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시골길에서 만난 아저씨와의 드라이브

무이네에서 생긴 일 2

by 앨리스

아무리 내가 무계획으로 여행하는 걸 좋아한다고 해도, 위험을 감수하면서 여행하는 타입은 아니다.


택시가 단 한 대도 보이지 않는 베트남 시골길에서 만난 '자칭 드라이버'. 그가 나를 목적지까지 태워주겠다고 했을 때, 당연히 넙죽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그저 그가 보여준 수많은 기록들—다른 여행자들과 찍은 인스타그램 사진이라든가, 그가 입고 있던 옷 같은 것들—을 보고 어느 정도 신뢰가 갔을 뿐이다.


특히 그의 이동수단이 차가 아닌 오토바이였기에 오히려 더 마음이 편했다. 차의 경우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더라도 문을 잠가버리면 탈출할 방법이 전혀 없지만, 오토바이는 사방이 트여 있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뛰어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뭐, 이것도 그렇게 안전하게 보이진 않지만,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튼 그렇게 그(앞으로는 그를 A라고 부르겠다)와 함께 하는 드라이브가 시작되었다. 나의 목적지는 Tháp Po Sah Inu. 8-9세기에 만들어진 작은 사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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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곳을 첫 목적지로 정한 이유는 간단했다. 나름 도심과 가까워 보이는, 큰 대로변 쪽에 위치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말인즉슨 A가 혹여나 이상한 곳으로 길을 틀더라도 바로 알아차릴만한 위치에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또한 시내로 나가면 그래도 유동 인구가 좀 있을 것이니 Grab 앱을 통해 택시를 찾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A의 오토바이를 타고 Tháp Po Sah Inu로 향했다.


가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시골스러웠다. 당황스러웠다. 지도로 봤을 땐 나름 도로 폭도 넓었고 주변에 공원이나 대학 등이 있어 못해도 마을 중심가 같은 거리를 예상했었다. 그러나 무이네는 내 생각보다도 더 시골이었다. 달리는 내내 본 차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고, 도로 옆은 모두 풀밭, 혹은 언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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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시골 변두리에 계신 조부모님 댁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보았던 풍경 같았다.


지도에서 보았을 때 절이 대로변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 보였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차를 타고 더 들어가야 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나중에 걸어서 나가기에는 마땅해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절 입구에 도착하자 A는 헬멧을 벗기도 전에 익숙한 듯 절 입구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나는 A에게 헬멧을 건네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는 내가 건네는 택시비를 받으며 내가 관광을 하고 돌아오면 도심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입장료를 내고 혼자 절을 보기 위해 올라가는 길, 생각을 하면 할수록 점점 A가 믿을만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절 이름을 보여주자 내비게이션을 틀지 않고 한 번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도 그렇고, 절에 있는 사람들과 익숙하게 인사하는 모습은 특히 더욱 그랬다. 애초에 사람이 텅텅 빈 거리에서 일부러 사기를 치려고 기다렸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작은 절을 보고 내려오는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의 생각 끝에 나는 그냥 그를 믿어보기로 했다.


IMG_1241.HEIC 절이 있던 언덕 끝까지 올라갔을 때 보였던 풍경


나는 그에게 앞으로 해질 때까지 남은 한 시간 반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내가 이 지역 여행하는 것을 도와주고 그 후에 내 숙소 즈음까지 태워 주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는 웃으며 그러자고 했다.. 흥정 끝에 우리는 300,000동, 한화로 약 만 육천 원으로 합의를 보았다.


1시간 반뿐이지만 내 전용 기사님이 생기다니, 그것도 베트남 시골에서. 상황이 제법 신기하고 웃겼다.


