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에서 생긴 일 4 (근데 이제, 통신사 셧다운을 곁들인...)
지난 이야기
: 호찌민 여행 1.5일 차 새벽 4시, 숙소에서 만난 외국인(리암)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 그는 나흘 전 베인 손가락에 심한 염증 증상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이유 없이 왼쪽 다리에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병원에 도착해 그의 증상을 설명하려 했지만 왜인지 핸드폰이 잘 터지지 않아 번역기를 쓸 수 없었다. 결국 바디랭귀지와 간단한 영어를 섞어가며 의료진들에게 상황을 전달했고 그들은 일단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했다.
엑스레이를 찍으러 가는 길, 한 간호사가 리암의 휠체어를 끌었고 나와 다른 한 간호사는 그 뒤를 따랐다. 나와 같이 걷던 간호사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나를 바라보며 손짓을 했다.
"He... Drink?"
그녀가 리암을 가리키며 물었다. 나는 "Drink?"라고 되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를 마시는 듯한 포즈를 반복했다.
"Oh, you mean, Alcohol? Like, beer?" (술 말씀하시는 거예요? 맥주 같은?)
내가 물었다.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암이 술을 마셨던가? 나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했다. 딱히 그에게 술 냄새가 나지는 않았지만 내가 잠들었던 시간인 오후 11시까지 그가 들어오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 봤을 때 술을 마시고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엑스레이 실로 들어가는 그의 뒤에 대고 지난밤에 술을 마셨는지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했다.
"He, Drink, Night"
내가 말했다. 간호사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다리를 가리키곤 술을 마시는 포즈를 취한 다음 고개를 저으며 x표시를 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디선가 감염이 되었을 때 술을 마시는 게 최악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술을 마셔서 감염이 심해진건가 생각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호스텔 직원이 말하길 전날 밤에 그가 만취 상태로 호스텔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렇게 들입다 마신 술이 그의 감염상태에 당연히 도움이 되었을 리 없다.
엑스레이 결과는 정상이었다. 의사는 왼쪽 다리의 통증이 다친 손과 관련이 있지는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손의 경우, 손가락 살점이 이미 썩어버렸기 때문에 큰 병원에 가서 잘라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일단 약을 처방해 줄 테니 일주일 간 복용을 하고 그 후에도 계속 다리에 통증이 있다면 피검사 등을 하라고 이야기했다.
의료 상식이 하나도 없는 내가 당연히 뭘 제대로 알리가 없지만 그의 손가락 부상과 왼쪽 다리의 통증이 관련이 없다는 말은 믿기 힘들었다. 한 번도 다친 적 없던 멀쩡한 다리가 하루아침에 제대로 걷지도 못할 만큼 아파졌다. 그게 하필 손가락 감염이 되고 처음으로 술을 먹은 날 밤인데 -내가 술을 마신 것에 대해 리암에게 뭐라고 하자 그가 이번이 손을 다치고 처음 술을 마신 날이라고 변명했다- 그 둘이 관련이 없다니.
아무튼 그들은 가까운 약국에서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처방전을 써주었다. 처방전은 수기로 작성되었다.
다리가 아파 움직이기 힘든 리암 대신 나 혼자 수납처로 향했다. 수납처는 병원과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위치해 있었다. 치료비용 결제를 위해 리암에게서 카드를 받아서 갔다.
하지만 이곳은 베트남. 병원 역시 카드를 받지 않았다. 리암에게 가서 혹시 현금이 있냐고 물었더니 그는 100불짜리 미국 지폐를 내밀었다. 오늘 베트남을 떠날 예정이었던 그에게 베트남 돈이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미국 달러로는 결제가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일단 내가 가지고 있던 돈으로 병원비를 결제하였다. 리암은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택시비와 병원 비 모두 갚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가지고 있던 100불을 담보로 가지고 있겠다고 말하며 지갑에 넣었다.
우리는 처방전을 가지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병원에 올 때와는 다르게 밖은 환하게 동이 튼 아침이었다.
리암이 핸드폰을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택시를 잡는 건 내 몫이었다. Grab 어플로 택시를 부르기 위해 핸드폰을 켰더니 여전히 핸드폰 데이터가 터지지 않았다. 병원 밖으로 나왔음에도 여전했다.
