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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집가 Aug 03. 2021

커리어는 한번 실패하면 끝나는 토너먼트가 아니다

스타트업은 어떤 사람을 뽑고 싶을까? #2 회복탄력성


요즘 내 주변에 <골 때리는 그녀들>을 안 보는 친구들이 없다. 체육시간이 제일 싫었고 운동과는 담을 쌓은 채 살다가 서른이 넘어 조금씩 운동을 배우고 뒤늦게 소질도 조금 발견한 나 역시 애청자 중 한명이다. 축구룰도 제대로 몰랐던 사람들이 축구화를 챙겨 신고 운동장을 열심히 뛰어다니는 선수들(!)로 변신하는 과정을 또 그 진심을 너무 알 것 같아서 한 번도 울지 않고 본 적이 없을 정도다.


내 최애팀은 진심의 개벤져스


최근 시즌2를 시작한 <뭉쳐야 찬다>도 축구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나는 뭉쳐야 찬다 시즌1과 시즌2 사이에 방영되다 얼마 전 종영한 <뭉쳐야 쏜다>를 종종 봤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이거나 세계 무대에서 이름 꽤나 날리던, 한때는 전설이라고 불리었던 은퇴한 운동선수들이 나와 농구팀을 이뤄 훈련하고 시합을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사실 특정 성별만 우르르 몰려나오는 프로그램이 요새 너무 많고 게스트를 초대해 불편한 농담을 던지는 구성이 지겹기도 했지만, 몇 번 챙겨보게 된 이유가 있다.


오래 익숙한 것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걸 배운다는 게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지, 더딤과 불완전함을 견디며 영원히 안될 거라고 생각했던 게 어느새 가능해졌을 때 그게 얼마나 큰 희열을 주는지, 코트에서 힘겨운 도전을 하고 있는 왕년에 잘나갔던 선수들을 보면 늘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배고파서 축구를 시작했지만 세계적인 선수로 활약했던 안정환도,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두개나 가진 김병현도, 엘리트 체육 코스를 밟아온 무수한 선수들 모두 처음 시작한 농구에는 똑같이 문외한이었다. 룰을 몰라 어이없는 반칙을 하기도 하고, 이전 종목에서의 습관을 버리지 못해 아쉬운 실책을 하기도 하고, '정말 전설인가?' 싶을 정도로 실력이 늘지 않기도 했지만, 결국 승리의 순간을 맞았다.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건 마음이 뻑적지근해지는 성장기에 대한 애호감이 아니다. 운동 종목이든 커리어든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전환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것이란 이야길 하고 싶다.


특히 이전의 필드에서 인정을 많이 받았고 유능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전환을 한 뒤 해도 해도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운동선수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계속 또 오래 일하기 위해 용기 있게 커리어를 전환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멀리 볼 때는 이상적으로, 가까이 볼 때는 현실적으로


Case #1
M님은 글로벌 기업의 한국 법인에서 컴플라이언스(법규준수, 준법감시, 내부통제) 직무로 10년 가까이 일하다 두 아이의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퇴사했다. 다시 일터로 복귀하려 했으나 컴플라이언스 경력 채용이 많지 않아 커리어 전환을 고민하게 된다. 비교적 관련 분야인 경영관리로 전환하려 했으나 회계, 재무, 인사, 총무 경험이 없어서 고민하다 스타트업의 1인 경영관리 담당자가 알아야 하는 기본 지식, 일하는 방식, 마인드셋을 배우고 실제 스타트업의 경영관리 이슈 해결 컨설팅을 직접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위커넥트 임파워캠프)을 수료한 뒤 소셜 섹터를 지원하는 사단법인의 경영관리 담당자로 커리어를 전환해 3년째 근무 중이다.


Case #2
H님은 게임, 라이프스타일 분야에서 영업, 마케팅, PM 등 전천후로 일하다 글로벌 고객을 타겟으로 한 웨딩 비즈니스를 창업했다. 3년 남짓 비즈니스를 이어오다 다시 조직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 그는 창업 당시 맨땅에 헤딩하며 배운 것들을 포함해 자신의 경험을 최대한 활용하되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을 꿈꾼다. 새로 입사하게 된 스타트업에서의 첫번째 직무는 퍼포먼스 마케터였지만 회사의 비즈니스 방향이 수정되고 본인의 역량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직무인 오퍼레이터로 일했고 지금은 조직과 구성원에게 안정감을 주는 피플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2년간 한 회사에서만 3개의 직무를 경험하고 있다.


