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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집가 Mar 17. 2016

어떻게 나같은 놈한테 책을 주냐고

<꿈꿀 권리> 박영숙

'공공사립도서관'이라는 말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고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간 도서관은 내게 '공공'이든 '사립'이든 그냥 도서관이었다. 책을 열람할 수 있고, 대여도 가능하며, 종종 문화 행사나 대개는 어린이나 주부, 노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 언제부턴가 책이 내 일상에 꽤 의미있는 벗이 되었지만 책이 있는 물리적 공간으로 따지면 도서관보다는 서점에 더 익숙했다.


사실 요즘 독립 출판 서점이나 각자 컨셉을 가진 작은 동네 서점들이 눈에 띌만큼 미디어나 SNS에 자주 언급되고 있고(관심사다보니 남들보다 훨씬 더 크게 느끼는 면도 없지 않다), 마스다 무네아키의 책 <지적자본론>이 히트를 친 후 다이칸야마에 있는 츠타야(TSUTAYA)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커진 것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책을 읽고 쌓아놓기(?)를 좋아하다보니 '진작에 술도 먹고 커피도 마시는 서점이나 낼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 적이 없었다곤 못한다. 마치 그 숫자도 셀 수 없다는 제주의 게스트하우스 열풍을 보며 '내가 딱 10년 전에 제주에 게스트하우스나 북카페 내려고 했었는데!' 하는 것처럼 아무 의미 없는 소리.


이런 책이 있는 공간에 대한 몽상을 하는 내내 도서관은 생각의 귀퉁이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도서관은 구립, 시립, 국립처럼 정부에서 관리하는 곳이니까. 우리집 가까이 개인이 출현한 자금으로 구성한 '이진아 도서관'이 있지만 서대문구 구립이다. 처음부터 그랬는지 운영권을 이전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개인이 좋은 의도지만 사적인 목적으로 공공도서관을 세우고 운영한다는 것이 꽤나 낯선 일이었다. 


책의 표지에서부터 이미 풍겨져나오는 따뜻함과 은은함과 우아함


처음 이 책을 존경+동경하는 분으로부터 추천을 받던 날, 이 도서관 관장님이 아주 멋진 분이란 말씀을 여러번 하시기에 책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시고 깊이 있는 내공과 연륜을 가지신 분이겠거니 생각했다(물론, 그건 맞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은 그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었다. 내가 몰랐던 세계가 이렇게 펼쳐질 줄은, 10년 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공공사립도서관을 만드는 일이 될 줄은, 처음엔 정말 몰랐다.


물론 꼴랑 책 한권 읽었다고 인생극장처럼 '그래! 나도 도서관을 만드는거야!' 하고 뚝딱 만들수는 없다. 나는 문헌정보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사서도 아니고, 책을 좋아는 하지만 남들이 알아줄만큼 대~단한 애독가 내지는 애서가는 아니다. 


나는 그저 책을 읽으며 인식이 확장되는 경험들을 사랑하고, 책을 읽으며 영감을 주는 문장들에 줄을 긋고 그 문장들을 타이핑해 수집하는 그 과정을 즐기고,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리스트에 몇월몇일 이런 책을 읽었노라고 기록하는 일을 좋아할 뿐이다. 


그런 내가 언젠가 도서관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가장 큰 이유는 아래 글을 통해 찬찬히 밝히겠다.



1.


<꿈꿀 권리>는 느티나무도서관의 박영숙 관장님께서 10년 넘게 도서관 관장(간장)으로 생활하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을 술술 읽히지만 가끔은 웃기기도 울리기도 하는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낸 책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정말 명품이다. 이렇게 글쓰기를 하려면 글의 소재가 되어줄 경험도 경험이지만 단어와 단어 사이를 촘촘하면서도 깊이있게 쓸 수 있는 필력이 정말 엄청나게 좋아야 한다. 모든 작가가 다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으며 책을 쓰지만 이 책은 우리말이 주는 풍성하고 진한 감동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한다. 


책의 내용은 크게 분류하면 결국 책과 책을 읽는다는 것, 아이, 장애인, 이주민 등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 그리고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갖는 사회적, 문화적 의미에 대해 담고 있다.


작년에 빌린 책으로 처음 읽다가 너무 오랜 기간 빌리게 되어 중간에 읽기를 멈추고 돌려드렸다가 최근에 새로 샀는데, 지난 12월에 서론을 읽을 때 눈물이 왈칵 떨어졌다.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누구나 읽으면 울컥하는 마음이 들만한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이 책은 정말 살아 숨쉬는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라 자꾸만 감정을 툭툭 건드린다. 특히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렇다. 사람이 쓴 책으로 가득찬 도서관이지만 그 책을 읽고 나눌 사람이 있어야 진짜 이야기와 감동이 생겨나나보다. 


2. 


