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이네에서 생긴 일 1
호찌민 여행을 결정했을 즈음, 나는 알고 지내던 베트남 친구들에게 가 볼만한 곳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중 한 친구가 무이네를 추천했다. 그녀는 무이네를 자신이 가장 지역이라고 말하며 기회가 되면 꼭 가보라고 했다. 찾아보니 무이네는 호찌민에서 차를 타고 3시간 반정도 되는 거리에 위치한 지역 이름이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믿고 무이네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무작정 숙소를 예약했다. 무이네에는 호스텔이 없어 에어비앤비로 예약을 했고, 가격은 2박 3일에 4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호찌민에서 무이네로의 이동은 슬리핑 버스로 했다. 새벽 5-6시 즈음 호찌민에서 버스를 탔고 아침 9시가 되어서 무이네에 도착을 했다.
무이네에 대한 첫인상은 '시골' 그 자체였다. 마을 중앙에 큰 시장이 있고 그 중심으로 몇몇 상점들이 들어서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한적한 분위기였다. 시골에 계신 조부모님 댁을 갔을 때의 느낌이었다.
만약 무이네를 갔다 온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의아할 것이다. 무이네는 호캉스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무이네가 해변가에 위치한 지역인 만큼 이곳에는 해안선을 따라 가성비 좋은 호텔이나 리조트가 넘쳐나고 사람들은 그곳에 호캉스를 즐기러 간다.
나는 몰랐다. 당연했다. 나는 사전 조사를 하나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무이네를 추천해 준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녀 역시 리조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당시 나는 그러한 사실을 하나도 모르고 있었음에도 무이네에 들어서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한 정류장에서 전부 내렸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 20분을 더 달려 숙소 근처 정류장에 도착을 하게 되었다. 혼자 타 있는 버스 안에서 위치를 확인해보니 유명한 맛집이나 장소들은 모두 내 숙소에서 20분가량 떨어진 곳들, 그러니까 나를 제외한 모두가 내리던 바로 그 곳에 위치해 있었다.
내 숙소는 중심부에서 꽤나 떨어진 시골 그 자체인 마을에 있었다. 관광객은 나 하나뿐인 듯 했다. 마을의 중심부였음에도 택시를 잡기 위해서는 위치를 옮겨 다니며 두세 번 시도를 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래도 숙소는 좋았다. 직원도 친절했고 내부도 깔끔했다. 위치가 좀 흠이었지만 택시만 잡으면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없었다.
체크인을 한 후, 나는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숙소 앞에서는 택시 호출이 되지 않았기에 에어비앤비 주인은 친절하게도 마을 중심부까지 오토바이를 태워주었다. 나는 마을 중심부에 내려 다시 오토바이 택시을 불러고, 약 15분쯤 떨어진 미리 저장해 둔 해산물 식당으로 향했다.
음식은 맛있었다. 그러나 식당은 신기하리만큼 텅텅 비어있었다. 내가 그곳의 유일한 손님이었다. 그러고 보니 길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도 10분에 한 명 꼴로 보일 정도로 애초에 거리에 사람이 없었다. 음식을 다 먹고 길거리를 걸어도 상황은 비슷했다. 거리가 텅텅 비어있었다. 도로에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는 지역 주민만 몇 명 보일 뿐이었다.
나는 텅 빈 거리를 홀로 하염없이 걸었다. 호찌민은 워낙 사람과 오토바이가로 득실거리기 때문에 이런 평온한 산책은 꿈도 꾸지 못했다. 날씨가 꽤 후덥지근했음에도 오랜만에 산책을 하니 즐거웠다. 해변가라 호찌민보다는 날씨가 선선했다.