그나마 병원 안으로 들어가면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는 있었다. 다만, 와이파이 신호는 강했을지언정 인터넷 연결은 매우 불안정하고 약했다. 몇 번을 시도해도 계속 로딩만 반복하다가 연결에 실패했다는 문구만 떴다. 숙소에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이른 아침이었기에 주변에 돌아다니는 택시도 없었고, 병원 근처에 마땅한 가게도 없었기에 다른 가게 와이파이를 쓸 수도 없었다. 걷기 힘들어하는 그를 데리고 와이파이가 있는 곳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녀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수십 수백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한 택시와 연결이 되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날 내가 쓰던 호주 통신사 옵터스에서 전국적인 셧다운이 일어났다는 걸. Optus는 한국으로 치면 SKT나 KT 같은 호주의 유명 통신사 중 하나이다. 여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가 하필이면 내가 리암을 데리고 병원을 온 날 전체 서버 셧다운이 된 것이었다.
당시에 내가 그 사실을 알리 만무했다. 그땐 그저 일시적인 핸드폰 오류겠거니 생각하며 넘겼다. 그저 간신히 잡힌 택시를 탈 수 있음에 감사했다.
숙소에 도착한 후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약국에 가서 약을 타오는 것이었다. 리암은 일단 자고 가겠다고 했지만 어차피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그를 데리고 약국을 왔다 갔다가 할 생각은 없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호스텔 직원이 걱정이 섞인 표정으로 입구까지 걸어 나왔다. 어떻게 되었냐고 묻는 그에게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약을 사러 간다고 얘기했다. 그러고는 리암을 3층 방까지 부축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숙소 와이파이는 빵빵하게 터졌다. 구글맵을 켜 가까운 약국을 검색하니 새벽 6시였음에도 운영하는 약국이 있었다. 도보로 3분밖에 안 걸리는 가까운 곳이었기에 눈으로 대강 위치를 확인한 후 약국으로 향했다.
도착한 약국은 한국 약국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약국 직원에게 처방전을 내미니 그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한 후 약을 꺼내기 시작했다.
약국 직원은 매우 친절했다. 약을 개별 비닐백에 담으며 나에게 언제 먹어야 하는 약인지 등을 하나하나 설명했고 봉지 위에도 영어로 간단히 적어주었다. 개수를 세어보니 그가 하루에 먹어야 할 약의 개수는 10개나 되었다. 나는 그 약들과 1.5리터 생수 하나를 사들고 호스텔로 향했다.
호스텔에 도착해 리암에게 약에 대해 설명을 해주며 약을 먹였다. 그는 피곤하다며 잠시 자겠다고 말하며 이따 일어나면 친구에게 추천받은 카페가 있으니 거기에서 밥을 사겠다고 했다.
나 역시 숙소에 돌아오니 피곤함이 몰려왔다. 침대에 누우니 스스륵 눈이 감겼다.
다시 눈을 떠보니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다행히도 통신사가 서서히 복구되며 이제는 핸드폰이 와이파이 없이도 터지기 시작했다.
리암은 아직 자고 있었다. 나는 받아둔 영수증들과 Grab 앱에 남은 내역들을 확인하며 쓴 비용을 계산했다. 약 값, 택시비, 그리고 병원비를 모두 포함해 베트남 돈으로 약 1,900,000동, 대략 75불 정도가 들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리암을 깨웠다.
"내가 계산해 보니까 총 75달러가 들었거든? 네가 준 100불 아직 나한테 있으니까 나머지 25달러는 지금 환전소에 가서 바꿔서 줄게"
그는 비몽사몽 한 채로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그냥 나머지 25불도 모두 가지라며 감사의 표시라고 했다. 진심이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잠에 들었지만 나는 이미 잠이 완전히 달아난 상태였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젠 문제 될 게 없다는 생각에 간단하게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이제 호찌민에 도착한 지 겨우 2일 차. 숙소에만 머물 수는 없었다.
저녁 무렵 숙소로 돌아갔을 땐, 리암의 자리는 말끔하게 정리되어 다음 손님을 기다리는 상태였다. 기어코 캄보디아로 가는 버스를 탄 모양이었다.
그렇게 이 에피소드는 마무리 지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그 새벽에 처음 본 외국인을 데리고 병원을 간 나 스스로가 어이가 없다. 그 당시에는 별다른 고민이나 생각 없이 그저 그를 도와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이리저리 움직였던 것 같다.
그가 정말 크리스마스까지 동남아에서 시간을 보냈는지, 아니면 중간에 아일랜드로 돌아갔는지는 모른다. 아무쪼록 그가 별 탈 없이 잘 살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