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노잼 시기가 등판할 때
이번 글의 주제는 '무기력'입니다. 투하해주신 고민, 먼저 들어볼게요.
오랜 코로나로 인한 번아웃인지 일의 권태인지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어요. 다시 마음을 다 잡고 나를 발전시키고 싶은데, 자꾸 핑계를 대고 있는 저를 보면 한심하네요. 더 이상 나서서 새로운 일을 찾지 않는 게 고민이에요.
코로나 이후, 인생 노잼 시기: 뭘 해도 재미가 없고 의욕이 없는 시기에 대한 고민글을 인터넷 상에서 자주 접했던 것 같아요. 집과 회사, 집-집-집 뿐인 일상 생활에서 답답한 마음이 드는 건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어떤 때에는 잠만 쏟아지더랬죠. 더 심각했던 문제는 침대와 소파를 떠나지 않고 와식 생활(누울 수 있는데 왜 척추를 세우죠?)을 마음껏 즐기다 꼭 밤이 되면 한심한 스스로를 자책하는 거였어요.
솔직한 심정으로,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는 상황을 극복할 뾰족한 해결책은 없다고 봐요. 지루함을 느끼는 건 어딘가 고장난 상태라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시기라는 말이 붙어있는 것처럼 어떤 계기로 인해 그 감정이 떠나갈 것임을 우리도 잘 알고 있지 않나요! 물론 언제고 떠나보낸 인생 노잼 시기는 다시 돌아올 수도 있고요.
무기력한 시기를 흘려 보낼 방법, 저와 제 친구들의 지혜를 모아 모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던 경험을 정리해봤어요.
일 말고 취미
일상이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 저는 먹고 싶은 걸 만들어 먹었어요. 원체 먹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독립해서 내가 만들 수 있는 음식의 가짓수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요리를 시작했는데요.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번도 만들어 먹어본 적이 없는 오향닭냉채, 케이준 잠발라야, 오징어 먹물 리조또 이런 음식들에 도전했어요. 귀찮을 것 같았는데 자꾸 하다 보다 상당히 안정감을 주더라고요.
왜 안정감을 주었는가 생각해보면요. 당시 예측 불가능한 일에서 오는 불안감, 복잡성이 높은 일에서 오는 낮은 통제력, 장기적인 효과를 기다리는 일에서 오는 불타는 인내심이 그 때 제 마음을 어렵게 했는데요. 안 해 본 메뉴라고 하더라도 정해진 재료와 수량에 맞춰, 내 통제 아래, 즉각적인 결과물이 나오는 걸 하면서 불만족스러운 마음이 좀 정돈되었어요.
일에서 충족되지 못한 갈증을 일로 다 풀 순 없을 때, 일 말고 다른 걸 해봐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한 경험이었어요. 에리히 프롬의 책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에서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무능력이 무력감의 뿌리"라는 문장이 등장합니다. 사는 재미가 없다면, 좋아하는 걸 사는 재미라도 붙여보며 일상을 다르게 꾸려보세요.
소소한 자극과 영감
극 TMI지만 한의원에서 체질 감별을 받은 적이 있는데요, 저는 시각이 발달한 체질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니 디자인 똥손인 제가 시각 발달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한편으로 일리있는 말이기도 하더라고요. 저는 하루에 충족되어야 하는 일정량의 시각 자극이 있거든요. 강아지 산책시키듯 집 밖에 꼭 나가야 해요. 마트에 들려서 요즘 무슨 제철 채소가 나왔나 보고, 집 앞 도서관에 가서 책 제목을 스캔하고, 산책을 할 때도 안 가본 길로 한 번씩 빠져서 요리조리 골목을 살펴보고요.
업무 환경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오늘 쳐내야 할 업무량 말고 일정 정도 채워져야 하는 자극의 총량이 있어요. 4단계로 거리두기가 격상된 이후 2주 넘게 재택근무를 하면서 느낀 점인데요. 고요한 우주선에 혼자 탑승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어떤 궤도를 따라 한 방향으로 쭉 가고 있는데 아무런 간섭과 개입이 없으면 이대로 영원히 그 방향으로 가겠구나! 라는 묘한 느낌이랄까요. 보이지 않지만 존재감 있는 중력처럼, 같은 공간에서 동료들과 시시콜콜 나눈 대화 자극, 머무는 공간이 주는 자극이 사라지니 허전했어요.
무자극 우주 속에서 유영하는 나를 현실 세계로 끌어올 방법은 결국 '대화'인 것 같아요. 어떤 모임에서 각자 어떻게 에너지를 충전하는지 여러 방법들을 공유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성향과 지내고 있는 환경이 가지각색인 것처럼 각자만의 노하우도 정말 다양했어요. 그런데 9명 중 9명 모두가 입을 모아 이야기한 단 하나의 키워드가 바로 대화였어요.
바퀴 굴리기
3년, 6년, 9년에 한 번씩 오는 직장인 권태기. 요새는 3개월, 6개월, 9개월이라고도 하더라고요. 그런 시절을 보낸 친구들에게 어떤 게 도움이 되었냐고 물었어요. 한 친구는 '그래서 방통대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고 답했고, 다른 한 친구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봤다'였어요. 역시나 부지런한 친구들이었어요.
저는 이런 종류의 부지런함을 '바퀴 굴리기'라고 불러요. 바퀴를 일단 만들고 초반에 힘을 빡! 주면 저절로 굴러가는 수레처럼, 일상을 살짝 숨가쁘게 만드는 걸 일상 속에 시스템화하는 거죠. 일단 굴려지는대로 가다보면 무언가 결과물이 생겨있기도 하니까요.
꼭 대단한 결과물이 아니어도, 아침 30분 산책, 자기 전 감사일기 쓰기와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루틴도 무력감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위커넥트의 <커리어 리스타트 챌린지> 프로그램에서는 3주 동안 매일 1시간씩 커리어 성장 습관을 키우는 행동 미션을 드리고 있어요. 8기까지 진행하면서 확실히 알게 된 건, 다시 일할 수 있을까? 무기력한 의심을 퇴치하는데에는 '할 수 있다!'는 정신승리보다도 노력해봤던 경험 데이터가 최고더라고요!
“끝없이 좌절하기보다는 매일 스스로 시간을 내라. 매일 조금씩 일을 진행하면서 수개월, 수년을 견디면 어느새 많은 일이 이뤄져 있을 것이다. 물론 ‘자주 하라’고 해서 반드시 ‘매일 하라’는 뜻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지속성이다. 그러나 하는 간격이 넓어질수록 그로 인해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줄어들 것이다.”
<루틴의 힘> 조슬린 K. 글라이, 부키
글을 마치려고 보니 누군가에게 심각한 무기력 고민을 제가 축소시킨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됩니다. 구직, 생계 걱정에 우울감이 지속되는 '코로나 블루'와도 무관하지 않을 거고,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기도 하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분량만큼 마음을 담아 글을 전하며,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고민 들어주는 언니들> 매주 한 편씩 독자의 사연을 주제로 글을 연재하는 매거진입니다. 일과 삶에 대한 고민, 무엇이든 여기로 투하해주세요!