걷는 동안 내 관심을 끈 것은 가판대였다. 거리에는 현재는 운영을 하고 있지 않은 가판대가 정말 많았다. 그 가판대들은 대부분 철판 아이스크림, 동전 빵, 마시멜로 아이스크림 등 한국에서 인기 있는 간식들을 팔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전 세계에서 유명한 길거리 간식이라 팔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정말 한 곳도 빠짐없이 한국어 간판이 붙어있었다. 영어 간판이 없을지언정 한국어 간판은 있을 정도였다. 무이네가 특히 특히 한국인에게 유명하다더니, 그것을 확실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운영하는 곳도 없었고 관광객도 거의 볼 수 없었지만 이를 통해 이곳이 유명한 관광지였음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삼십 분 즈음 걸었을까, 미리 저장해 둔 관광지들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 지도를 켰다. 대부분 내가 있는 위치에서 차로 15분, 걸어서는 2시간이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2시간을 더 걸을 체력은 없었다. 나는 그랩 앱을 열어 오토바이를 부르고자 했다. 베트남에서는 자동차 대신 오토바이를 주로 이용하기 떄문에, 나도 베트남 도착 첫날에 시도를 해봤다. 첫날 첫 시도 때는 조금 겁이 났지만, 그 후에는 택시보다 더 가벼운 마음으로 오토바이를 자주 타고 다녔다.
그런데 정말 지나가는 오토바이가 단 한 대도 없었다. 보통 오토바이 찾기를 누르면 주변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오토바이의 실시간 위치를 보여주는 지도에 여러 대가 떠있었다. 그런데 한 대도 없었다. 몇 번을 시도해도 같았다. 혹시 내가 있는 위치가 중심가에서 멀어서 그런가 생각하며 10분, 20분을 더 걸어 상점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에 갔지만 그래도 여전히 오토바이를 잡을 수 없었다.
일단 택시라도 부르자 생각하며 택시를 검색했다. 그런데 택시도 없었다. 그냥 이 근처에 승차 서비스를 제공하는 교통수단이 없었다.
어떡하지?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관광지에 못 갈까 봐 걱정되는 게 아니었다. 숙소까지 어떻게 갈지가 문제였다. 혹시나 해서 도보로는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해 보니 대략 2시간이 걸린다고 나왔다.
정말 2시간을 또 걸어야 하나?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못 보고, 그냥 2시간을 쌩으로 걸어서 다시 숙소까지? 아찔했다.
그렇다고 거리에서 택시를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애초에 내가 잡으려고 시도한 들 택시가 설 것 같지도 않았지만, 만약 잡는다고 해도 그게 정말 택시일지 아니면 이상한 사람이 택시 흉내를 내며 태워주겠다고 하는 건지 알 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한참을 서서 그랩 앱으로 오토바이와 택시를 찾으려 수십 수백 번을 시도했다. 그렇게 한 10분 즈음 지났을 까, 누군가 갑자기 뒤에서 내 어깨를 톡톡 쳤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인상 좋은 베트남 아저씨가 있었다. 그는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있었고 그의 뒤에는 오토바이가 있었다.
그는 나에게 영어로 오토바이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며 일단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돌아서려는데 그는 나를 잡으며 자신은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더더욱 그가 수상하게 느껴졌다.
그는 내가 여태 그랩을 부르고자 시도하던 걸 본 모양이었다. 그는 자신이 드라이버라고 말하며 목적지까지 태워지겠다고 했다. 내가 계속 그를 수상하게 바라보며 한 걸음 씩 멀어지려고 하자 그는 정말이라며 자신의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그가 보여준 건 수많은 리뷰였다. 그와 다른 여행객(주로 백인이었다)이 헬멧을 쓰고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고 그 밑에는 여행 홍보문구 같은 게 있었다.
그는 살짝 뒤를 돌며 자신의 티셔츠를 가리켰다. 그곳엔 여행사 로고와 이름, 그리고 전화번호와 웹사이트 주소가 적혀 있었다.
정말인가? 정말 운전자인가?
여전히 그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었지만 조금씩 믿음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잠깐만 생각해 보겠다고 하며 지도 앱을 열었다. 관광지로 가는 길은 큰 도로를 이용해서 가는 방법뿐이었다.
'그래, 여차하면 뛰어내리자. 지나가는 사람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 일단 이상한 길로 가는 것 같으면 냅다 뛰자.'
무모한 생각이긴 했지만, 그가 보여준 수많은 리뷰와 그의 티셔츠가 나의 걱정을 조금씩 지웠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목적지까지 부탁한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바가지를 대비하기 위해 오토바이에 타기 전, 그랩에 검색해 표시된 가격을 보여주며 미리 값을 정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길에서 우연히 만난 베트남 현지 아저씨와의 오토바이 여행이 얼렁뚱땅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