 카페 사장님으로 처음 도전을 하셨다고 했다. 워낙 음식에 감각이 있다 보니 우연히 주변에 디저트를 만들어주다가 반응이 좋아서 본인의 가게를 차리게 되었다고 했다. 몇 번 방문하면서 살펴보니 손님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 그분의 비법 같았다. 방문한 손님들은 꼭 기억을 하셨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손님들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합류도 했다. 서비스로 내어주는 인심도 후했다. 친밀한 고객관리가 카페가 잘 되는 요인 중의 하나로 보였다. 어느 날 문득 그런 말씀을 하셨다. 본인은 칼국수집이 하고 싶다고 가격을 OO원 정도로 저렴하게 받아서 누구나 먹고 갈 수 있는 그런 밥집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들으면서 안타깝게도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눈 앞에 진열된 알록달록 고운 자태의 디저트들은 밥 한 끼와 가격이 비슷했다. 얼마를 받고 싶다던 한 그릇의 가격보다 더 비싼 디저트의 가격표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 생각이 났다. 학교 앞 아주 오래된 건물 1층에는 매우 작은 가게가 하나 있었다. 평소에는 눈길도 잘 닿지 않는 곳이었다. 항상 걸어 잠겨있다가 언젠가부터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연세가 꽤 있어 보이는 작은 체구의 할머니 한분이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머리에 비녀를 꽂아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옛날 분이었다. 문 앞에 있는 작은 부엌에서 펄펄 끊는 큰 냄비들에 밀가루 반죽을 들고 수제비를 뜨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곳은 건물의 자투리 부분을 가정집으로 개조한 몹시 작은 공간이었다.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좁은 부엌이 나왔다. 들어서자마자 할머니와 인사를 하고 부엌을 지나면 온돌방 한 칸이 나온다. 온돌방에 잠시 앉아있으면 큰 냉면 그릇에 수제비가 듬뿍 담겨서 올라온다. 2인분 같은 1인분이라서 친구와 나눠먹어도 배가 불렀다. 김치는 직접 담근 집 김치였다. 장사가 잘돼서 나중에는 옆에서 도와주는 아주머니도 계셨다.
할머니는 손이 무척 빨랐다. 부글부글 끊어대는 국물 가까이에서 척척 반죽을 떼어 던지면 반죽들이 요란스러운 국물과 함께 미친듯이 춤을 춘다. 보기만해도 내 손이 다 뜨거웠다. 요즘은 식당에서 수제비 뜨는 모습을 보기 어려워서 가끔 그 모습이 생각이 난다. 그렇게까지 오픈되어 있는 주방도 흔하지 않으니까. 그분은 크게 이윤을 남기려는 것보다 재미가 있으셨던 것 같았다. 손님에게는 별말씀이 없는 분이었는데 매번 눈을 마주치며 인사할 때마다 우리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서 '아이고, 이쁜 것들~'이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작은 가게가 문을 닫았다. '없어졌구나... 양이 너무 많았어, 너무 저렴했어.' 많이 아쉬워했는데 얼마 후에 가게 맞은편 큰 철재 대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마당이 꽤나 넓은 구축 한옥이 할머니네 집이었다. 화분과 잡동사니로 어수선한 마당을 지나면 맞은편에 여러개의 방이 있었다. 할머니는 부엌으로 쏙 들어가서 더이상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대신 연로하신 할아버지가 익숙하지 않은 자세로 쟁반을 들고 오셨다. 아무래도 할머니의 열정이 할아버지를 움직이게 한 것 같았다. 조용했던 마당과 작은 방들이 학생들의 발걸음으로 점심 시간때마다 북적였고 할아버지는 매번 우리와 수제비 그릇을 주고 받으며 어색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요즘은 산책길에 동네 상가들을 지나면 '여기 이쯤에 작은 수제비 가게가 하나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초등학생들이 떡집에서 가래떡 한 줄씩 비닐에 담아 들고 한 조각씩 오물오물 먹으면서 하교하는 모습을 보았다. 신기했다. 애들이 가래떡 맛을 아는구나! 그렇다면 나는 작은 컵에 수제비를 담아서 컵수제비를 팔면 어떨까? 몸에 좋은 멸치국물도 먹고 수제비도 가래떡처럼 쫀득하니까 좋아하지 않을까? 그런데 멸치국물은 싫어하려나? 아니면 동네 어르신들이 혼자 식사 번거로울 때 여기 와서 간단히 요기하는 것도 좋을 텐데... 퇴근길 혼자 사는 직장인들이 마을버스에서 내려서 한 그릇 비우고 들어가는 것도 괜찮을 텐데.
이 동네 식당들은 불친절해도 장사가 꾸준히 잘 되던데 나는 좀 친절한 눈빛 인사를 건네면 좋지 않을까? 그때의 할머니처럼말이지. 혼자서 이런저런 상상을 해본다. 상상이야 뭐든 다 잘 될 것 같고 유쾌한 장면만 떠올릴 수 있으니 마음껏 해본다. 과연 나의 상상이 현실로 실현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예전에 먹었던 그 수제비가 떠오를 때마다 가끔씩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