도서관이란 뭘까? 무슨 일을 하는 곳일까? 이미 그간 내가 도서관에 대해 얼마나 무지하고 무심했는지 언급하긴 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도서관은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공간이자 무리였다.


(도서관 일이란)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료를 고르고 사들이고 정리하고 효과적으로 배치하고 서비스하는 일, 이용자들의 요구를 읽고 지역사회의 특성과 변화를 읽어 장서와 서비스에 반영하는 일,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는 잠재이용자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도서관을 만날 기회를 마련하는 일, 새내기 청년들의 자립준비나 정년을 앞둔 사람이 인생 제2막을 맞이할 준비를 지원하는 정보서비스 같은 일이 이뤄진다는 걸 알기 어렵다.


그냥 글로만 보면 '그래, 생각보다 많긴 하네' 하고 끄덕이며 넘어갈 수 있지만, 하나 하나 자세한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과 번뇌와 고독과 실패로 점철된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곳으로만 여기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 텅 빈 눈으로 멍하니 따라온 아이들에게 책과 도서관의 의미를 경험으로 깨닫게 해주는 일, 어려움에 놓인 사람들(교도소에 수감중인 아이, 외국인 노동자, 시각 장애인 등)에게 책을 매개로 희망과 관계의 끈을 놓치 않게 하는 일, 도서관에 대한 이용자들의 불편과 불만을 다양성에 기반해 하나하나 재차 고려하고 공공성이라는 원칙에 맞게 어려운 길을 묵묵히 가는 일. 그저 책을 사고 빌려주고 반납하면 서가에 다시 꽂는 일, 그것이 결코 전부가 아니었다.


3. 


이와중에 감동적인 건 박영숙 관장님을 비롯한 느티나무 도서관 사람들의 태도였다.


우리는 번번이 실패와 역량 부족을 인정해야 했다. (중략) 자원이 넉넉하지 않은 사립도서관에서 우리의 힘만으로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스템을 갖추기 전에 필요한 사람들의 요구를 몰라라 할 수는 없는 일. 우리는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해나가면서 더 나은 대안을 찾게 될 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실패와 역량 부족을 인정하고 덤덤하게 나아가는 일'이 보통 멘탈(?)로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렇게 되기까지 정말 수도 없이 많은 일이 있었고, 그 결과 얻게된 담대한 용기와 성실한 행보겠지만. 그리고 시간의 힘에 기댈만하다는 회고도 기억에 남는다. 누구도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으므로 실패에는 익숙해져야 하지만 결코 실패에 굴복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흘러가는 시간의 힘에 기대 꾸준히 노력하는 것. 아, 요즘 유행하는 말대로 인간승리.


'모두를 위한 도서관'은 선언이 아니라 지난하게 실천해야 하는 현실의 과제였다. 효율성보다 공공성에 우선순위를 둔다는 원칙을 세운다고 저절로 공공성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것을 준비하고 또 배워가야 했다. 보이지 않는 문턱을 없애기 위해 우리가 찾은 방법은 '덤덤해지는 것'이었다. 덤덤해지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했다. 덤덤하다는 것이 차이를 '모르는 체' 하거나 무시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차이를 제대로 알고 이해해서, 차이가 빚어내는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전제가 되어야 했다.


4.


그렇다면 박영숙 관장님이 생각하는 '책' 그리고 '책을 읽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뭘까? 아- 여기서 또 엄청난 명문들이 나온다. 


(책은) 종종 삶이라는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 별이나 바람이나 물의 흐름처럼 길을 찾아갈 실마리였고,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났을 때 충분히 도움닫기를 하는 데 필요한 구름판 같은 것이었다.


왜, 무엇이, 책과 도서관을 파괴하게 만들고 책을 손에 들고도 펼쳐서 읽지는 못하도록 만들었을까? 그것은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책은 물음표를 떠올리게 만들 것이고, 물음표는 통제할 수 없는 정신적 성장으로 이어지고, 결국 자유를 꿈꾸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책은 삶의 길목마다 멈춤의 여백을 열어주는 열쇠다. 숨 가쁘게 쫓기던 일상에 성찰과 사유의 시간을 연다. 담금질 하듯 자신을 돌아보고 둘레를 둘러보게 한다. 그럴 때야 당연하게 여겼던, 혹은 어쩔 수 없다고 여겼던 모든 것이 다시 보일 수 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더 나은 길은 없을까? 어쩌면 이 길에서 확 벗어나면 또다른 세상이 보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도서관은 끝없이 오르고 올라야 하는 삶의 계단을 다시 오를 수 있도록 숨을 고르는 계단참 같은 곳이 아닐까.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종종 불편한' 배움과 사유의 시간을 지내면서 조금씩 담담해지는 힘이 생겼다. 변화도 성장도 꿈꾸는 일도 세상을 자기 스스로의 눈으로 보고, 배움도 사유도 일상의 삶 속에 녹아들 때야 가능하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힘이 된 건, 고요하게 책에 빠져드는 시간이 우리 자신을 조금씩 단단하게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책이 늘 명쾌한 정답과 환한 깨달음을 주진 않는다. 때로는 책을 읽음으로써 알게되는 부조리와 불합리에 불편한 마음을 갖기도 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세상에 '빛'으로만 가득하다면 그 빛의 의미와 가치를 우리가 알 수 없을테니 책은 분명 '빛'과 '어두움'을 오롯하게 보여주는 그 무엇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책을 읽으며 멈춰서서 내가 발을 딛고 선 곳, 지나온 길, 앞으로 펼쳐진 길을 바라볼 시간과 마음의 여백이 필요하다. 


