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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집가 Feb 23. 2016

행복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친구가 있다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카트린 지타

슬럼프까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다소 무기력한 날의 연속이었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길을 잃어버린 듯한 약간의 얼떨떨하면서도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는 내 식의 '무기력증'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다행인 것은 나는 내가 이걸 어떻게든 조만간 벗어날 거라는 걸 안다. 보통 이럴 때마다 비슷비슷한 방식으로 모티베이션을 주는 책을 찾아 읽는데 지난주 어느날, 미팅 전 잠시 짬이나 들렀던 서점에서 들춰본 이 책도 그렇게 우연히 만난 책이었다.


7년 동안 50개국을 여행했다고 하지만 어떤 나라를 어떻게 여행했다는 내용 따위는 제대로 나오지 않는 책이니 참고하시길.


혼자 여행을 한 번도 안해본 게 아니라, 나는 지금껏 꽤 많은 여행을 혼자 해왔다. 스물한살 생일을 맞이해 혼자 홍콩으로 떠난 것을 시작해 가족, 연인, 친구들끼리 주로 찾는 방콕과 코사무이, 타이페이, 도쿄, 다낭과 호이안, 케언즈부터 시드니까지 버스로 여행한 약 3주의 시간까지. 도가 튼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자 혼자 여행하기' 분야의 완전 문외한은 아닌 수준이다. 그런데 왜 이 책을 굳이 들춰보고 또 굳이 사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나와 비슷한 '과'의 사람이 어떻게 자기 중심을 되찾는 과정을 거쳤는지 염탐하는 것, 그게 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시 삶에 대한 의욕을 찾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방법, 혼자서도 잘- 동기부여하기.


앞서 언급한대로 백퍼센트 완벽하게 회복하진 못했지만, 오늘 다시 한 번 들춰보며 꼼꼼히 살펴봤더니 한 3퍼센트 정도 기운을 차린 것 같기도 하다.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관점과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지, 나의 장점과 한계는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은 오직 혼자 있는 순간밖에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왜' 혼자 여행하는가에 대해 우리가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에서 멀리 떨어져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혼자 여행해야만 하며, 그 시간동안 겪은 즐거운 일도 어려운 일도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평범하지만 한편으로는 여행과 닮았듯이 또다시 어렵고 힘든 일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준다고 한다.


...그런가? 여행에서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배운 것이 돌아온 삶에 그렇게 유용한 가치를 가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식하는 범위가 확장되어 그만큼 삶도 넓어진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실은 최근 한 두어달 정도 '퇴근 후 혼자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다소 진지하게 생각해보긴 했었다. 나의 취향상 혼자 보내는 시간은 저녁인 편이 나았고, 공간은 집보다는 비교적 덜 붐비는 카페가 나았다. 적절히 객관적으로 오늘 하루, 지난 한주, 최근 몇일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나에게 내어주는 것이 복잡한 내 머릿속을 한결 깨끗하게 정리해주는데다 꽤 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빠서라는 핑계는 사실 3할 정도밖에는 댈 수 없고 이상하게도 혼자 그렇게 멍-때리거나 차분히 정리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아마도 그건 차곡차곡 줄세우고 채워서 다시 앞으로를 계획하는 일이 버거워서 아니, 그냥 조금은 이렇게 무책임하진 않을 정도로만 게으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의지란 저절로 샘솟는 샘물이 아니라 수위를 조절해 주어야 하는 저수지 같아서 늘 신경을 쓰고 돌봐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의지의 바닥이 보이기 시작할 때 일상에서 끼어드는 모든 방해 요소를 차단하고 혼자만의 공간으로 떠난다. 두려움과 회의가 마음을 덮기 전에 자신감과 용기를 충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또다시 차분하게 아니, 꽤나 분주하게 정리하고 다시 계획표를 짜며 스스로를 앞으로 앞으로 떠미는 못된 성미를 가지고 있기에 내 무의식이 이 책을 집어들게 한 것 같다. 이쯤이면 예전처럼 성실하게 너를 반성하고 새롭고 더 나아진 내일을 기대하며 계획표를 만들 때가 되지 않았냐며. 다시 토닥토닥, 앞으로 조금씩 밀어내며. 그럼 나는 가슴 한 가운데가 찌릿하지만 이건 극복해내야할 두려움과 게으름이라며 다시 펜을 들고.



