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에서 생긴 일 3
지난 이야기
: 호찌민 여행 1.5일 차, 새벽 3시. 호스텔에서 자던 도중 '쿵' 하고 무언가 무거운 것이 떨어지던 소리에 잠에서 깼다. 확인을 해보니 어떤 백인 남자가 고통을 호소하며 바닥에 주저앉아있다. 알고 보니 나흘 전, 녹슨 칼을 쓰다가 오른손이 베었고 제대로 된 처치를 하지 않아 심각한 감염이 진행된 상황이었다. 손가락 감염의 여파인지 왼 발에도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새벽 4시 반,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그와 함께 택시를 타고 근처 종합병원으로 향하게 되는데...
도착한 병원은 꽤나 작고 한산했다. 전문적인 병원보다는 간단한 것들을 처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응급실정도 되는 규모의 병원이었다. 나는 병원 가운데에 있는 카운터로 가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자 했다. 번역기를 써서 상황을 전하려 했으나 무슨 일인지 핸드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아예 데이터 표시가 뜨지 않았다. 병원 안이라서 그런가? 생각하며 미약하게 잡히는 와이파이 하나를 잡아 번역기를 돌고자 했다. 하지만 와이파이는 너무 약했고, 수십 번을 시도해야 겨우 한 번 번역이 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다행히 도와주시던 직원 분이 간단한 영어 단어는 이해하실 수 있으셨기에 영어 단어와 손짓 발짓을 섞어서 쓰며 그의 손과 발이 아프다는 사실을 전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를 일단 비어있던 병원 침대에 앉혔다.
그렇게 처치를 도와주실 분을 기다리길 5분, 그제야 나는 현 상황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호스텔에서 큰 체구의 그를 반쯤 업고 내려올 때도, 택시를 타고 병원에 올 때 까지도 이 사람을 빨리 병원에 데려가야겠다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반쯤은 잠에 취해있었던 건지, 아님 일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커서 다른 것이 안 보였던 건지 모르겠다. 의사를 기다리며 한산하고 조용한 병원에서 그와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제야 우리가 어떤 꼴인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맨몸에 달랑 트렁크 팬츠 하나만 걸친 상태였다. 아무래도 자던 차림 그대로 나오기도 했고, 그 위에 뭔가를 입으려 해도 다리에 무언가 스치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글썽이던 그였기에 바지를 입고 나오지 못했다. 그는 상의에 티셔츠, 아니 난닝구 하나 입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그래도 그나마 나았다. 원래도 잠옷보다는 오래 입어 목이 늘어난 티셔츠와 편한 바지를 입고 자기 때문에 그냥 좀 후줄근해 보일 뿐이었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를 본다면 확실히 이상하게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없었다. 여행 온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서 처음 보는 외국인과-그것도 현지인인 베트남 사람도 아니고 파란 눈의 유럽인이랑- 새벽 5시에 이런 꼴로 병원을 오다니.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왔다.
나는 그제야 내가 그의 이름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와 통성명을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리암. 아일랜드 사람으로,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20대 후반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는 이미 몇 달째 태국, 베트남 등을 돌아다니며 동남아를 여행 중이었다. 베트남에서 머무는 건 오늘이 마지막으로, 오후에 버스를 타고 캄보디아로 넘어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버스는 당연히 취소할 거지?' 내가 물었다.
왼쪽 다리로 걷기는커녕 스치기만 해도 쩔쩔매는데 본국으로 당장 돌아가진 못해도 설마 캄보디아로 넘어가는 길고 긴 버스를 타러 가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웬걸, 그는 이미 친구랑 캄보디아에서 만나기로 했다며 기어코 버스를 타고 가겠다고 칭얼댔다.
"미쳤어? 캄보디아는 무슨... 빨리 니네 나라로 돌아가가기나 해"
"아니... 나 진짜 괜찮아. 아마 괜찮을 거야."