그 후 30-40분 동안은 근처에 있는 곳들을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녔다. 이름 모를 공원부터 대학까지. 아쉽게도 대부분 마감시간이거나 외부인 출입 금지인 곳이 많아 안 까지 들어갈 순 없었지만, 그저 오토바이를 타고 베트남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좋았다. 오토바이 위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 바람을 피하려 실눈을 뜨며 바라본 거리의 풍경, 그 모든 것이 즐거웠다


IMG_1246.HEIC 대학 외부 사진
IMG_1261.HEIC 도로를 달리며 본 풍경


숙소로 돌아가는 길, A가 잠시 카페에서 쉬어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우리는 그의 단골 카페에서 앉아 잠시 커피를 마셨다. 카페는 그를 만났던 해안 도로 쪽 번화가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은 여전히 조용했다. 사람은 당연했고 지나가는 차는 2-3시간 전 보다도 드물게 있었다.


카페는 작았다. 여태 내가 가봤던 베트남의 다른 카페들과는 달랐다. 나의 여행의 목적이 휴식이었던 만큼, 내가 갔던 카페들은 흔히 말하는 인스타 감성카페였다. 디저트가 유명하거나, 인테리어가 예쁜 카페들. 물론 좋은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그게 특별히 '베트남'의 카페라고 하기에는 아쉬움이 있는 곳이었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예쁜 감성카페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길가에 있는 작은 카페였다. 그곳엔 작은 간이테이블 2개와 쪼그려 앉을 수 있는 간이 의자 대여섯 개가 있었다. 나와 그는 커피를 한 잔씩 시키고 앉았다. 우리는 텅 빈 도로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자신이 베트남 오토바이 로드트립을 하는 운전자라고 했다. 이렇게 짧은 거리를 오가는 평범한 오토바이 기사가 아닌, 며칠씩 다른 지역을 여행하며 사람들을 안내하는 일이 그의 일상이었다. 그가 보여주는 사진 속에는 베트남의 울창한 산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특히 유럽이나 호주의 20대의 청년들은 베트남 로드트립을 위해 여행을 온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나 역시 언젠가 오토바이를 타고 베트남의 길 위를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한 5분 즈음 지났을 까, 그는 반대편 도보에서 길을 걷고 있던 한 남자를 발견하더니 그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길을 걷던 그 남자도 A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했다. A는 그를 자신의 친구라고 소개했고, 그의 친구 B도 자연스럽게 우리와 합석을 하게 되었다.


간단히 통성명을 한 후 우리는 무이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에게 길을 걸으면서 느꼈던 묘한 적막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걸음마다 보였던 음식 간판대. 보통 그건 사람들이 많은 관광지에서 주로 보이는 것이다. 심지어 그 가판대들은 대부분 한국어로 쓰인 간판을 달고 있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한국인은커녕 그냥 사람 자체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의문이 섞은 목소리로 묻자 B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코로나 이후로 무이네의 관광 산업이 폭싹 망했다고 했다. 그 역시 A처럼 택시운전이 생업이었는데 코로나 이후로 관광객의 발걸음이 뚝 끊겨 생계를 유지하기가 매우 힘들어졌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무이네의 구조 자체가 완전히 관광지를 위한 구조였다. 해안도로를 따라 쭉 깔린 도로, 그 옆에 들어선 상점들. 그곳은 분명 현지인들이 사는 곳이 아닌 타 국, 혹은 타 도시 사람들의 호캉스를 위한 장소였다. 그런 도시에서 평생을 살아온 그들에겐 관광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그들의 삶이 얼마나 큰 타격을 받았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A도 생업을 이어가기 위해 그렇게 도로에서 유니폼을 입고 서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나처럼 택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무작정 도로 한편에서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


A와 B는 그 이야기를 하며 동시에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그늘이 스쳐 지나갔다.


담배를 모두 태우곤 A와 나는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어느새 해는 지고 어둠이 드리워오고 있었다. 해가 지기 직전의 무이네는 서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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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중앙에 도착하자 그는 오토바이를 멈추고, 오늘 만나 즐거웠다고 말했다. 나는 오늘 여행을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꼭 다시 무이네에 돌아오겠다고, 그때는 오토바이 로드트립을 같이 하자고 말했다. 그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내가 이 여행을 간 건 재작년이기 때문에 현재의 무이네의 상황이 어떤지는 모른다. 부디 A도, 그리고 B도 여전히 도로 위에서 수많은 여행자들과 마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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