아, 혼자 여행하는 것에서 혼자 있는 시간으로 너무 많이 샌 것 같다. 다시 여행 얘기로 돌아가면.


지난 연말에 베트남 호이안에서 일주일 남짓 휴가를 보냈다. 본격적으로 바빴던 건 가을부터지만 꽤 오랜시간 하드워커로 지내온터라 정말로 완벽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워낙 계획적인 성격이라 완벽하게 쉬진 못했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여행을 통틀어 이렇게 뭘 '안' 한 여행도 드물거다. 정말 그저 먹고 자고 걷고 먹고 잤다. 자려고 백만원이 훌쩍 넘는 돈을 썼나 싶기도 했지만, 꽤 의미있는 여행이라고 생각했던 건, 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공항에선가 휴대폰에 남긴 이 메모때문이었다.


나는 낯선 곳에선 잠을 푹 못잔다. 주말에 열두시간 넘게 매주 기록을 세우던 내가 호텔방에선 매일같이 여섯시에 일어났다. 나는 호텔 조식이 제일 맛있다. 어디서든 뭐든 맛있게 잘 먹는 소아비만 출신이라고 자부했었는데 미각을 잃어버렸다. 불편한 상황에 놓일 때 눈을 피하는 버릇이 더 심해졌다. 자꾸 뭐 사라고 뭐 타라고 할때마다 노땡큐하면 되는데 어색한 미소만 짓고 도망가기 일쑤다.

(중략)

스무살때의 여행과 서른살때의 여행은 확실히 다르다. 추구하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도. 배낭을 주렁주렁매고 새까맣게 탄 얼굴로 환히 웃으며 여행하는 예전의 나를 닮은 친구들을 보며 뭔가 소중했던게 손가락 사이로 이미 빠져나가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매일밤 꼬박꼬박 8시 전에 들어와 노래 틀어놓고 반신욕을 하며 짙은의 노래나 따라부르고 있었으니까. 이제와 왜 내게서 용기를 빼앗아 갔냐고 항변할 수 없다, 지금의 이 모습이 그냥 나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담담히 이 변화들을 관찰해야겠다.


분명히 나는 달라졌지만 나쁜 의미에서의 변해버림은 아니었다. 그냥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나의 여행 스타일이 담담하게 변화하고 있었고 그걸 계기로 낯선 곳에 놓인 '나'도 익숙한 곳에 놓인 '나'도 끊임없이 달라져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는 것으로 이미 이번 여행의 의미는 충분해져버렸다.


우리는 타인을 만족시키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여행으로부터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는 우리 스스로 정할 문제이다.


왜 혼자서 여행을 하는지에 대한 답이 충분히 된 책이었고, 나의 변화 내지는 그저 나의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긍정하게 됐다. 굳이 막 꼬집으며 앞으로 밀어내지 않아도 어차피 나는 다시 성실한 나로 돌아갈테고(물론 지금도 꽤나 성실하지만) 만약에 그 속도가 좀 느려졌다면 그것도 그저 지금의 나니까 어쩔 수 없이 담담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며칠전에 일찍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책도 읽기 귀찮고 그렇다고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영화 보느라 열두시를 넘기긴 싫고 TV도 딱히 땡기지 않고 당연히 청소따위는 하기 싫은 '심심한' 저녁이 있었다. 일순간 '심심하다'는 생각에 당황을 했다. 이렇게 내가 못 노는=못 쉬는 사람이었단 말인가? 심심해하고 할일이 없으면 죄책감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다 이 글의 제목인 "행복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친구가 있다"는 구절을 읽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나랑 친한가?


아닌 것 같으니 그런 생각을 했고, 지금도 충분히 친하지 않은 것 같다.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사실 해보지도 못했으니까. 언제나 밖에서만 나를 사랑해줄, 나와 친해져줄 사람을 찾았으니까.


그래서 이번 기회에 나랑 좀 친해져보려고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나를 관찰하며 기록하고, 심심하고 따분해도 받아들이고, 또다시 변덕을 부린대도 그런가보다 다독여주고. 행복한 사람이 되려고 이러는 건 아니지만, 그냥 왠지 나를 절대 배신할 것 같지 않은 이 친구와 친해져야 덜 고독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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