"뭐가 괜찮아. 너 지금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데"
"아 뭐 그렇긴 한데... 나 이미 동남아에서 크리스마스까지 다 보내기로 계획도 짰고, 아일랜드 돌아가는 비행기표는 환불 불가여서..."
"너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너 빨리 핸드폰 켜서 비행기표나 검색해."
그는 마지못해 핸드폰을 켜서 아일랜드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검색했다. 슬쩍 핸드폰을 보니 가장 저렴한 비행기도 한화로 최소 180만 원 정도 되어 보였다.
"아 안돼 안돼, 나 돈 없어" 그는 고개를 저으며 핸드폰을 내려두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럼 앞으로 여행할 2달간의 경비는 어디에 있냐고 추궁했다. 그는 시선을 피하며 얼버무렸다. 돈이 없다는 그의 말은 매우 의심스러웠다.
그는 계속해서 동남아 여행이 얼마나 좋았는지, 자신이 어떤 계획을 세워놨는지 등을 이야기하며 아직 돌아가기 싫다고 찡찡거렸다.
나는 대강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척만 하다가 틈을 타 혹시 부모님께 상황을 말씀드리고 비행기표값이라도 빌려주실 수 있으신지 여쭤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처음엔 그 말에 솔깃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결국엔 그러기는 싫다며 떼를 썼다.
그는 어짜피 비자가 내일이면 만료되기 때문에 계속 머무를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의심스럽다는 듯 쳐다보자 그는 정말이라며 몇 번이고 강조했다.
"알겠어. 그럼 어짜피 베트남에서 머무는 것도 내일까지만 가능하니까, 그럼 내일 아일랜드로 떠나는 비행기 표 사면 되겠네."
"안돼... 비행기표 너무 비싸. 그리고 나 친구랑 캄보디아에서 만나기로 했잖아. 나 괜찮을거야, 아마도"
그렇게 이대로 그냥 돌아가기는 싫다는 그와, 빨리 아일랜드로 돌아가라고 재촉하는 나 사이에 가벼운 실랑이가 오갔다.
그렇게 십 분 즈음 지났을 무렵, 간호사 분이 여러 약품을 담은 트롤리를 끌고 나타났다.
그녀는 내가 엉성하게 감아뒀던 붕대를 풀곤 그의 손을 트롤리 쪽으로 가지고 왔다. 그의 손가락을 트롤리 맨 위에 올려진 스테인리스 그릇 위로 가져간 후, 소독약을 거의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는 옆에서 억눌린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썩어버린 상처 위로 소독약이 부어지는 모습을 보자 내가 다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녀는 솜과 붕대를 이용해 그의 손가락을 다시 감쌌다. 간단한 처치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가 왔다.
의사는 리암에게 얼마나 고통이 심한지 물으며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의 발을 만졌다. 발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려고도 했지만 리암이 약간의 터치나 움직임에도 심하게 고통스러워했기 때문에 거의 손을 대지 못했다.
의사는 그의 발이 부러지거나 금이 가서 통증이 생긴 것이라고 추측하는 듯 보였다. 그는 계속해서 어디에서 떨어진 적이 있는지, 발을 심하게 부딪힌 적은 없는지를 물었다. 리암은 그런 적 없다고 말하며 본인의 증상과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아일랜드 억양과 빠른 속도로 쏟아지는 영어 탓인지 의사는 이해하지 못하는 듯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고, 이내 왜인지 나를 슬쩍 쳐다보았다.
결국 영어 원어민인 그와 베트남 사람인 의사 선생님 간의 영어 의사소통을 돕기 위해 내가 나서게 되었다. 최대한 쉬운 단어로 말을 풀어가며 천천히 말하자 의사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일단은 엑스레이를 먼저 찍어보자고 했다. 간호사는 휠체어를 가져와 그를 앉히곤 엑스레이 실로 데려갔다. 이젠 굳이 내가 없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자리를 뜨려 했지만, 리암이 같이 있어줄 수 있냐고 부탁을 해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엑스레이 실로 향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