위 내용만 읽으면 어쩐지 커리어 전환도 이직도 척-척- 진행되고, 온보딩도 스무드하게 된 것 같지만 M님과 H님 모두 고난의 시간을 겪었다. 둘은 산업도, 직무도, 연차도 모두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첫 술에 결코 배가 부를 리 없음을 똑같이 경험했다. 커리어 전환을 꿈꾸는 많은 후보자들이 '내가 이 분야에 이만-큼 관심이 있고 이만-큼 진심이니까, 내가 잘 해내는 것은 물론이고 조직 안팎으로 인정받아 아름다운 미래가 곧 펼쳐질 거야!'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하는데,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나 역시 20대 후반에 중요한 커리어 전환을 했고 그게 지금의 창업으로 이어진 아주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고민이 깊었다. (나는 재미와 의미를 얻기 위해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는데, 그렇다 해도 30대 초반의 월급이 150만원이 채 되지 않았으니 고민이 될 수 밖에...) 그래서 '라떼 이즈 홀스'의 일환으로 커리어 전환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꼭 하는 얘기가 있는데...


하나는, 처음에는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고 커리어를 전환해 얻는 것보다 잃거나 투자해야 하는 게 많다고 느낄 것이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커리어 전환 초반에는 누구나 겪는 과정이다. 뭉쳐야 쏜다에 나오는 선수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세계적인 선수들이다. 그냥 이름만 유명한게 아니라 당대 최고 실력을 갖췄던 고수들이다. 그런데도 새로운 종목에 도전하는 초반에는 매번 지고 실패를 거듭했다. 하물며 평범함 직장인인 우리가 이 과정을 피할 수 있는 특별한 비법이 있을까?


두번째는, 지금 전환하려는 이 직무, 입사하려는 이 회사만 볼 게 아니라 그 다음, 또 그 다음을 보고 장기적인 그림을 그려야 한다, 내년에 은퇴하려는게 아니라면. 물론, 우리가 사는 오늘, 내 앞에 펼쳐진 매일매일에 충실해야 겠지만 전환을 선택할 때에는 바로 다음에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얻을 수 있는 것, 그 과정에서 trade-off 해야하는 것, 모든 것을 고려해야 장기적으로 우상향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매일 마주하는 상황과 조건에 유연하게 대응해야겠지만 기반이 튼튼해야 중심 축이 흔들리지 않는다.



재테크도 커리어테크도 장기적 관점으로


마지막으로 뭉쳐야 쏜다를 한번 더 언급하자면, 안정환과 이동국(축구), 윤경신(핸드볼)과 같이 매경기 선발로 출전하는 선수들은 구기종목을 했던, 농구에도 꼭 필요한 심폐지구력이 좋은 선수들이었다. 특히, 핸드볼 국가대표 출신 윤경신 선수는 농구와 똑같이 손을 쓰는 종목이라, 확실히 새로운 종목을 익히는 데 유리했을 거다. 그러지만 전혀 다른 근육을 쓰고, 전혀 다른 기술을 다루던 선수들도 꾸준히 훈련하고 개인 연습을 하면서 차츰 실력이 쌓여, 어느새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히 좋아졌다.


커리어 전환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전 커리어를 최대한 레버리지하는게 유리하긴 하겠지만, 다른 분야에 대한 배움에 열려있을수록 전환의 기회를 자주 발견할 수 있고,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언젠가 실력을 발휘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평생 일해야 하는 우리, 종목을 넘나들 수 밖에 없는 우리가 성공에 가까워지는 비결은 역시,


무엇이든, 장기전이란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실력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일정 수준 이상 는다. 성공적인 커리어 전환을 좌우하는 건 일의 호환성은 결코 아닐 것이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강점과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향상심 또는 회복탄력성을 유지하는 것, 당장의 이득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스스로에게 투자하고 점진적으로 자산화하는 것. 이런 과정과 노력들이 모여 결국은 단단한 나를 만들고, 더 좋은 기회가 제 발로 직접 찾아 오게 한다.


멀리 보자. 오래 하자. 그리고 과정을 즐기자. 커리어는 한번 실패하면 다음이 없는 토너먼트가 아니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줬던 룩셈부르크 국가대표 탁구선수 니 시아리안의 패배 후 인터뷰




일, 커리어, 삶 어떤 영역이든 선택의 기로에 서계신가요?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그 고민을 <고민 들어주는 언니들>에게 보내주세요, 저희가 정말 잘 들어드릴 자신이 있으니까요! ☞ 고민 투하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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