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상가 안쪽에 백반집이 있었다. 뒷문 가까이에 있었다. 상가 뒷문은 주차장을 지나 작은 도로로 빠지는 곳이라 선호되는 가게 위치는 아니었다. 다른 상가나 매장으로 동선이 연결되지도 않아서 우연히 발견되야만 갈 수 있는 작은 밥집이었다. 따뜻한 밥상이 생각나던 날 입간판이 눈에 띄었다. '이런 곳이 있었네? 그동안 왜 안보였지?'
제육볶음과 생선이 나오는 백반 차림을 받아 들고 한 숟가락 뜰 때였다. 옆에 앉아있던 부부와 초등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아주머니가 반찬으로 보이는 통들을 주섬주섬 비닐에 담으셨다. 꽤 많은 양이었다.
"이거 가져가~"
옆테이블의 일행은 주인아주머니와 잘 아는 사이 같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처음에 장사할 때 하루 100그릇씩 팔았어. 그때는 백반이 3000원이었어."
이 자리에서 20년 동안 장사를 하셨다고 했다.
"그동안 장사해서 애들 다 결혼시켰잖아. 전세금까지 다 해서 보냈어. 그리고 내 노후도 준비해 놨고." 10평 남짓 작은 가게에서 한 달에 몇백만 원의 월세를 내면서 자리를 지키셨다고 했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목소리에 묻어났다.
장사의 비법을 풀어놓으셨다.
"내가 이거 팔아서 한 그릇에 얼마를 남길까 생각하면 장사 못해. 정성껏 열심히 하니까 되는 거야. 그렇게 했더니 6개월쯤 지나니까 여기 문 밖으로 밥 먹겠다고 줄을 서더라고."
왠지 동네 직장인들은 다 한 번씩 그 집에서 밥을 먹어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백반집이 문을 닫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가게가 문을 열었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하고 새로 생기고 닫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할매식당. 오래된 가게를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한다. 새겨들을 말들이 줄줄 흘러나온다. 그중에 순두부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 할머니와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하시는 말씀이 마치 작가가 수없이 다듬은 영화의 명대사 같았다. 한마디 한마디가 영양가 많은 현미밥처럼 꼬득꼬득 씹어서 흡수시키고 싶었다.
"젊음이 다 돈이야."
나이가 들면 몸에 힘이 부족해져서 바카스 병 하나 따는 것도 어렵다. 본인 옆을 휙하니 지나가는 젊은이의 박력 있는 걸음을 보면서 그렇게 힘차게 걸어갈 수 있는 것도 큰 재산이라고 하신다. 지금도 밥상을 하나 잘 차려서 손님에게 주면서 '내가 차려줬다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하신다. 젊은이들에게도 그런 자부심을 갖고 살라고 하셨다. 젊다는 에너지를 귀하여 여기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에너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본인들이 얼마나 귀한 것을 갖고 있는지 모르고 있으니, 늙음으로 사라지게 두지 말고 한번 제대로 써보라고 격려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나는 꽤 오랫동안 위축되어서 살았다. 안전할 것 같은 영역을 찾아서 그 안에서만 생활을 했다. 이렇게 저렇게 해봐도 노력해도 잘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너무 빨리 내렸다. 못된 사람들의 꾐에 당하는 것도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도 내 능력이 부족한 것도 다 피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자부심을 느낄 기회가 사라졌다. 더욱이 자부심은 세상 모두가 인정하는 학력, 회사, 재력 또는 특출 난 재능 이런 것들에서 온다고 은연중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부심이란?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그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사전에서 말한다. 음... 매우 상대적이고 주관적이었구나.
내 자리에서 어떻게 열심히 살 것인가 고민하고 그것을 해낸 분들이 있다. 단지 돈을 모았다, 살만큼 벌었다가 아니라 그 시간을 해냈다는 자부심이라는 열매가 그분들에게 있다. 나에게서 멀리 저 높은 곳에 있기에 말한 번 붙이기 불가능한 사람들에게만 자부심이 있는 게 아니었다.
'열심히 살아. 열심히. 젊음을'
인터뷰 마지막에 나오던 할머니의 말이 순두부 양념의 비법처럼 들렸다. 어차피 사라질 젊음인데 아낀다고 저장되지 않으니 아직 남은 젊음을 열심히 써야 되겠다. 훗날 저분들처럼 자부심으로 바꿀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