사실 지금 난 이 글을 샌프란시스코에서 서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쓰고 있는데, 이 책을 읽고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발췌하고 또 이 글까지 쓰는 모든 걸 이 비행기 안에서 해결하고 있다. 잠을 자거나 영화를 보거나 그 무엇도 할 수 있지만 한정적인 공간과 환경에서 시간의 여백을 충분히 즐기며 누릴 수 있게 이 책을 읽은 것은 정말 신의 한수였던 것 같다. 


방해받지않고 읽고 느끼고 생각하고 더 단단해지는 시간.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스마트폰의 비행기 모드를 해제하고 다시 바쁜 현대인 중 하나로 돌아가더라도 앞으로 시간과 마음의 여백을 누리는 일을 모른체 하진 않을 것이다.




<꿈꿀 권리>를 읽으며 나도 공공사립도서관을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상상을 했지만, 깊숙히 읽어들어가면서 배운 것은 (당연하게도)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이다. 


먼저, 도서관을 '운영한다'는 것은 단어의 뜻에 반영된대로 '현재진행형'이다. 그럴듯한 서가를 꾸며놓고 책을 왕창 사서 꽂아두다고 도서관이 '쨘' 만들어지는 건 아니란 말이다. 끊임 없이 책을 매개로 한 사람간의 관계를 형성하고, 도서관을 내 집마냥 편하게 드나들 수 있게 일상적 의미를 이용자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자꾸만 만들어내야 한다. 또 실패에 예민하기 보다는 시도와 과정에 의미를 두고 끊임없이 최선의 방법을 찾는 일이 도서관을 운영하는 일인 것 같다. 


또 매뉴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예측불가능'한 일들이 매일같이 일어나는 곳이니 유연해지는 것도 필수 사항이다. 박영숙 관장님은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것은 늘 단기적으로 성과가 나지 않아 시간에 기대어 기다리는 '기우뚱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며 함께 살 수 있는 일을 고민하는 일도 도서관이 해야 하는 일인 것 같다. 


쓰고 보니 엄청난 일이라는 걸 새삼 느낀다. 그렇지만 그만큼 개인적으로도 지역사회에도 그리고 도서관을 함께 만들어갈 사람들에게도 의미가 있는 일은 분명하다.




언제가 될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은 호기심과 패기로 넘치지만 글자에 새겨진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일거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박영숙 관장님처럼 훌륭하게 도서관을 만들어갈 재목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에게도 '꿈꿀 권리'가 있지 않은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것을 꿈꾸고, 우리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꿈꾸고, 일상에서 문화를 즐기며 향유하는 문화적인 삶을 꿈꾸고, 누군가도 나처럼 책에서 받은 영감으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되는 것을 나 역시 꿈꿀 권리가 있지 않은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도 이 글에서의 '아이들' 중 하나가 되고 싶다.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Daring Greatly.


"팔을 만들려다가 실패해서 날개가 되었어요.
실패는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생각이나 말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이를테면,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한다던지, 도서관에 대한 책을 읽거나 교육을 받는다던지, 국내외 다양한 도서관을 직접 다니며 내가 꿈꾸는 도서관의 모습을 매일 매일 상상한다던지. 그냥 그렇게 '해보는' 것. 하다가 잘 되지 않더라도 실패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니까. 그것만으로 왠지 엄청 신나고 재미있는 일일 것 같으니까. 



+ 덧. 참고로 나는 좋은 책이라면 주변에 읽으면 좋을 만한 사람한테 억지로라도 막 떠넘기며 빌려주는 편인데 이 책은 누구한테도 빌려주지 않을거다. 나만 읽고 싶어서? 아니, 누구든 직접 사서 읽고 소장했으면 해서다. 맨 뒷장을 펼쳐보니 초판 6쇄까지 찍었던데, 그러면 보통 1쇄에 2천부씩 찍는다고 하니 1만부를 좀 더 찍은거다. 10만부 정도는 찍었으면 하는게 정말 소소한(!) 바람이다. 아, 진짜 좋은 책이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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